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입맛을 잡아라"
  • 이문환 기자 (lazyfair@e-sisa.co.kr)
  • 승인 2001.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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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음료시장 '판촉 대혈전'…
젊은층 겨냥한 색깔·용기·사이버 마케팅 '불꽃'


경제 불황과 더불어 최악의 가뭄이 이어지고 있지만 '물로 만든' 음료수 시장 매출은 급증하고 있다. 깨끗한 물보다 별로 이로울 것이 없다고 하는데도 소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롯데 칠성음료측 예상에 따르면, 올 여름 국내 음료 시장 규모는 1조8천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7% 늘어난다.


돌풍 일으킨 '색다른 콜라'




올해 음료 시장의 특징은 대표 주자 없이 난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웅진식품의 '초록매실'과 롯데의 '2% 부족할 때'가 시장을 선도했다면, 올해는 탄산 음료·주스·차(茶) 등 다양한 분야에서 출시된 신제품들이 소비자 입맛을 붙잡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체 음료 시장 매출의 37%를 차지하는 탄산 음료 시장은 가장 규모가 크다. 따라서 가장 치열한 격전지 중 하나이다. 콜라는 코카콜라가, 사이다는 칠성사이다가 독주하던 '1인 맹주' 체제에 새로운 도전자가 나타났다. 첫 도전자는 색깔 있는 콜라. 지난 4월 해태음료가 노란색 '옐로 콤비콜라'를 내놓은 것이다. 1996년 콤비콜라를 내며 시장에 진출했던 해태로서는 야심찬 재도전인 셈이다.


콜라는 검은색이라는 고정 관념을 깬 이 제품은 출시한 지 두 달 만에 60억원 매출을 달성했는데, 이는 기존 콤비콜라의 1년 매출액에 맞먹는 규모이다. 해태측은 일단 '1차 목표'를 달성했다고 평가한다. 해태음료 상품기획팀 최홍국 팀장은 "빨갛거나 노란 사이다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라며 무색 이미지의 사이다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칠성사이다가 장악하고 있는 사이다 시장에서는 만반의 태세를 갖춘 코카콜라의 '스프라이트'가 벌일 설욕전이 주목할 만하다. 광고계에서 스프라이트는 1992년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롯데가 '스프린터'라는 유사품을 내어 맞대응하는 바람에 시장 진입에 실패한 '불운의 제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 코카콜라가 출시한 스프라이트는 10∼20대의 취향에 맞추어 용기 디자인과 맛을 바꾼 '업그레이드' 제품이다. 대대적인 시음 행사를 벌이는 등 공격적으로 판촉 활동을 펴고 있다.


지난해 '초록매실'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저과즙 주스 시장은 음료 업계의 새로운 '황금알'로 떠올랐다. 여전히 농도 100%의 고품질 주스인 프리미엄급 주스와 냉장 유통 주스가 시장의 실세이지만, 성장 가능성은 저과즙 주스가 훨씬 높다. 농도 100% 제품 구매층이 주로 가정 주부라면 저과즙 제품 구매층은 10∼20대이기 때문이다. 해태음료의 '쥬디', 웅진식품의 '피앙세', 롯데칠성의 '히야', 코카콜라의 '쿠우' 등 올해 출시된 제품들은 젊은층 입맛에 맞추어 '시원하다' 대신 '맛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칼슘과 비타민 등을 보강한 기능성 음료라는 특징을 보인다.


용기 디자인도 '개성 경쟁'




'나를 물로 보지마'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낸 롯데의 '2% 부족할 때'와 같은 미과즙 음료 시장도 전투가 치열하다. '2% 부족할 때'는 과즙이 '병아리 눈물'만큼(1∼5%) 들어가 생수보다 맛있으면서도 마시기에 부담이 없어 20세 전후 여대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한국에 미과즙 음료를 처음으로 소개한 남양유업이 지난 4월 '니어워터 O2'를 출시하면서 시장을 탈환하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맸다. 코카콜라는 '워나비'를 내놓았고, 해태는 아예 과즙을 빼고 향만을 넣은 '물의 눈물'을 출시하며 롯데의 아성을 공략하고 있다.


미과즙 음료와 함께 20대 여성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차(茶) 제품은 업계의 '차세대 유망주'로 꼽힌다. 한국보다 한 발짝 앞서가는 일본 시장의 경우 이미 음료 시장의 30%를 차 음료가 차지하고 있다. 올해 들어 국내 업체들은 캔커피에서 홍차·녹차·보리차까지 출시하는 추세다. 가장 규모가 큰 홍차 시장에서는 롯데의 '실론티'와 코카콜라의 '네스티', 해태의 'T'가 격돌한다.


업체간 경쟁은 용기 디자인 분야로 확전되고 있다. 업계가 20대 여대생을 대상으로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해태음료 상품기획팀 이희만 과장은 "중고생들은 대학생 언니를 따라 하려는 습성이 있다. 그리고 나이 든 여성은 여대생들을 모방하면서 젊어지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시장 선도자인 20대 여성만 붙잡으면 다른 계층 소비자는 저절로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태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낸 '쥬디'의 제품 용기를 디자인하면서 과감한 모험을 시도했다. 제조할 때 불량률이 높아질 것을 감수하고 페트 용기 전체를 제품명과 캐릭터가 그려진 라벨로 감싼 것이다.


음료를 손에 들거나 핸드백에 넣고 다니며 마시는 이가 늘어나면서 용기 크기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찾는 이가 없었던 350ml와 500ml 제품이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다. 또한 손에 쥐기 편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도록 용기가 점점 가늘고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해태측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n세대가 음료수를 고르는 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맛이나 용기 디자인보다 '색깔'이다. 초록색으로 상큼한 이미지를 강조한 '초록매실' 광고나 해태의 '옐로 콜라' 광고 등에서 도입된 '컬러 마케팅'은 음료 업계의 주된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를 상대하려면 온라인 마케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 코카콜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각종 이벤트와 게임 등을 제공하며 코카콜라 마니아를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홈페이지 서버 용량을 늘린 해태 역시 '사이버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5월 웅진식품은 일반 가정부터 소매상까지 인터넷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 매장을 만들었다.


지난해 롯데그룹은 히카리 그룹과 컨소시엄을 이루어 해태음료를 인수했는데, 지난 2월 롯데칠성이 제일제당 음료사업부까지 인수해 국내 음료 업계의 판도는 '롯데와 그 적들'로 굳어지고 있다. 롯데에게 롯데백화점과 할인점 마그넷, 전국에 설치된 자동판매기 1만5천대는 든든한 우군이다. 그래서 업계 관계자들 중에는 롯데가 강력한 영업망만을 믿고서 신제품 개발을 등한시한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지난해 남양유업이 '니어워터'를 3개월 먼저 출시하고도 '2% 부족할 때'를 낸 롯데에게 미과즙 음료 시장을 빼앗긴 것도 롯데의 '유통 파워'에 밀린 탓이라고 지적하는 업계 관계자가 많다. 남양유업 홍보담당 최경철 주임은 "칠성사이다는 전국 어디에 가나 있다. 거기에 2% 부족할 때를 두기는 쉽다. 하지만 니어워터 하나 팔려고 우리가 도서 지역에 들어갈 수는 없다. 소매점들도 롯데칠성이 제공한 냉장고를 갖고 있는 곳이 많다. 우리 처지에서 제품 하나 팔고 소매점에 냉장고를 주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신제품 개발보다 모방 의존하는 고질 안 고쳐져





저과즙·미과즙 음료 떴다























































음료 1999년 매출액 2000년 매출액
사이다 2194억원(9.6%) 2100억원(8.3%)
콜라 4762억원(20.8%) 5400억원(21.4%
기타 탄산 음료 1900억원(8.3%) 1744억원(6.9%)
천연 과즙 음료 3100억원(13.5%) 3059억원(12.2%)
일반·저과즙 음료 2794억원(12.2%) 3605억원(14.3%)
곡물 음료 700억원(3.1%) 1500억원(6.0%)
이온 음료 2300억원(10.0%) 2000억원(7.6%)
캔커피 1100억원(4.8%) 1500억원(6.0%)
미과즙 음료 180억원(0.8%) 1460억원(5.8%)
기타 3070억원(16.9%) 2810억원(11.1%)


'잘 나가는' 남의 제품을 모방하는 전략은 롯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음료업계 전체에 만연해 있는 고질이다. 그동안 신상품이 출시되어 시장을 형성하면 모방 제품이 우후죽순으로 나와 시장을 죽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1980년대 후반 '맥콜'이 붐을 일으키자 보리텐·보리보리 등 유사품이 뒤따랐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고 신제품이 그렇게 떳떳한 것도 아니다. 일본 등 외국 시장에서 '검증된' 제품만을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 올해만 해도 그렇다. 미과즙 음료·저과즙 주스 등은 모두 2∼3년 전 일본 시장에서 유행했던 것들이다. 제품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국내 업체들은 단맛·신맛 정도부터 시작해 브랜드 이름이 붙어 있는 위치까지 소비자에게 의견을 묻는 꼼꼼한 마케팅 조사를 실시하기도 하지만, 일본 제품이나 경쟁 업체의 제품을 그대로 '벤치마킹'하는 사례도 많다.


업계에서는 국내 음료 시장에 코카콜라처럼 꾸준히 팔리는 '명품'이 나오지 않는 이유로 한국 시장은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소비자의 변덕을 탓하기에 앞서 국내 업체들은 우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기업가 정신부터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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