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8명 “노무현 잘 하고 있다”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3.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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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당선자의 지난 한달을 국민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시사저널> 여론조사 결과 노 당선자는 대체로 후한 점수를 받았다.
과거 대통령 선거도 아주 다르지는 않았지만, 이번만큼 세대·계층·지역이 둘로 극명하게 나뉘어 맞섰던 선거는 없었다. 노무현 당선자는 이 팽팽한 양자 대결에서 48.9%(1천2백여만 표) 지지를 얻어 승리했다. 직선제가 부활된 이후 치러진 대선 중에서 가장 높은 득표였다. 하지만 자신을 찍지 않은 국민이 더 많은 소수파 대통령을 면치는 못했다.


격전의 여파는 대선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환호하는 젊은 지지자들 너머에는 의혹의 눈초리를 풀지 않는 완고한 보수주의자들이 진치고 있다. 국회 사정은 더 열악하다. 전체 국회의원 2백73명 중 민주당 의원은 1백3명. 반면 한나라당 의원은 과반수가 넘는 1백51명이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무엇 하나 뜻대로 처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노무현 정권이 역대 최약체 정권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런 노무현 당선자가 집권을 위한 예열(豫熱)을 시작한 지도 이제 한 달이 지났다. 과연 국민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시사저널>이 1월23일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노무현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활동 한 달에 대한 점수는 일단 후하다. 국민 10명 가운데 8명(81.8%)이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긍정적인 답변은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미디어리서치가 1월11일 조사했을 때는 잘했다는 응답이 78.1%였다.



대부분의 국민이 ‘당선 후 한 달’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지역·계층 별로 편차는 약간씩 있었다.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세게 밀었던 호남(96.5%)과 민주당 지지자(89.9%)들의 만족도가 역시 컸다. 반면 대선 때 강한 ‘반노’ 정서를 응집시켰던 영남 유권자들은 상대적으로 짜게 점수를 매겼다(부산·울산·경남 76.9%, 대구·경북 76%). 세대 차이는 별로 없었다.



‘안정 총리’ 지명, 일단 합격점



노무현 당선자가 첫 총리로 고 건 전 총리를 지명한 것에 대해서도 ‘바람직하다’(72.1%)는 응답이 많았다. 주요 언론과 네티즌 사이에서 고씨의 낮은 개혁성과 역대 정권에서 중용되었던 처세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민은 이런 비판에 크게 호응하지 않았다(‘바람직하지 않다’ 16.9%). 특히 50대(82.7%), 60대(79%) 고연령층에서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대선 때 이회창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67.5%도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보수층 껴안기와 국회 인준 통과 등을 겨냥한 ‘안정 총리’ 지명이 일단 합격점을 받은 셈이다.



노무현 당선자는 대통령에 당선한 직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정치 개혁을 역설한 바 있다. 대선 이후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의 화두 역시 정치 개혁이다. 국민들의 시선도 일단 그쪽에 쏠려 있다. ‘노무현 정부가 앞으로 가장 잘할 것으로 보이는 분야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정치 개혁’(최초 응답 29.4%, 중복 응답 39.6%)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왔다. ‘경제 안정’ ‘지역갈등 해소’ ‘빈부격차 해소’ ‘노사 안정’ ‘북한 핵 문제 해결’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순서는 국민들이 ‘잘해야 한다’고 여기는 순서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잘할 것 같은’ 순서다. 다시 말해 국민들이 노무현 당선자가 ‘정치 개혁’을 가장 잘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뜻이다. 이런 응답은 남자(44.1%), 50대(43.6%), 블루칼라(45.3%), 화이트칼라(44.3%), 충청권(48.5%)에서 특히 높았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주도 세력이거나 ‘철새 정치인’이 가장 많이 출현했던 지역의 주민들로, 낡은 정치의 폐해를 가장 많이 경험한 이들이기도 하다.






개혁 필요한 집단 ‘정치권→재계→공직사회’ 순



개혁이 가장 시급한 곳이 어디인가를 묻는 질문에서도 이런 국민의 기대 심리가 또다시 드러났다. 개혁이 가장 필요한 집단으로 ‘정치권’을 지목한 응답자가 과반수(50.2%)를 넘어선 것. ‘재벌 등 경제계’(19.7%)나 ‘정부 부처와 공무원’(12.3%), ‘검찰·국정원 등 권력 기관’(10.4%), ‘언론’(3.2%) 등 경쟁 상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특히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55.8%)과 노무현 당선자의 고향인 부산·울산·경남(61.8%)에서 정치 개혁 욕구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온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호남을 근거로 한 민주당 구주류를 물갈이할 수 있느냐, 영남 공략을 통해 전국 정당으로 일어설 수 있느냐, 이 두 가지가 정치 개혁, 특히 민주당 개혁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적 청산이 제도 개혁보다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나온 조사 결과도 노당선자를 포함한 민주당 개혁파에게는 원군이 될 법하다. 국민 3명 중 2명은 '철새 정치인 퇴출, 세대 교체 등 인적 청산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67.5%)고 응답했다. ‘정당 민주화, 선거구제 개편 등 제도 개혁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25.4%)는 응답은 낮았다.



다만 정치 개혁은 성사되기까지 여러 난관과 딜레마에 부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개혁과 관련해서 ‘민주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정책과 이념 중심의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민 34.7%만이 지지를 보냈다. 반면 ‘현 민주당의 틀을 유지하면서 당내 개혁을 해야 한다’(56.5%)는 응답이 과반수를 넘었다. 국민은 급진적인 것보다 온건한 방법을 선호하고 있는 셈. 이는 노당선자를 지지해온 민주당 개혁파 의원들의 생각과는 괴리가 있다. 호남 유권자(‘발전적 해체’ 23.9%, ‘당내 개혁’ 70.8%)들이 온건한 방식을 선호한 반면, 부산·울산·경남(‘발전적 해체’ 40%, ‘민주당 유지’ 49.7%)에서는 급진적인 방법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은 점도 노당선자에게는 고민거리가 될 듯하다.



이 밖에 노무현 시대의 새로운 흐름에 대해서도 대체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인터넷을 통해 장관 후보를 추천받고 국민 제안을 받는 등 이른바 ‘인터넷 정치’는 10명 중 8명(78.2%)이 ‘바람직하다’고 응답했다. 노무현 당선자가 386 참모들을 계속 중용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10명 중 7명(72.1%)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국민은 ‘노무현 당선자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치를 펴고 있다’는 주요 언론이나 보수 인사들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았다.






“노무현 시대에는 더 살기 좋아질 것”



노무현 당선자는 ‘4천억원 대북지원 의혹’ 사건을 비롯해 현정부에서 벌어진 의혹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밝히겠다고 수 차례 약속했다. 우선 현정부의 묵은 때를 털어 새 정부의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지 않겠다는 뜻이다. 나아가 김대중 대통령과 선을 그어야 전국 정당 건설과 국민 통합이 가능하다는 현실적인 계산도 포함되어 있다. 이 약속도 국민은 일단 믿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3명 중 2명(66%)은 ‘지켜질 것이다’라고 응답한 것. 그렇지만 여기서도 호남(71.7%)과 대구·경북(60.9%) 주민의 인식 차이가 오차율을 벗어날 정도로 뚜렷했다.



노무현 당선자는 최근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된 <국민과의 대화>에 나와 자신을 배의 선장에, 총리를 항해사에 비유한 바 있다. 국민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으며 노무현호가 정식 출항할 날짜도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일단 여론조사 결과로만 보자면, 노무현 당선자의 당선 후 한 달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대체로 기대할 만하다는 쪽이다. 세대별 편차가 조금은 있지만, 무시할 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지역이나 계층 별로 보면 기대 수준의 높낮이 차이가 조금 난다. 호남이나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의 기대 수준은 평균을 웃돌고, 영남 유권자들의 기대는 상대적으로 낮다. 우리는 여전히 세대나 이념이 아닌, 지역으로 갈라선 사회에서 살고 있다. 다만 노무현 시대가 ‘지금보다 살기 좋아질 것이다’(47.4%)라거나 ‘지금과 비슷할 것이다’(43.8%)라고 국민 다수가 예측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 정부의 앞날은, 상대적이지만 낙관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특이한 현상은, 대선 때 누구를 지지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7.2%가 ‘노무현’이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겨우 2.3% 포인트, 60여만표 차이로 낙선한 이회창 후보를 찍었다는 응답자는 24%에 불과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미디어리서치 김지연 차장은 “대선 직후에 조사하면 대부분 이렇게 나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응답이 실제 대선 득표율과 비슷해진다”라고 말했다. 허니문 기간이고, 승리한 쪽이 옳다는 대중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정당 지지도 역시 민주당(47.4%)이 한나라당(21.1%)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이처럼 조변석개하는 민심 또한 허니문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밀월 기간을 얼마나 늘릴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노무현 당선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 지금은 쓸쓸한 은퇴를 기다리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도 5년 전인 1998년 1월 당선자 시절에는 압도적으로 ‘잘하고 있다’(84.7%)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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