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솥밥 동지, 왜 원수 되었나
  • 권은중 기자 (jungk@e-sisa.co.kr)
  • 승인 2001.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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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석 사장·이상호 전 단장 '폭로전' 배경/
"권력 실세 낀 이권 쟁탈전"


인천국제공항공사 강동석 사장과 이상호 전 개발사업단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두 사람의 폭로전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신공항을 건설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던 두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공항 관계자들은 두 사람이 틀어진 것을 '미스터리'라고까지 표현한다.




미스터리 : 7년 간의 신뢰를 깨고 서로 등을 돌린 강동석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오른쪽)과 이상호 전 개발사업단장(맨 오른쪽).


강사장과, 그의 최측근이라는 뜻에서 '좌상호'로 불리던 이씨는 영종도 1천7백만평 뻘에 세계 수준 공항을 건설하기까지 7년간 한솥밥을 먹었다. 그런데 8조원이 투입된 대역사를 성공적으로 마치자마자 두 사람은 고작해야 2천억원짜리 공사인 공항 유휴지 개발자 선정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다 갈라서고 말았다. 결국 강사장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이씨가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7년간 쌓아온 신뢰가 한 달여 만에 깨진 것이다.


그렇게 절친했던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간 것은 인천공항 제5 활주로 예정지 근처의 놀고 있는 땅 1백20만평에 대한 개발 업체 선정 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적자에 시달리는 인천공항은 돈을 벌려고 2020년까지 한시적으로 노는 땅을 개발할 투자자를 찾았다. 경기가 나빠 민자 유치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인천공항은 토지 사용료(세금 포함)만 받기로 결정하고 올 3월 사업자 모집에 나섰다.


그런데 지난 7월10일 사업자 선정 결과 토지 사용료를 무려 1천7백29억원이나 내겠다는 에어포트72(주)가 떨어지고, 인천공항이 20년간 내야 할 세금 액수에도 못 미치는 3백25억원을 써낸 원익(주)이 사업권을 따내자 인천공항이 들썩거렸다. 강사장은 바로 다음날부터 평가위원들에게 토지 사용료 분야를 재평가하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두 차례 재평가에서도 원익이 우선협상 업체로 선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강사장은 7월16일 양언모 사업개발팀장을, 7월23일 이상호 단장을 보직 해임했다.


그러자 이상호씨가 8월6일 기자회견을 갖고 "강사장이 에어포트72를 편든 데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국중호 국장과 김홍일 의원의 보좌관인 박 아무개 씨가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했다"라고 폭로해 이 사건이 정치 쟁점화했다.


개항 전인 지난 3월까지 두 사람은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던 각별한 사이였다. 교통부 기획관리실장을 6년이나 했지만 끝내 차관에 오르지 못한 강사장은, 1993년 교통안전진흥공단으로 좌천되었다가 오 명 건교부장관 추천으로 신공항건설공단 단장을 맡게 되었다. 그는 공사장 컨테이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7년 만에 인천공항을 성공적으로 완공했다. 그에게 돌아온 갈채는 기대 이상이었다. 개항 날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을 때도 이한동 국무총리가 사석에서 "강사장을 믿고 밀어붙였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강동석·이상호 씨 행태 모두 석연치 않아




건설 경험이 없던 강사장에게 이상호라는 인물은 천군만마였다. 일부 언론은 강사장이 이씨를 직접 발탁했다고 보도했지만 사실은 신공항건설공단 고위 관계자였던 이 아무개씨가 강사장에게 이상호씨를 소개했다. 그는 해운항만청 시절부터 이씨와 일해 그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서울대 건축학과와 파리 국립토목대학원에서 구조공학을 전공한 이상호씨도 토목 중심의 해운항만청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던 차였다. 그는 건축과 전산을 접목하는 프랑스 선진 건축기법을 익힌 몇 안되는 전문가였다. 해운항만청에서도 일 욕심이 많고 추진력이 강하기로 소문났던 그는 공단 입사 후 바로 강사장 눈에 들었다. 그는 2년 만에 실장을 거쳐 본부장에 올랐고, 40세에 이사가 되었다. 5급 공무원에서 1급 공무원급인 이사까지 파격 승진을 거듭한 것이다.


이런 두 사람이 물고 뜯자 추측이 쏟아져 나왔다. 강사장은 "배신당했다"라고 말했고, 이씨는 "이제 와서 날 팽한다"라고 비난했다. 부자지간에 비유되던 두 사람 사이에 재를 뿌린 유력한 '용의자'는 돈과 권력이다.


우선 강사장이 에어포트72라는 업체를 무리하게 밀면서 사건은 커졌다. 건교부장관을 꿈꾸는 강사장은 공항 건설을 지휘하는 내내 청탁 관련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것이 그가 7년간 무난하게 임무를 수행한 비결이었다. 그렇지만 2천억원짜리 골프장 건설을 둘러싸고 현정권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강사장을 그대로 내버려 둔 것 같지 않다. 강사장은 평가위원 3명을 직접 선정했는가 하면, 평가를 하루 앞둔 7월9일 평가위원들에게 수익성에 주목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 원익이 우선협상자로 결정된 다음에도 돈을 많이 써낸 에어포트72가 선정되어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해 의심을 샀다.


이 전 단장의 행태도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씨는 검찰 수사에서 '수익성을 우선해야 한다'고 전하라는 강사장의 지시를 어기고 평가위원에게 "안전성이 중요하다"라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그 때문에 검찰은 업무방해 혐의로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26쪽 상자 기사 참조).


이씨는 특히 1차 심사 평가서를 접수하기 전날인 6월21일 사업계획서 평가에서 중요한 기준인 토지 사용료 항목을 자신의 전결로 삭제하고 토지 사용기간으로 대체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유일하게 돈을 벌 기회를 임의로 차단한 것이다. 또 토지 사용료 산출 근거 자료를 의무 제출토록 규정한 조항도 완화했다. 이씨는 실무자의 실수라고 주장했지만 서류를 여러 사람이 검토해 만드는 만큼 설득력이 약하다. 원익(주)이 탈락하지 않도록 손을 썼다는 의혹을 받을 만한 대목이다.


역특혜의 진원지가 된 원익(주)은 반도체 원재료인 실리콘 생산업체로 매출의 상당 부분을 삼성전자에 의존하고 있다. 또 삼성물산이 원익 컨소시엄에 참여해(지분 9%) 골프장 건설을 맡고, 삼성에버랜드가 골프장 운영 및 관리를 맡을 계획이어서 이래저래 원익 컨소시엄은 삼성그룹과 밀접한 관계이다. 원익(주) 이용만 사장과 삼성물산 부회장을 지낸 이필곤씨는 처남 매부 사이다. 그 때문에 이상호씨가 삼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원익(주)을 편들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광주일고 출신 이상호씨, 동교동계와 가까워




또 다른 시나리오는, 공항 이권을 둘러싸고 권력 실세끼리 암투를 벌였는데 그 결과 이 전 단장 편이 강사장 편에 밀렸다는 추론이다. 한나라당 이해봉 의원은 "이번 사건은 강씨와 이씨가 각각 대변하는 집권당 내부 권력 실세들의 이권 쟁탈전이다"라고 규정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사업의 전반적 계획은 강사장이, 세부 사항은 이씨가 챙겼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이씨는 사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계약을 마음대로 체결해 회사에 손해를 입힘으로써 두 번이나 경고를 받았다. 특히 지난 4월 국제업무지역 사업자를 모집하면서 사업 이행금도 못 내는 업체를 선정해 물의를 빚었다. 이 건설업체는 이씨의 고교 동문이 경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업무지역 사업자 선정은 이씨의 전결 사항도 아니었고 사장에게도 보고하지도 않아 강사장이 크게 화를 냈다는 후문이다.


상명하복에 익숙한 공무원 출신인 이상호 전 단장이 사장을 제쳐놓고 사업자를 마음대로 선정한 것은 그가 강사장을 무시할 만큼 공항의 실력자로 떠올랐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그가 그만큼 성장한 데는 어떤 정치적 힘이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는 광주일고 출신이다. 공항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그가 출신고를 연고로 삼아 동교동계 인사를 만났고, 동교동계 인사들도 동향 중에서는 보기 드문 엘리트 기술 관료 출신인 이씨를 밀어주었다고 말했다. 때묻지 않았던 이씨가 권력의 힘을 실감하면서 이권에 개입하고 정치에 맛을 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건의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추진력 강하고 일 욕심 많던 전도 유망한 관료 두 사람이 정치 바람에 휩싸이게 된 것은 그들은 물론 한국 관료 사회 전체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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