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님, 죄송합니다"
  • 오윤현 기자 (noma@e-sisa.co.kr)
  • 승인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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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오윤현 기자 가족의 '텔레비전 끊기 70일 전쟁'


텔레비전의 위험성과 불필요성이 강조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많은 가정이 텔레비전과의 '이별'을 두려워하고 있다. 텔레비전을 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시사저널〉 오윤현 기자 가족이 텔레비전과 두 달 넘게 '전쟁'을 벌였다. 그 생생한 기록을 싣는다.




텔레비전은 가구가 아니다. '자연'이다. 텔레비전을 켜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텔레비전 전원을 끄면서 하루가 마감된다. 텔레비전은 일상의 중심이자 환경이다. 거실의 가장 좋은 자리에 놓여 있는 텔레비전은 실내에 들어와 있는 외부(窓)이다. 가족들의 시선을 장악한 텔레비전은 거실에다 온갖 외부(세계)를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다.


텔레비전을 칭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바보상자라고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끊는' 경우도 거의 없다. 우리 가족에게 텔레비전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해악이 많은 매체였고, 그렇다고 멀리하기에는 너무 매혹적인 매체였다. '텅 빈 표정'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아내와 나는 분노와 함께 죄책감을 느꼈다. 몇 번이고 텔레비전을 끊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 끊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지난 두 달 남짓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끊기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 2월14일 이후, 우리는 단 한 편의 드라마도 만화 영화도 보지 않았고, 뉴스조차 보지 않았다.


지난 두 달 간 나는 우리 가족이 벌인 '텔레비전과의 전쟁'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왔다. 텔레비전을 끊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가끔 아이들이 금단 증세를 보이고 나도 딱 한 번 '배신'했지만, 잘 해냈다. 우리 가족은 텔레비전에 빼앗겼던 시선과 표정을 되찾았다. '사람들 사이에 있던 섬'이 바로 텔레비전이었다. 'TV님, 죄송합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 2월14일(수요일)

후배와 점심을 먹다가 텔레비전이 갖고 있는 위험성이 화제에 올랐다. 텔레비전의 빠른 화면 전환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떨어뜨리고, 공격적이며 현란한 텔레비전의 이미지들이 아이들을 바보로 만든다는 것이 우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텔레비전 시청을 끊겠다고 결심했다. 그것도 단번에.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대찬성이었다. 아이들을 앉혀놓은 뒤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오늘부터 텔레비전을 안 보기로 했다!" 예상대로 아들 영근이(7)가 제일 먼저 짜증을 냈다. "그럼 〈디지몬 어드벤처〉 못 보는 거에요?"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에∼에" 소리를 내며 울상을 지었다.


뜻밖에도 딸 영주(11)는 고소해 하는 눈치였다. 자기는 학원에 다니느라 텔레비전을 제대로 못 보는데, 늘 소파에 기대서 한두 시간씩 텔레비전을 보는 동생이 미웠나 보다. 하지만 〈세 친구〉 같은 드라마를 못 본다고 생각하니 섭섭한지 "맨날, 아빠 맘대로야!" 하며 투덜거렸다.


10년 넘게 거실을 지배해 온 텔레비전, 우리 네 식구의 시선을 장악하던 텔레비전을 작은 방 뒤에 있는 베란다로 내놓았다. 갑자기 거실이 텅 빈 것 같았다.


'금단 증세' 못 이기고 몰래 TV 보는 아이




■ 2월15일(목요일)

아침에 영근이가 일어나자마자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조금 뒤 작은 방 문을 열었더니 텔레비전을 켜놓고 만화 영화를 보고 있었다. 베란다에 내놓은 텔레비전을 들여놓은 것이다. 어색해 하는 표정이었다. 야단을 치고 돌아서는데 마음이 짠했다. '금단 증세가 이처럼 빨리 나타나다니.'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켜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밤 8시쯤 근린 공원으로 나갔다.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눈썰매장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아이들과 함께 눈썰매를 탔다. 아이를 텔레비전과 컴퓨터로부터 완전히 떼어놓으려면 부모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는데, 오늘은 일단 과업을 완수한 셈이다.


■ 2월16일(금요일)

영근이가 컴퓨터 게임을 장장 3시간이나 했다. 텔레비전을 못 보게 했다는 미안함 때문에 단속을 게을리한 것이 원인이다. 더 큰 문제는 게임 내용이다. 총으로 무장한 여전사가 적과 동물을 사살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구하는 게임인데, 총알이 사람 몸에 박힐 때마다 피가 튄다. 끔찍하다. 차라리 텔레비전을 보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가족의 시청 시간을 점검해 보았다. 영근이는 〈디지몬 어드벤처〉를 포함해 하루 3시간 정도, 영주는 1시간30분 가량 시청했다. 아내는 〈김용옥 논어 강의〉를 포함해 하루 2시간쯤, 나는 하루 평균 1시간30분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10세 이상 한국인들의 평균 텔레비전 시청 시간을 알아보니, 우리 가족은 비교적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짧은 편이다. 평일의 경우 남자는 2시간37분, 여자는 2시간56분을 시청했다. 토요일은 남녀 평균 3시간8분, 일요일은 3시간54분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1999년 통계청 〈생활 시간 조사 보고서〉).


■ 2월17일(토요일)

아침에 신문을 펼쳐 보다가 무의식적으로 '오늘의 명화'가 뭘까 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안내면을 보았다. 어이가 없어서 혼자 씁쓸하게 웃었다. 저녁 때 영근이가 저 혼자서는 생전 듣지도 않던 전래 동화 테이프를 틀어놓고 들었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신기했다. 아이들이 잠든 뒤 KBS FM 방송을 들었다. 오랜만에 듣는 한밤의 라디오 소리. 모처럼 추억에 잠겼다.


■ 2월18일(일요일)

아이들이 일요일인데도 아침 8시에 일어났다. 일요일 아침마다 보아오던 디즈니 만화 영화를 보기 위해 '저절로' 눈이 떠진 것이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로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머쓱해 했다. 이런 것이 텔레비전 중독일까?


낮에 이웃집 사람들과 산에 갔는데,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끊었다고 자랑했다. 아이들도 텔레비전 끊기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 2월19일(월요일)

아침 7시30분쯤 거실에서 타닥타닥 소리가 났다. 거실로 나가자 영근이가 재빠르게 컴퓨터를 껐다. 무얼 했느냐고 묻자 글자 치는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얼굴이 발갛게 된 것을 보면 게임을 한 것이 분명했다. 시디 롬 드라이브를 열어 시디 롬을 만져보면 금세 알 수 있겠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안쓰러움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 가령 몰래 컴퓨터 게임을 하면 벌을 씌운다든가, 반대로 1주일간 안하면 보상하는 식으로. 그렇지 않으면 아예 '계획 시청'을 해서 아이를 컴퓨터와 분리하는 것은 어떨까. 즉 좋은 프로그램만 선별해서 보게 하면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줄지 않을까.


■ 2월20일(화요일)

영주 봄방학. 일찍 퇴근해서 윷놀이를 했다. 그러나 나와 한편이 된 영근이가 2 대 1로 지자 '심술'을 부리는 바람에 판이 깨지고 말았다. 결국 영근이는 손바닥 열 대를 맞고 입을 다물었다. 아내는 윷놀이를 하다가 지나친 경쟁심 때문에 아이들 성격 버리겠다며 걱정했지만, 텔레비전 보는 시간에 마땅히 할 놀이가 없는 상황에서 어쩌겠는가. 아이들과 집안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더 찾아 보아야겠다.


■ 2월21일(수요일)

좀더 효과적으로 텔레비전을 끊고, 새로운 놀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사냥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정보가 적었다. 숙명여대 부설 유아원에서 2년마다 텔레비전 안 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는데, 아쉽게도 올해에는 계획이 없다고 했다.


오랫동안 TV를 아버지·스승처럼 모셨네




서점에 가보니 집안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소개한 책이 꽤 많았다. 그러나 텔레비전 끊기와 관련된 책은 별로 없었다. 우연히 텔레비전이 우리 생활을 얼마나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지 풍자한 시를 만났다. 함민복 시인이 쓴 〈텔레비전:오우가〉였다.


'테레비가 없다면, 끔찍한 상상이지만/나는 무엇을 스승으로 삼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중략)…/강시처럼 뛰어가는 캥거루를 어떻게 볼 것이며/사이다처럼 시원한 장백폭포를 어떻게 느낄 것인가/내 대신 춤추고 내 대신 노력하고 내 대신/절망하는 슬프기까지 한 브라운관이 없다면/공동 화제의 빈곤으로 다른 사람들을/어찌 만날 것이며/이 산골에서 어떻게 계절에 맞춰 외출복을 입고/시내에 나갈 수 있을까/…(중략)…/아 고마워라 텔레비전/액셀런트, 미라클, 임팩트, 내쇼날/이제 나는 어버이날 테레비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련다'


나 또한 꽤 오랫동안 텔레비전을 아버지처럼, 스승처럼 모셨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인터넷에서 오가는 대화를 마치 나 자신의 이야기라도 되는 양 얼마나 떠벌렸던가. 그리고 숱하게 텔레비전이 엑설런트하고, 미라클 같고, 임팩트하다고 느꼈다.


■ 2월23일(금요일)

영주에게 텔레비전을 다시 보여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BS에서 3·4학년용 영어 드라마를 하는데, 그 프로그램만은 보게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내와 상의한 결과, 우리가 내린 결론은 단호했다. '영어 공부야 다른 방법으로도 할 수 있으니까.'


■ 2월24일(토요일)

저녁 7시쯤 텔레비전에서 뭘 하고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는데, 난데없이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영주였다. 피아노 역시 먼지가 뽀얗게 쌓여 가던 물건인데, 할 일이 없으니까 영주 스스로 뚜껑을 연 것이다.


웃으며 '왜 피아노를 치느냐?'고 물었더니, 영주가 겸연쩍게 대답했다. "심심해서요." 텔레비전이 거실 한가운데 있었어도 피아노를 다시 쳤을까. 그건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다른 사물에 눈을 돌렸다는 사실이다.


우연히 건너편 아파트를 바라다보다가 새로운 광경과 마주쳤다. 80% 가량 되는 가구의 거실이 우윳빛·호박빛 광채에 휩싸여 있었는데, 대략 10초마다 번쩍거렸다. 다름 아니라 텔레비전 영상이 바뀌는 모습이었다.


■ 2월25일(일요일)

원주 큰 고모네 집에 갔다왔다. 그곳에서 텔레비전을 볼 기회가 있었지만, 아이들은 강아지랑 놀기 위해서인지 텔레비전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어른들도 마찬가지.


한참 강아지랑 놀던 아이들이 안 보였다. 작은 방에 있는 아이들을 보았더니 아뿔싸, 또 다른 스크린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락을 하느라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둘 다 눈알이 새빨갰다.


■ 2월26일(월요일)

이제 아이들은 텔레비전 안 보기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듯하다. 숙제를 다 하고 난 영주가 난데없이 오래된 사진첩을 들고 나타났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 그리고 나의 어릴 적 사진, 고모들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며 질문해 왔다. "누구에요?" "어디에요?""언제에요?" 감성이 풍부해진 것 같아 영주 얼굴을 몇 번씩 쳐다보았다. 확실히 텔레비전을 없앤 뒤, 아이들이 생각이 많아지고,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이 커지고, 호기심이 늘었다.


요 며칠간 모임이 많아 텔레비전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내게는 다행이지만, 아빠와 놀기를 희망하는 아이들에게는 분명 불행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독서 속도가 무척 빨라졌다며 자랑했다. 최인호의 〈상도〉를 열흘 만에 다 읽었다나(그것도 빠른 건가?).


텔레비전과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지난 2월28일 EBS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개미〉를 못 보아 무척 아쉬웠다. 3월7일에 방영하는 〈개미〉 2부를 볼까 말까 벌써부터 고민 중이다.


점심 시간에 문화과학부 동료 기자들과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했다. 텔레비전을 안본 지 꽤 되어 내가 끼여들 여지가 별로 없었다. 텔레비전을 안본 '죄'로 처음 화제에 못 낀 날.


■ 3월3일(토요일)

밤에 이웃집으로 마실을 가려는데, 아이들이 쫓아가겠다고 안달을 했다. 떼어놓기 위해 컴퓨터를 켜주고 30분씩 오락을 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꺼림칙할 수가 없었다. 많은 심리학자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베이비 시터용'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부작용이 일어났다. 이웃집에 있다가 정확히 2시간30분 만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맙소사 그때까지 두 아이 모두 두 눈이 퀭한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미국의학협회가 내놓았다는 '미디어 폭력에 가족을 최소로 노출시키는 법'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반성했다. △텔레비전·라디오·컴퓨터·비디오 등을 베이비 시터로 사용하지 마시오 △어린이들의 침실에 텔레비전이나 전자 오락기를 설치하지 말고, 식사 시간에는 그것들을 끄시오 △어린이들에게 미디어의 영향이나 미디어 광고에 대해 가르치시오 △보아도 좋은 것과 보아서는 안되는 것을 명확히 구분해 주시오 △어른들이 먼저 미디어 사용을 줄이고, 유익한 다른 활동을 늘리시오.


■ 3월4일(일요일)

고민에 빠지다. 실험이 끝나고 텔레비전을 다시 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대부분이 안 보면 놓치는 정보도 많으니 좋은 프로그램만 보면 어떻겠느냐고 충고한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일단 텔레비전이 눈앞에 보이면 다시 아무 생각 없이 스위치를 누를 것 같다. 정말 그럴 것이다.


■ 3월5∼14일

소강 상태였다. 영근이와 영주는 텔레비전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개학을 앞두고 해야 하는 과중한 공부가 한몫 거들었다. 나는 하루 한 시간 정도 인터넷 바둑을 즐겼다. 그때마다 아이들이 '아빠는 왜 약속을 안 지키느냐'고 소리쳤다.


TV 끊기 최대 효과는 '아이들의 순진성 보호'




■ 3월15일(목요일)

혹시 영주가 텔레비전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지나 않나 싶어 "아이들이 드라마 얘기 하지 않니?" 하고 물어보았다. 다행히 별로 안한다고 했다. 그러나 영주의 다음 얘기를 듣고 가슴이 뜨끔했다. "애들이 god·HOT 얘기는 많이 해요." 영주 표정을 보니 다행히 거의 관심이 없는 듯해서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나처럼 텔레비전 때문에 고민하고, 우리 가족처럼 텔레비전을 안 보는 가정은 얼마나 될까. 괜한 의문이 인다.


■ 3월16일(금요일)

저녁을 먹는데 영주가 불쑥 말했다.
"아빠, 오늘 뉴스 보면 안돼요?"
뉴스 시간에는 텔레비전 근처에 오지도 않던 아이여서 의아했다. "왜?"
"선생님이 불 끄다가 죽은 소방관 얘기를 했는데, 불 난 곳이 보고 싶어서요." 그 순간 또 한번 텔레비전을 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혹한 이미지가 아이에게 끼칠 영향은 분명할 테니까. 문득 텔레비전 뉴스만은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한다는 한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녹색평론〉에 실린 미국 매체 생태학자 닐 포스트먼의 글 〈사라지는 아이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포스트먼은 그 글에서 '텔레비전은 물리적·경제적·인식적, 또는 상상력의 속박이 따르지 않는 자유 입학이 허락되는 기술이다. 여섯 살 아이나 예순 살 노인이나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경험에 동일한 자격을 가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텔레비전은 무상의 사해 평등적 대화 매체다. …(중략 )… 따라서 어른과 어른 사이의 주요 차이점을 완전히 없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아는 어떤 사물들을 잘 알지 못하는 인간 집단이다. 그러나 텔레비전 시대에는 이것이 별 의미가 없다. 이것은 어린이의 순진성이 사라졌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뿌옇던 눈앞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텔레비전 끊기를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효과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아이들을 폭력과 도덕적 타락에 눈뜨지 않도록 하고, 순진성을 보호하는 것.


■ 3월19일(월요일)

어제 탁구장에서 탁구를 쳤으므로 오늘은 비교적 정적인 놀이를 하기로 했다. 카드놀이. 윷놀이에 신물이 나 있던 아이들이 신이 나서 달려들었다. 아내는 카드놀이가 아이들의 사행성을 부추긴다며 타박했지만, 독약도 잘 쓰면 보약이 된다니까 하기 나름 아닐까.


아이들이 잠든 뒤 아내가 비디오를 빌려다 보자고 했다. 처음에는 '비디오 정도야'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텔레비전을 오랫동안 보지 않으려면 모든 스크린(비디오·영화·컴퓨터)과 결별하라는 것, 그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결국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독서로 허기를 메움.


■ 3월21일(수요일)

영주의 불만이 또 터졌다. "아빠, 우리 텔레비전 봐요!" "왜?" "한 달이 넘었잖아요."


언젠가 한 달만 참아 보라고 했더니, 그렇게 공격하고 나섰다. 나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안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딸아이가 곧장 반격을 해왔다. "샤크라 춤을 배워야 한단 말이에요." "샤크라?"


자초지종을 캐물으니 학교 수련회에서 장기 자랑을 하는데, 친구들이랑 샤크라 춤을 추기로 했단다. 텔레비전을 안 보면 샤크라 춤을 배울 수 없다는 것이 영주의 주장이었다.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친구들을 따라 해도 될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영주가 울상을 지으며 볼멘 소리를 했다. "씨이, 맨날 아빠 맘대로야!"


■ 3월22일(목요일)

엉뚱한 데서 또다시 불만이 튀어나왔다. 아내가 피곤해 죽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안 보니 엄마한테 매달리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었다. 무얼 만들어 달라, 같이 카드놀이 하자, 산책 하자 등등.


아내는 어떤 때는 차라리 텔레비전을 틀어주고 편하게 있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부대끼는 아내 생각을 전혀 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얘기할 수밖에.


■ 3월24일(토요일)

저녁에 서울 홍제동 고모네 집에 갔다가 어쩔 수 없이 오락 프로를 보게 되었다.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대화보다는 텔레비전 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는 섬이 바로 텔레비전이었다. 오락 프로가 끝난 뒤 가까스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 3월31일(토요일)

나의 귀가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텔레비전 끊기를 주도하고 있으니 아이들의 여가 시간을 책임져야 한다. 친구들이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원 다니고 컴퓨터 게임 하느라 집 밖으로 나올 줄 모른다. 아이들을 데리고 2시간 남짓 배드민턴을 치고, 카드놀이를 했다. 아이들 스스로 '놀이 대장'이 되어야 하는데, 꼭 어른이 있어야 노는 것도 병이다.




■ 4월3일(화요일)

나 스스로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다. 아이들을 '배신'한 것이다. 새벽에 조금 일찍 일어났는데, 박찬호 선수 경기가 보고 싶었다(나는 엄청난 야구광이다). 베란다에 있던 텔레비전을 작은 방에다 놓고 1시간 남짓 고양이처럼 소리를 죽이고 시청을 했다.


8회 말쯤 되었는데, 아이들이 문을 두드리고 난리가 났다. 텔레비전을 끄고, 살금살금 작은 방에 딸린 베란다에 텔레비전을 숨겨놓고 문을 열었다. 아이들이 경찰처럼 들이닥치더니 내 표정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불심검문 끝.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을 나섰다. 내 입에서 '후훗'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 4월8일(일요일)

아이들을 데리고 강화도 생태 기행을 다녀왔다(1박2일). 역사의 섬에는 봄꽃이 활짝 피어나 있었다. 아이들은 정신 없이 개펄을 뒤적거렸다. 냉이도 캐고, 쑥도 캐고, 봄도 캐고…. 밝고 명랑한 봄이 아이들 온몸 구석에 파고들었다.


TV보다 무서운 컴퓨터는 어떻게 끊나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니, '텔레비전아 이제 안녕∼'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컴퓨터야 안녕∼' 하는 외침은 나오지 않았다. 컴퓨터를 언제 끊지? 이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 4월15일∼현재

15일로 우리 가족의 텔레비전 안 보기가 두 달을 넘겼다. 많은 사람이 텔레비전 끊기를 대단한 일로 여겨 격려도 하고, 여러 가지 사정을 묻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시행 착오가 너무 많았다. 아이들과 상의 없이 결정을 내렸고,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시간에 마땅히 할 놀이가 없어서, 오히려 더 해로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만 늘어났다.


이제 조금 계획성 있게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험하고 '실험'의 끝은 안 보인다. 솔직히 계속해서 텔레비전을 안 보게 될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제 텔레비전을 보더라도 예전처럼 텅 빈 표정으로, 가족끼리 대화도 없이 보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적이 남아 있다. 바로 컴퓨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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