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탄핵 사건 이후 급격히 보수화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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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위헌 결정 ‘막전막후’/“재판관들, 노대통령의 국보법 폐기 발언에 분개”
지난 5월14일 헌법재판소(헌재)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청구에 대해 ‘기각’을 선고했다. 63일 간의 홍역을 치른 헌재는 “대통령이 선거법상 중립의무 조항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파면에 이를 만큼 중대한 직무상 위배로 볼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헌재는 위와 같은 판결을 내린 이후 여느 때처럼 고요 속에 빠져들었다. 두 달 동안 헌재에서 진을 친 기자들도 모두 근거지인 대검찰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헌재 주변에서는 묘한 파열음이 들렸다. 헌재의 결정은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소신을 포기한 비겁한 처사였다는 소리였다. 이와 함께 헌재와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을 중심으로 대통령이 크든 작든 법을 어기기는 어겼다는 이른바 ‘무단횡단론’이 흘러나왔다.

한 헌재 관계자는 “헌재 주변에 법조인, 사회 지도층 인사 등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대통령 탄핵 기각에 대해 뒷말이 무성했다. 언론을 통해 본 여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한 원로 변호사는 “탄핵안이 기각된 후 주변에서 헌재 결정을 나무라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 모임에서 헌재 재판관들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사건 접수 초기에는 합헌 결정 유력했다”

헌재가 다시 주목된 것은 지난 7월12일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 헌법소원이 접수되면서부터다. 다음날 헌재는 이 사건을 재판관 9명 전원으로 구성된 전원재판부에 회부했다. 전과는 다른 기민한 모습이었다. 헌재 전종익 헌법연구관은 “재판관들이 이번 사건을 지난 3월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에 준하는 중대사로 간주하고 심리를 벌였다”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탄핵 사건에 준하는 연구반을 꾸려 자료 수집에 나섰다. 헌법연구관 50여 명 가운데 1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접수 초기에는 헌재 내에서도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으로 판명될 것으로는 전망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 헌법연구관은 “행정수도 이전이 위헌이 될 확률은 노대통령 탄핵이 가결될 확률보다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과 국회의 정책 결정을 헌재가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헌재 내 기류는 이내 달라졌다고 한다. 앞서의 헌법연구관은 “탄핵 사건 이후 헌재가 급격히 보수화하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동성동본 금혼 규정 위헌 결정(1997년), 사전 심의를 받도록 했던 영화법규정에 대한 위헌 결정(1996년) 등과 같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한 노력들을 최근 들어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재는 종교나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 의무를 기피하는 사람을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현행 병역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7 대 2의 의견이었다.

헌재는 지난 8월, 2003년 10월과 12월에 접수된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에 대해서도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9명 전원 일치 의견이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에서조차 문제가 있다고 인정한 내용이었다. 한 발짝 나아가 헌재는 “향후 입법 과정에 이번 결정의 의미가 반영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법조계 인사들은 헌재가 서두른 기색이 보였다고 했다. 입법권 침해라는 소리도 나왔다.

지난 9월5일 노대통령은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해 “국가보안법은 독재 시대에 있던 낡은 유물이다. 낡은 유물은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고 폐지론을 분명히 밝혔다. 헌재의 결정과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헌재에서는 헌재를 무시한 발언이라고 분개했다고 한다. 헌법이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며 대통령에게 경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한 헌재 관계자는 “노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법이 무너진다는 위기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평소 조용히 연구에만 전념하던 구성원들도 헌재가 보루를 지켜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선고일 오전에 “8 대 1 위헌” 급속히 퍼져

헌재는 신행정수도 헌법소원 선고일인 10월21일 훨씬 이전에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시치미를 뚝 뗐다. 평소의 헌재와 달랐다. 지난 10월18일 열린 국감에서 이범주 헌재 사무처장은 조속한 심리를 촉구한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의 물음에 “올해 안에 선고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감 다음날 오후 2시 헌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10월21일 결정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 헌재는 텔레비전 생중계를 허용키로 했다. 헌재 선고 생중계는 지난 5월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에 이어 두 번째였다. 전종익 헌법연구관은 “사건의 중요도를 보고 소장님이 결정한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텔레비전 생중계가 허용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예상을 뒤집는 선고가 내려진다는 정보가 나돌기 시작했다. 19일에는 ‘헌법 불합치’ 결정이나 ‘일부 조항 수정’ 결정이 날 것이라는 정보가 나왔다. 선고 당일인 21일 오전에는, ‘8 대 1 위헌’이라는 구체적인 정보가 급속하게 퍼졌다.

10월22일 선고 다음날, 헌재는 마침 체육대회가 있어 하루를 쉬었다. 경기도 고양의 서울경찰청 수련장에서 윤영철 소장 등 헌재 전직원이 모여 체육대회를 열었다. 한 헌재 관계자는 “이 날 체육대회는 화기애애했다. 언론이 관습 헌법을 자세히 설명한 것에 대해 헌재 수뇌부는 ‘기자들이 공부 좀 했군’이라며 만족스러운 평가를 여러 번 내렸다”라고 말했다. 23일은 토요일. 헌재는 그렇게 다시 ‘평온’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헌재의 평온함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헌재는 정치권은 물론 국민 여론의 ‘태풍의 눈’이 되어 있다. 열린우리당이 추진해온 국가보안법 폐지안·언론관계법 개정안·과거사기본법안·사립학교법 개정안 등 4대 개혁입법에 대한 판단이 헌재로 건너갈 공산이 크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여권이 4대 입법을 강행하면 헌법소원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온몸으로 막겠다”라고 공언했다. 사립학교법 개정안만 해도 한국사학법인연합회가 헌재에 위헌법률 심판을 위해 이석연 변호사에게 법률 검토를 맡긴 상태다. 언론관계법도 헌법소원 검토를 마쳤다.

여기에 영화 <애마부인>의 배우 김부선씨는 대마초를 마약으로 규정하는 현행 법률에 이의를 제기하고,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헌재에 제소할 뜻을 밝혔다. 전국 성매매 업주들의 모임인 ‘한터 전국연합’도 ‘관습적으로’ 용인되어온 성매매를 허용하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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