“만화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꿈을 보여줘”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4 15:00
  • 호수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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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계의 거장 도리야마 아키라 별세
《드래곤볼》 《닥터 슬럼프》 등으로 선풍적 인기 끌어

3월1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 등을 그린 일본의 만화가 도리야마 아키라(68)가 세상을 떠났다. 도리야마가 설립한 버드스튜디오(Bird studio)가 3월8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도리야마가 뇌출혈의 일종인 급성 경막하 혈종으로 사망했다고 밝히면서 NHK를 비롯한 각종 매체가 부고를 전하고 있다.

1955년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태어난 도리야마는 1978년에 일본의 만화잡지 ‘주간 소년점프(週刊少年ジャンプ)’에 《원더 아일랜드》를 연재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처음부터 만화작가 지망생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으나 ‘월급쟁이’ 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2년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50만 엔의 상금이 걸린 ‘주간 소년점프’의 신인상 공모기사를 우연히 발견한 도리야마가 작품을 투고하면서, 당시 편집자였던 도리시마 가즈히코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도리야마의 투고 작품이 신인상을 받을 만큼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소재가 흥미롭다고 느낀 도리시마가 “지금은 별로지만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만화를) 조금 더 그려서 보내 달라”고 한 것을 계기로 도리야마가 본격적인 만화 집필에 나선 것이다.

만화작가로서 도리야마의 명성은 1980년에 연재를 시작한 《닥터 슬럼프》가 큰 주목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닥터 슬럼프》는 펭귄 마을의 천재 과학자가 안드로이드 로봇인 아라레를 발명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아라레 사이에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린 코미디 만화다. 《닥터 슬럼프》는 주간지 연재 1년 만에 애니메이션화되어 TV에 방영됐는데, 최고 시청률이 36.9%에 육박해 역대 애니메이션 시청률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닥터 슬럼프》 연재가 1984년 8월에 성황리에 종료되자, 도리야마는 불멸의 히트작 《드래곤볼》 작업에 착수했다. 3개월 후인 11월부터 《드래곤볼》 연재가 시작됐고 ‘주간 소년점프’는 발행부수 600만 부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드래곤볼》은 이후 애니메이션화되어 1986년부터 1997년까지 10년 동안이나 TV에서 방영되었다. 《드래곤볼》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한국어 등 20개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단행본만 약 2억6000만 부가 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드래곤볼》을 그린 도리야마(오른쪽 위) 부고 소식과 함께 만화책이 진열돼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AFP 연합

한국에서 《드래곤볼》 등 유작 역주행 현상도

도리야마 사망 이후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인기 만화 《원피스》를 집필한 만화가 오다 에이치로는 “만화 따위를 읽으면 바보가 된다고 하던 시대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어른도 아이도 만화를 읽고 즐길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간 사람이자, 만화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구나라는 꿈을 보여주었다. 돌진하는 영웅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도리야마를 회상했다. 만화평론가 나쓰메 후사노스케도 “만화 매출이 정점을 향해 가던 시대의 중심적 존재로, 세계에서 일본 만화가 인기를 얻는 힘이 되었다”고 도리야마의 업적을 평가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도리야마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대표작인 《드래곤볼》 판매량이 급증하는 역주행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3월13일 서울미디어코믹스는 《드래곤볼》 시리즈의 3월11∼13일 출고 부수가 전주 대비 1277% 증가했다고 밝혔다. 예스24 역시 3월8~11일 4일간 대표작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 시리즈 판매량이 일주일 전 대비 289.3% 급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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