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마저”…DJ, 깊어가는 ‘三弘苦’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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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은 감옥에 있을 때 가족에게 보낸 옥중 서신에서 3남인 홍걸씨에 대해 유난히 미안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같은 안쓰러움과 함께...
지난 4월12일 만난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두툼한 서류 뭉치를 보여주었다. 이른바 ‘김홍걸 파일’이었다. 정치권에서 ‘김홍걸 스토커’로 불리는 이신범 전 의원이 홍걸씨와 관련해 낸 보도자료와 사진들, 그동안 언론에 보도되었던 홍걸씨 관련 기사, 그가 다니는 미국 대학에 대한 자료들이 파일에 들어 있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들어 파일이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4월9일,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특보를 지냈던 최규선씨(미래도시환경 대표)가 “홍걸씨에게 9억원을 주었다”라고 폭로한 이후 속속 자료가 보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일반인에게 ‘미국 유학생’으로만 알려졌던 대통령의 셋째 아들 홍걸씨가 ‘최규선 게이트’에 깊숙이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자 여권 인사들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이다. 동교동계의 한 의원은 “미국에 유학 중이라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아직도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여권 인사들이 받은 충격은 ‘드디어 막내까지…’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당선된 직후인 1998년 1월, 가족을 모아놓고 처신에 각별히 조심하라며 가족 단속부터 했던 김대통령은 이 부분에서 철저히 실패한 셈이다.


일찍부터 미국 유학…정치권과 거리 멀어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의 두 아들은 이미 각종 구설에 오를 만큼 올라 있었다. 첫째 아들 김홍일 의원은 벤처 게이트가 불거질 때마다 ‘권력 실세 ㄱ의원’으로 거론되었고, 건설업자·조폭 출신 사업가 등과 어울려 다녀 무수한 뒷말을 낳았다. 둘째 아들 홍업씨는 정권 초기 ‘관리’ 차원에서 아태재단 부이사장이 되었지만 친구인 김성환씨와의 ‘이상한 돈거래’ 때문에 조만간 검찰 조사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막내인 홍걸씨까지 비리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만약 세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구체적인 비리 혐의가 확인되어 구속된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고, 대선 국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3남 홍걸씨(38)에 대해 아는 정치권 인사는 드물다. 두 형은 자금이나 홍보에서 김대통령을 가까이서 도운 동지적인 관계여서 동교동 인사들과 ‘한식구’였던 반면, 그는 두 형보다 훨씬 어린 데다가 일찍부터 미국 유학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1982년 이대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 입학했으나 2년 만인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87년까지 애틀랜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을 다닌 뒤 1990년에 다시 고려대에 복학해 1993년에 졸업했다. 그런 뒤 다시 미국으로 가 남가주 대학에서 2000년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과 석사 과정을 마치는 데 18년이 걸린 셈이다. 1990년 부산 출신인 임미경씨와 결혼한 그는 두 아들을 두었다. 임씨의 부친은 작고했고, 모친은 부산에서 큰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고 있다.


두 형과 달리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인지 그는 사람 만나는 것에 대한 기피증이 있다고 한다. 홍걸씨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김대중 납치 사건’을 겪었고, 중학교에 다닐 때는 아버지가 감옥에 있는 것을 보아야 했으며, 고등학교 2년 간은 연금 생활과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을 겪었다. 이 때문인지 김대통령은 감옥에 있을 때 가족에게 보낸 옥중 서신에서 유난히 홍걸씨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표현했다. <김대중 옥중서신>에 나와 있는 한 대목이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이 나로 인하여 겪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아프다. 특히 그 중에서도 네가 겪은 시련은 특별한 것이었다. 사춘기의 너에게 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할 때 아버지는 죄책감을 느껴왔다.’




4·13 총선 전후 홍걸씨 이름 자주 오르내려


아버지가 느끼는 막내에 대한 안쓰러움과 함께 김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사이의 유일한 혈육이라는 점은 그가 두 형과는 다른 측면에서 ‘특별한 존재’가 된 배경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고 2년이 지난 1999년까지 그의 이름은 정치권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이때까지 그는 ‘착실한 미국 유학생’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2000년 2월9일, 당시 한나라당 이신범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하고 나섰다. 미국 유학 중인 김홍걸씨가 호화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며 자금 출처를 밝히라고 요구한 것. 그 해 4월 총선을 전후해서는 홍걸씨의 이름이 정치권에 자주 오르내렸다. 호남 지역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ㅎ의원을 방문했다는 소문이 현지에 무성하게 퍼졌고, 서울 지역에 출마해 당선된 한 민주당 인사는 공천이 어렵게 되자 막판에 홍걸씨를 움직여 공천을 따냈다는 소문이 정치권에 나돌았다. 그가 벤처 기업인 타이거풀스와 관계가 있다는 말이 증권가에 떠돌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때부터 언론에 홍걸씨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신범 전 의원은 스토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홍걸씨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그동안 이씨와 언론이 제기한, 홍걸씨 관련 의혹의 핵심은 주택 구입 자금과 생활비의 출처이다. 2000년 홍걸씨는 로스앤젤레스 인근 부촌인 팔로스버디스에 97만5천 달러(약 13억원)짜리 주택을 구입했다. 전에 살던 주택을 판 돈과 은행 융자금으로 샀다고 홍걸씨측은 해명했지만 이씨는 무기중개상으로 알려진 조풍언씨가 홍걸씨에게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씨 또한 지인들에게 “내가 홍걸씨를 돕고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과정에서 공개된 홍걸씨의 미국 한미은행 계좌는 호화 생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지난 3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홍걸씨는 2001년 2월26일부터 6월27일까지 4개월간 3억4천여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한달 평균 8천여만원을 쓴 셈이다. 이 계좌에 따르면, 입금액이 1만 달러, 8천 달러, 5천 달러 등으로 차이가 있어 ‘급여’가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은 흔적이 역력하다. 은행에서 융자받은 돈에 대한 분할 상환금과 생활비를 감안하면 그는 월 2만 달러(약 2천5백만원) 정도는 벌어야 한다.



미국 생활비 출처 놓고도 의문 꼬리 물어


물론 홍걸씨측은 “대학의 객원 연구원으로서 급여를 받고 있어 문제가 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있는 포모나 대학은 7개 사립 대학 컨소시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5개 대학(학생 수 4천5백80명)과 2개 대학원(학생 수 1천80명)으로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포모나 대학 산하 태평양연구소는 주로 일본 문학 작품을 번역하고 교육·언론 분야와 관련한 세미나와 연구 활동을 하는 기관이다. 석사 학위를 갖고 있는 홍걸씨가 연구 활동을 해서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래서 한 달에 수천만원에 달하는 생활비의 출처가 어디냐는 의문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렇듯 진작부터 홍걸씨 문제가 쟁점화했지만, 청와대는 이신범씨를 근거 없는 폭로를 일삼는 사람으로 몰아붙였을 뿐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씨의 폭로로 거주지가 노출되어 경호에 문제가 생겼다는 불만은 토해냈지만, 과연 홍걸씨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는 정밀하게 조사하지 않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최규선씨가 홍걸씨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풍문도 지난해 말부터 여권 주변에서 나돌았다. 올해 초 여권의 한 핵심 인사도 사석에서 최씨가 홍걸씨를 잡고 여기저기 일을 벌여 골치가 아프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로스앤젤레스에도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곳에 사는 한 인사는 현지의 호남 사람들로부터 홍걸씨가 동서를 내세워 수금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올 초에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왜 홍걸씨에 대해 제대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일까. 청와대의 친인척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이다. 동교동계의 한 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 외에도 여러 군데서 홍걸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들이 청와대에 올라간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일단 ‘문제가 없다’는 답을 한번 듣고 나면 또다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지는 게 권력 주변의 분위기 아니냐.”


사직동팀 해체 후 친인척 관리 시스템 ‘구멍’


한나라당은 홍걸씨가 한 달에 한 번꼴로 입·출국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천공항에 근무하는 아시아나항공의 한 관계자는 최근 3∼4개월에 한 번도 홍걸씨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관련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평소와 달리, 민감한 사안이어서 관련 기록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에서 친인척 관리를 해 온 한 동교동계 인사는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최규선씨가 홍걸씨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내에 들어와도 경찰이나 국정원이 통보해 주지 않아 해외에 있는지 국내에 들어왔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문제가 생겨도 본인에게 물어보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면 달리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 현재의 친인척 관리 실태라고 말했다. 2000년 10월 사직동팀이 해체되면서 조사 기능을 담당할 손발이 없어진 것도 친인척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제도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정권 초기부터 지난 2월까지 친인척 관리를 담당한 사람들은 ‘김홍일 사람’이었다. 친인척 담당 비서관이었던 이재림씨는 김의원의 중학 친구로서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귀국해 청와대에 들어갔다. 이씨와 함께 핵심적으로 친인척 관리를 담당했던 김길성 행정관(현 근로복지공단 감사) 또한 연청 사무총장 출신으로 김의원의 핵심 측근이다. 잘 알아야 제대로 관리한다는 이유로 이들이 기용되었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온정주의에 치우쳐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규선 게이트’만으로 홍걸씨의 곤욕이 끝날 것 같지 않다. 한나라당은 홍걸씨 부부가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 은행에 제출한 서류에서 아시아나항공 미주본부에 근무한 것으로 되어 있는 데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에 근무한 적이 없다. 홍걸씨는 한국에 오갈 때도 아시아나항공만을 이용했다. 한나라당은 이 대목에 무언가 의혹이 있다고 보고 추적하고 있다. 대통령 부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더 늘어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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