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 ‘줄사직’ 시작됐다…‘2000명 증원’ 백지화 압박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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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교협 “의대 증원, 파탄 넘어 의료체계 붕괴시킬 것”
고려대 교수 단체 사직서 제출…“사태 책임 정부에 있어”
3월25일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월25일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발하는 전국 의대 교수들의 '무더기 사직'이 현실화됐다. 교수들은 정부가 '2000명 증원'을 철회하는 것이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25일 "의대 입학정원 증원은 의대 교육의 파탄을 넘어 의료체계를 붕괴시킬 게 자명하다"며 정부에 의대 증원 배정 선(先)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전의교협은 "정부에 의한 입학 정원과 정원 배정 철회가 없는 한 이번 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며 "정부의 철회 의사가 있다면 국민들 앞에서 모든 현안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집단사직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등에 대해 '유연한 처리'를 주문하고, 동시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중재'를 자처하고 나섰지만 증원 정책 철회 없이는 의미 있는 대화 진전은 힘들다는 게 의대 교수들 입장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3월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3월2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위원장은 전날 오후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50분가량 전의교협 회장단과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한 뒤 "국민들이 피해 볼 수 있는 상황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의료계 간 건설적 대화를 중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파국을 막기 위한 중재 역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이날에도 "(의정) 대화의 물꼬가 트인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중재와 대화의 장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국민의 고통과 불안을 해결하는 국민의힘은 국민의 고통과 불안을 이용만하려는 민주당과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려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의교협 측은 의대 입학 정원 규모는 논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원점 재검토를 압박하고 있다. 이들은 한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전공의 처벌이 의대 교수 사직을 촉발, 의료체계 붕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를 전달했으며 의대 증원 규모 조정 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전의교협은 "전공의와 학생, 의료진에 대한 고위 공직자의 겁박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며 "입학 정원과 배정은 협의나 논의의 대상도 아니며, (한 위원장과) 대화하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과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하루 앞둔 3월2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소아환자의 보호자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과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을 하루 앞둔 3월24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소아환자의 보호자가 아이를 돌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의대 교수들은 이날부터 예정돼 있던 사직과 진료 시간 축소를 변동없이 추진한다고 밝혔다.  

전의교협은 "입학 정원의 일방적 결정과 정원 배분으로 촉발된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 누적된 피로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주 52시간 근무, 중환자 및 응급환자 진료를 위한 외래진료 축소는 금일부터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전국 19개 의대가 모인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부터 학교별 절차에 따라 사직서를 내기로 결의했다. 

포문을 연 고려대의료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총회를 열고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고대의료원 산하 3개 병원(안암·구로·안산) 전임·임상교수들은 사직서 제출을 결정하면서 정부에 의대 증원 정책 철회와 협의체 구성, 전공의와 의대생에 대한 비방·위협 중단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는 "부족한 근거와 왜곡된 수치를 바탕으로 추진하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이에 따른 의료 사태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육 여건이 확보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독단적인 2000명 증원 배정을 멈추고, 학생 교육의 주체이자 당사자인 교수들의 의견을 청취하라"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대국민 성명서'에서 "의료서비스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 상황에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집단적 영달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바로잡고자 교수들에게 환자를 잠시 부탁한 것이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의사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잘못된 정책에 손상되지 않도록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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