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미국 국립보건원을 가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4.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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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병’에 청진기를 대다
마크 스턴 씨는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잔뼈가 굵었다. 1967년부터 근무했으니까 올해로 37년째 이곳에 몸 담고 있다. 국립보건원이 하는 일을 홍보하고 있는 그는, 그 덕에 이제 국립보건원에 연구원이 몇 명 있는지, 그 가운데 한국인이 몇 명인지 훤히 꿰뚫고 있다. 하지만 그도 정확히 모르는 것이 있다. 바로 국립보건원 안에서 이루어지는 연구 내용이다. 어려워서가 아니다. 워낙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다 보니 그조차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세계 최고의 건강 연구 기관답게 연간 예산이 34조원(2백90억 달러, 2004년 예산)에 달한다. 게다가 원장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비준할 정도로 권위를 갖추고 있다. 권위만큼 외양도 거대하다. 2004년 6월 현재 국립보건원은 36만7천2백60여 평의 대지에 63채의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연구 결과는 권위와 명성에 걸맞게 언론들이 앞다투어 소개한다.

현재 국립보건원 연구원은 모두 1천8백여 명, 그 가운데 한국인이 2백6명이다. 연구원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12개월 연구원, 18개월 연구원, 24개월 연구원이다. 이들은 거의 모두 본인들이 원해서 국립보건원에 발을 들여놓았다. 통과 의례는 비교적 간단하다. 연구원 자격 신청을 한 뒤, 일정한 선발 과정을 거치면 된다. 일단 선발되면 대접은 좋다. 평균 연봉이 12만5천 달러에 달하니까 말이다(의사는 더 많다).

그러나 1887년 처음 생길 때만 해도 국립보건원은 모든 것이 빈약했다. 연구원은 단 1명이었고, 1년 예산은 3백 달러였다. 연구 과제도 단 한 가지였는데, 선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염병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었다.
특이하게도 국립보건원에는 환자 전용 병상이 4백30개나 있다. 한쪽에는 10만 명이 동시에 검진받을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연구소에 웬 치료 시설일까. 이유는 한 가지, 임상실험자를 위한 것이다. 병실이나 치료 시설에 머무르고 있는 환자(피실험자)들은 대부분 미국인이다. 이들은 거의가 광고를 보고 제 발로 찾아온 사람들이다(인종·성별·연령대 등을 고려해 뽑는다). 물론 치료비나 입원비는 한푼도 내지 않는다.

국립보건원이 발표한 연구 결과 중에는 ‘폐경기 여성과 호르몬 요법’처럼 세상을 발칵 뒤집은 내용이 많다. ‘오토바이 사고자의 척추 마비 연구’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오토바이 충돌 사고가 나면 탑승자는 대부분 척추를 다친다. 10년 전에는 그같은 환자의 치료법이 네 가지나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 가지뿐이다. 국립보건원 연구자들이 오토바이 사고자가 1시간 내에 특정 치료를 받으면 마비가 예방된다는 깜짝 놀랄 사실을 알아낸 덕이다. 지금도 그 연구 결과 덕에 많은 젊은이들이 휠체어의 위험에서 벗어나 직립 보행을 하고 있다.

지금도 국립보건원에서는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연구되는 분야는 심장질환이다. 여성 건강과 암·에이즈·치매·신경장애·전염성 질병도 비중 있게 연구되고 있다.

대체의학은 비교적 최근에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 가운데 침(針)은 가장 인기를 끄는 연구 분야이다. 예컨대 연구원들은 외과 수술을 할 때 침을 놓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침이 통증을 어떻게 줄이는지 등을 꼼꼼히 분석하고 있다. 사스나 조류 독감 같은 질병 연구도 새롭게 시작되었다. 6번 연구동에서는 이들 전염병에 대한 연구가 뜨겁게 진행 중이다. 이 병동에서 아시아인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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