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인력 '노예 무역' 실상
  • 李興煥 기자 ()
  • 승인 199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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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 상대로 국내외 브로커들 ‘인력 밀무역’ 성행…정책 재조정 시급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던 ㅅ교수는 지난 4월30일 한국으로 돌아오는 여객기 안에서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을 만났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으려고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인도네시아인 브로커에게 1인당 3백만 루피아(약 1백10만원)를 알선 수수료로 지급한 뒤였다. 한달 평균 5만~10만 루피아도 벌기 힘든 그들에게 3백만 루피아는 엄청난 돈이다.

ㅅ교수는 이들이 한국 땅에 발을 내디디는 순간부터 곧 노예 생활에 가까운 ‘감금 노동’의 지하 세계로 스며들리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ㅅ교수는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하라며 그들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헤어졌다. 그들은 김포공항 입국 심사대를 별 문제 없이 통과해 서울 땅을 밟았다.

1명당 알선료 백만원꼴

코리안 드림을 안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13만명 정도이다. 공식적인 통계는 물론 알기가 힘들다. 그들은 대규모 공단 지역의 산업체에서부터 소규모 가내 제조업체와 해안의 양식장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 퍼져 있다. 이 13만명 중에서 10만여 명은 불법 체류자로 분류된다. 대부분의 불법 체류 노동자들은 인력 알선업자나 단체를 통해 평균 백만원의 알선 수수료를 내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전체적으로 천억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한 셈이다. 이는 거의 예외 없이 외국인 노동자의 주머니에서 흘러나간 돈이다.

지난 5월5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 앞뜰에서는 제2회 외국인노동자 초청 법회가 열렸다. 휴일인 어린이날을 택해 벌어진 일종의 위로연이었다. 이 날 행사장에는 네팔 출신의 한 젊은 노동자도 나와 앉아 있었다. 올해 스물아홉 살인 브룸 검비르씨이다.
그는 불법 체류자이다. 3년 전에 한국에 왔다. 네팔 바르바트 출신으로 프리티브 대학 수학과를 졸업한 후 일자리를 찾던 중 신문에 난 구인 광고를 보고 인력 알선업자 6명을 만났다. 브룸씨가 마지막으로 접촉한 알선업자는 인드라그룬이라는 30대 남자였다. 인드라그룬은 이미 한국에서 취업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였다(그는 지금 일본에서 취업중이다).

인드라그룬이 요구한 한국행 경비는 항공료와 입국사증 발급에 필요한 진행비 등 총 2천 달러였다. 그는 한달에 5백달러를 벌 수 있으니 넉 달만 일하면 경비를 다 보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브룸씨는 집과 금반지를 팔고 빚을 얻어 돈을 건넸다. 계약서는 없었다.

한국에서의 첫날밤, 그는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는 한 호텔에서 잤다. 인드라그룬에게서 넘겨받은 약도를 보고 혼자 찾아온 호텔이었고, 이때까지 한국에서 만날 브로커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짐보따리 속에는 관광 입국사증이 들어 있었다.

이튿날 이씨 성을 가진 한국인 브로커와 실라라이라는 네팔인 여자 안내인이 호텔에 나타났다. 다른 네팔 노동자 6명과 합류한 브룸씨는 그 2명의 안내를 받아 오산으로 갔다. 오산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했다. 부산의 한 플라스틱 형틀 제조 공장에서 그는 6개월 동안 일했다.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일하기는 예사였고, 음식·잠자리 등 모든 것이 악조건이었다. 그렇게 일하며 그는 한달에 40만원씩 받았다. 애초 기대했던 대로 월 5백달러 임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네팔 여성인 실라라이는 이들을 업주에게 소개해준 대가로 한 사람당 2백달러를 받았다.

브룸씨는, 자기는 행운아였다고 말한다. 첫 직장에서 그나마 돈을 만져보았기 때문이다. 불법 체류 3년 동안 그는 다섯 군데나 직장을 옮겨다녔지만 지금 수중에 남은 것이라고는 천원짜리 몇장뿐이다. 새로 산 안경 하나와 양복 두 벌, 그리고 불법 체류자라는 낙인이 그가 꿈꿔온 코리안 드림의 결과이다. 그는 네팔과 한국을 연계하는 브로커들이 아니었더라면 한국에 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브로커가 개입된 ‘인력 밀무역’은 점차 조직화하고 있다. 80년대 중반 필리핀 노동자들이 한국에 흘러들 때만 해도 브로커의 개입 없이(알선료 없이) 한국으로 오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10만명이 넘는 노동 시장이 형성되고, 노동력 유입이 10여년 지속되자 인력 수출국과 한국 노동 시장에는 브로커라는 신종업이 자리잡게 되었다.

불법 체류자인 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브로커 없이는 한국 입국사증을 발급 받기 힘들다”고 말한다. 방글라데시 주재 한국대사관은 한달 평균 백건씩 입국사증을 발급하고 있다. 연수생들을 위한 집단 발급을 제외한 수치이다. 김계득 부영사(43)는 “개인이 신청해도 입국사증을 못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브로커가 개입할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사증 발급 신청 서류에 첨부된 한국 기업체의 초청장 내용이 이상해서 서울에 확인해 보니 유령 회사였다. 비슷한 문구와, 유사한 타이프라이터 글자체로 된 초청장이 여러 장 동시에 첨부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서울에 확인해 본다.”

네팔인 후델씨(30)는 합법 고용 형식인 산업기술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온 경우이다. 이때에도 인력 중개인이 끼여든다. 애초의 알선 수수료는 1천5백달러였다. 매달 8백달러 월급을 약속했다. 두 달만 일하면 갚아버릴 수 있는 액수였다. 한국으로 오던 날 네팔의 카트만두 공항에서 만난 중개인은 월급이 8백달러가 아니라 5백달러라고 말해주었다. 처음엔, 약속이 틀리니 안 가겠다고 버텼지만 빚낸 1천5백달러를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월급은 또 깎였다. 2백10달러였다. 산업기술연수생의 공식 수당 액수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산업연수생도 알선 수수료 내고 입국

불법 체류이든 산업기술연수생이라는 합법 절차이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오기 위해 인력 업체나 인력 중개인에게 내는 돈은 최소 1천3백달러에서 3천달러에 달한다. 항공료와 입국사증 발급에 따른 최소한의 실비를 제외하면 알선 수수료의 절반이 인력 송출 기관이나 브로커의 손에 들어가는 셈이다.

동남아에서 대표적인 인력 송출국으로 꼽히는 필리핀은 필리핀해외취업처(POEA)라는 정부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사설 인력 송출 업체만 해도 천~2천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다. 이 중 공식으로 한국에 진출한 업체는 3개소이다. ㅇ교수는 얼마 전 인력 중개업자 ㅅ씨의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필리핀 인력을 한국에 수입하려고 하는데 한국측에 다리를 놔줄 만한 인물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자기가 접촉한 대만의 중개업자가 제시한 조건이 터무니없어 한국으로 인력을 돌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대만 중개업자가 ㅅ씨에게 제시한 조건은 1인당 6만페소(약 2백8만원)인데, 이중 대만 중개업자의 몫은 2만페소(약 70만원)이다. 필리핀 노동자 백명이 대만으로 수입될 경우 대만의 중개업자가 챙기는 몫은 8만7천달러(약 7천만원)이다.

외국인 노동자는 두 갈래 경로를 거쳐 국내에 유입된다. 하나는 중소기업협동중앙회가 인력송출국 노동장관의 추천을 받아 송출 기관을 선정하면, 선정된 송출 기관이 해당국에서 인력을 모집해 한국에 보내는 방식이다. 이 경우 송출국 중개업체는 한국에 지사(한국 사무소)를 개설해 국내에 들어온 연수생들에 대한 사후 관리를 맡게 되어 있다. 지난 1월 네팔 연수생들의 명동성당 농성 사건 때 이름이 드러난 룸비니 맨파워가 바로 중소기업협동중앙회가 선정한 네팔의 인력 송출 기관이며, 동양인력개발(주)은 룸비니 맨파워의 한국 사무소 격이다. 이 사건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네팔 연수생 13명은 입국 과정에서 인력 회사에 1인당 수수료 1천3백달러를 지불했다. 개인이 지출한 비용까지 합하면 총비용은 약 2천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단기 방문 입국사증이나 관광 입국사증으로 국내에 들어온 뒤 만료 기간이 지나 불법 체류하면서 취업하는 경우이다. 노동정책연구소 박석운 소장은 “해외 투자 한국업체가 현지에서 단순 노무자를 채용해 한국에 보내는 경우도 많다. 불법 체류자의 약 11.6%인 9천5백여 명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해외 현지에 공장도 없으면서 브로커가 노동자를 모집하는 유령 회사도 있다. 주로 베트남·필리핀·중국 노동자들이 이런 브로커들에게 걸려든다”고 말한다.

“인력 중개 차원 넘어선 인신 매매”

앞의 두 경우에도 물론 브로커가 끼여든다. 앞서 예로 든 네팔인 후델씨는 합법적인 연수생 신분이었지만 브로커에게 알선 수수료를 지불했다.
민주노총준비위원회 윤우현씨는, 외국 인력 수입이 실제로는 음성적이고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국제적인 인신 매매라고 지적한다. 그는 “국내든 국외든 송출 기관 밑에는 폭력 조직이 연계되어 있다. 일부 송출국의 인력 알선 업체는 정부 기관과 커넥션을 이루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인력 중개 차원을 넘어서 공공연하게 인신 매매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정책연구소 박석운 소장은 “태국의 경우 인력 송출 업체 선정 과정에서 탈락한 업체가 불평을 터뜨려 송출 업체 간의 이권 다툼 현상이 겉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일부 관광 회사가 브로커 노릇을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트레이니(trainee)라 불리는 산업기술연수생들의 ‘탈출’을 향한 집념은 자못 비장하다. 연수생이든 불법 체류자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감금 노동을 하소연한다. 하소연의 다음 단계는 탈출이다. 일부 산업기술연수생들은 아예 본국에서 출국할 때부터 배정 업체에서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의 단속망을 피해 피신중인 연수생이나 불법 체류자 자신이 그렇게 고백하고 있다.

탈출자 잡는 ‘노예 사냥꾼’도

외국인 피난처 등을 찾는 불법 체류자들 사이에서 가장 유용하게 교환되는 정보가 있다. 자신들을 잡으러 다니는 이른바‘노예 사냥꾼들’의 이름이다. 중소기업협동중앙회에서는 지난해 불법체류 근로자들을 잡을 경우 1인당 5만원씩 지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서둘러 취소했다. 출입국관리소와 인력 송출 업체 직원이 사업체 현장에 나타났다는 정보가 돌면 불법 체류자들은 재빨리 몸을 숨긴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노동자 M씨(27)는 인력 송출 기관의 ㅅ씨에게 잡힌 적이 있다. ㅅ씨가 묵고 있는 호텔 방에 끌려가 흠씬 두들겨 맞았다. 하루 한끼만 얻어 먹으면서 사흘간 정신 교육을 받았다. M씨는 작업장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하고 풀려나와 다시 도망쳤다. 외국인 노동자 모임을 꾸려나가고 있는 ㄱ씨는 “요즘에는 경찰이 이탈자들을 잡으러 다니지는 않는다. 왜? 모조리 잡아들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결국 암묵적으로 내버려둔다는 방침이다. 외국인 피난처에 단속을 나갔을 때도 연수생 한 명만 데려갔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부상 당하거나 죽지 않을 경우 외국인 노동자들이 선택할 길은 노예 같은 감금 노동뿐이라는 것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노예 생활에서의 탈출은 곧 노예 사냥감이 되는 것이다. ‘노예 사냥’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다. 1년에 만명씩 잡아 출국시킬 경우 5년이면 불법 체류자를 모두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계산이었다. 필요한 국내 노동 인력은 산업기술연수생으로 대치한다는 것이었다. 불법 체류 3년 5개월째인 네팔인 고빈다씨(26)는 “연수생은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한다”고 말한다. 연수생은 작업장을 이탈하는 순간부터 불법 체류자가 된다. 그리고 그 탈출 행진은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이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일본으로 밀입국하기 위한 경유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오른쪽 기사 참조).

동남아 인력의 한국행 러시를 예고하는 현상이다. 필리핀 근로자의 대거 입국에 이어 이제는 네팔·방글라데시 등 서아시아 인력이 국내에 들어와 점차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중국 교포 문제야말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등장했으나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지난 4월15일 서울지검 특수1부가 발표한 중국인과 교포 천명을 상대로 한 한국 취업 사기 사건은, 이제 노예 무역이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국내의 노동 인력 부족 현상도 가속화할 조짐이다. 당장 손쉬운 공급 정책은 외국 인력 수입이다. 정부는 이미 농업과 수산업 등 1차 산업에 외국인 노동자를 투입할 계획을 세우고 예상 소용 인력을 계산중이다.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인권 침해와 노예 거래 형태의 수급 경로에는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국제 인신 매매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폭력 조직이다. 폭력 조직과 권력층 주변 인사들과의 연계가 공공연하게 거론되기도 한다. 한국행 비행기가 현대판 노예선이고 한국이 노예 수입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외국인 노동자 정책을 재조정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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