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하게 빛난 '충무로 보석'
  • 노순동 기자 (soon@e-sisa.co.kr)
  • 승인 2001.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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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담당 기자들, '가장 소중한 인물' 홍상수 감독 꼽아


모든 것이 수치로 환원되는 요즘 영화계에서 점유율에 상관없이 가장 소중한 사람을 물었다. 1위는 홍상수 감독(14표/중복 응답 가능)이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오! 수정〉으로 한국 작가 감독의 대명사가 된 그는, 의외로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높아지는 데 기여한 인물' 항목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 시장 점유율에 미친 직접적 영향이 미미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존재감이 남다르다. 이밖에 임권택(12표) 김기덕(8표) 이창동(6표) 송일곤(4표) 감독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




연출자가, 그것도 흥행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감독들이 명단의 80% 이상을 차지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산업 논리가 득세하는 마당이지만 한국 영화의 힘이 이들에게서 발원한다고 여기는 셈이기 때문이다.


2위인 임감독은 후배에게 밀리기는 했지만, '한국 영화의 관문'이라는, 존경에 찬 헌사를 받았다. 3위에 오른 〈섬〉 〈수취인 불명〉의 김기덕 감독은 보수적이고 답답한 한국 영화에 환기구로서의 의미를 인정받았고, 〈박하사탕〉의 이창동 감독은 '그의 진지함은 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는 평을 들었다. 단편 〈소풍〉으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던 송일곤 감독은 최근 장편 데뷔작 〈꽃섬〉이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함으로써 기대주로 떠오른 경우다. 김성수·허진호·김지운 감독도 남다른 애정을 받고 있다.


이밖에 꾸준히 영화 정책을 입안해온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실장(4표)이 공동 5위를 기록한 것이 눈에 띈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양기환 사무국장과 조광희 변호사 등 한국 영화의 여건을 개선하는 데 애쓴 사람들이 두루 꼽혔다. 언론으로는 〈키노〉(정성일)가 유일하다. '열혈 스태프'를 꼽은 이도 있다. 열악한 조건에서 바보같이 일하는 그들이야말로 한국 영화 르네상스에 진정한 공신이라는 것이다. 배우로는 안성기(3표)와 송강호·전도연·박중훈이 거명되었다.


하반기 가장 고대하는 작품으로는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13표)가 (가장) 많이 꼽혔다. 〈8월의 크리스마스〉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그가 3년 만에 소리를 채집하는 남자(유지태)와 이혼한 연상의 라디오 프로듀서(이영애)가 겪는 격렬한 사랑과 사랑 그 후를 포착한 작품이다(9월29일 개봉).




기대 : 하반기에 가장 보고 싶은 작품 1위 <봄날은 간다>(위 왼쪽), <와이키키 브라더스>(위 가운데)와 <꽃섬>(위 오른쪽)은 해외 영화제의 손짓을 먼저 받았다.


이밖에 70억원을 들인 장선우 감독의 야심작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9표), '테크노 SF'라는 간판을 내건 김태균 감독의 〈화산고〉(7표), 화가 장승업의 일대기를 그린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7표), 장인의 내공을 보여주었던 배창호 감독이 오랜만에 흥행 감독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미스터리 역사극 〈흑수선〉(4표)이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혔다. 막 여정을 시작한 박찬욱 감독의 하드 보일드 〈복수는 나의 것〉(4표)도 일찌감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이성강 감독의 〈마리 이야기〉(4표)가 첫손에 꼽혔다. 중간 제작 발표회를 통해 '한국의 미야자키 하야오를 예감케 한다'는 극찬을 끌어냈던 작품이다.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 송일곤 감독의 〈꽃섬〉,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남다른 미학을 기대하는 이들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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