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잡는 불덩이’ 열화 우라늄탄
  • 주성민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0.06.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사능 유출로 기형아 출산 등 후유증 일으켜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거대한 터보팬 엔진을 2개나 단 주한미군의 공격기 A 10 선더볼트가 사격 훈련장으로 접근했다. “표적 확인!” A 10은 유럽 전선에 배치되었던 바르샤바조약군의 압도적인 기갑 전력을 파괴하려고 미국 페어차일드 사가 개발한 전차 공격용 항공기다. 표적으로 세워둔 전차 위를 저공 비행하던 A 10의 파일럿은 사격통제장치의 디스플레이에 목표가 락온(lock-on)되자 발사 버튼을 눌렀다. 순간 포신이 7개 달린 개틀링 건이 30㎜ 열화 우라늄탄을 소나기처럼 쏟아부어 전차의 두터운 장갑을 걸레조각처럼 뚫어버렸다. 이는 필자가 몇 년 전 직접 목격한 주한미군 훈련 장면이다.

열화 우라늄(Depleted Ura- nium)탄, 일명 DU탄은 탄착점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고열로 전차의 장갑을 녹여 관통한 다음 폭발해, 내부의 탄약과 연료에 불을 붙여 순식간에 불덩이로 만든다. 걸프전 때 A 10기들은 이라크군 전차를 공격하면서 무수한 DU탄을 퍼부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들이 쓰고 남아 사막에 팽개치고 간 DU탄은 수십 t이나 되었고, 뒤치다꺼리를 떠맡은 사우디아라비아군은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대전차용 철갑탄에 열화 우라늄을 씌운 DU탄은 방사능이 포함되어 심각한 피해를 준다. 걸프전이 끝난 후, 많은 미군 참전 병사들이 후유증에 시달렸다. 미국 제대군인 원호청이 조사하자 소변에서까지 고농도 우라늄이 검출되었고, 병사들의 일부는 기형아를 낳았다. 1995년 <라이프> 11월호에 실린 폴 핸슨 병장의 아들 제이스는 귀엽게 생긴 다섯 살짜리 꼬마였으나, 무릎 아래가 잘려 나간 듯 없는 데다, 팔도 없이 어깨에 손만 하나씩 간신히 붙어 있었다. 군복을 입은 핸슨 병장이 고무 다리를 한 제이스를 안고 촬영한 <라이프>의 표지는 충격적이었다.

미군, 일본에서 DU탄으로 훈련하다 ‘들통’

1997년 2월에는 일본에서 난리가 났다. 주일미군 해병대 소속 해리어 전투기가 오키나와 부근의 사격 훈련장 도리시마 섬에서 열화 우라늄을 입힌 철갑 소이탄을 발사하며 실전 훈련을 해온 것이 탄로났다. 일본인들은 우라늄탄 사용을 반대해 거센 철거운동을 벌였고, 미군은 사과하고 DU탄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1988년 독일에서, 1992년에는 네델란드에서, 1997년에는 일본에서 다시 DU탄 사고가 이어지자, 미국 육군은 1997년 중반 ‘방위정보평가’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보고서에는 미군들이 숨겨온 사실이 드러나 있다. 미군은 방사능의 위험을 알면서도 관통력을 내세워 DU탄을 훈련에 계속 사용해온 것이다. 지난해 영국 BBC방송은 전쟁에서 쓰인 DU탄을 추적해 보도했다. DU탄이 발사되어 폭발하면 미세한 가루가 되어 반경 100㎞ 넘게 우라늄 중금속 오염을 일으킨다. 바람에 실려간 가루는 호흡을 통해 사람의 폐로 들어가 인체의 면역 체계를 파괴하며, 암까지도 일으키는 것이다. 코소보 전쟁에서도 A 10기들은 50만발 가량의 DU탄을 발사했다. 유고 폭격이 끝난 직후, 코소보에서 바람이 불어가는 그리스 북부 지역의 방사능 수준은 평소보다 25%나 증가했고, 세르비아에서는 30배의 방사능 농도를 기록했다.

바로 이 DU탄 때문에, 지금 한국 시민단체와 미군이 팽팽하게 대립해 긴장하고 있다. 오산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A 10 공격기가 화성군 사격 훈련장에 내던진 실전용 폭탄이 DU탄일 가능성과, 훈련에서도 DU탄을 쓰는가 하는 점이다. 운 나쁘게도 엔진에 고장을 일으킨 A 10 한 대가 DU탄 논쟁의 도화선에 불을 당겨 놓은 셈이다. 주한미군은 예전에 맹세코 DU탄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97년 미2사단이 주둔한 연천에서 에이브럼스 전차용 120㎜ DU탄이 폭발해 그들의 입장이 난처해진 적이 있다. 이제 그들은 한 발짝 물러나, 전시를 제외하고는 열화 우라늄탄 사용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글쎄, 그 말을 믿으란 말인가. 주한미군은 M1 A1 에이브럼스 전차용 120㎜와, A 10기 전용인 30㎜ 두 가지 DU탄을 가지고 있다. 탱크 킬러인 A 10이 발사하는 30mm DU탄은 한 발이 콜라병만큼 크고 위력적으로 생겼다.

우리의 안녕을 위해 안전 보장은 산소와 같고, 미군은 산소 공급을 돕고 있지만, 그게 열화 우라늄으로 오염된 것이라면 노 생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