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 이인제와 ‘역 풍’ 노리는 반 이인제들
  •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 승인 200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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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문, 민주당 1차 경선 ‘과반수’ 목표… 노무현·정동영 등 국민경선제 ‘바람’ 기대
지난해 11월 말, 민주당의 이인제 상임고문은 한화갑 상임고문측 ‘책사’인 문희상 의원과 독대했다. 당 쇄신·발전 특별대책위원회의 논의에 앞서 전당대회 시기를 조정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3월 대회를 주장하는 이고문과 7~8월을 고집하는 한고문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대화는 결렬되었다. 이후 특대위는 이고문측의 주장과 같은 3월 대회를 확정했다. 한고문측은 이후 당내 쇄신파들과 손잡고 ‘반(反) 이인제 연대’를 꾸렸다.


‘이인제 대 반 이인제.’ 앞으로 전개될 민주당 경선의 1차적인 조합은 이것이다. 이는 이고문이 절대 우세의 독주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이고문은 대세론을 유지하고 있고, 1차 경선에서 과반수 지지를 넘겠다는 목표를 공공연히 밝혔다. 판사 출신에 경기도지사와 노동부장관을 지내, 입법·사법·행정을 두루 거친 경륜도 다른 주자들과의 차별성. 이고문측은 국민 경선이야말로 이고문의 경륜과 무게를 널리 홍보할 장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민주당 차기 후보는 이인제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선뜻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민주당 내부 정서다. 오히려 민주당 경선 구도는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이인제로 이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불식하지 못한 탓이 크다.

당내 주자 중 여론 지지도 2등인 노무현 상임고문. 지역주의를 타파하려고 줄기차게 노력했고,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내 국정 경험도 쌓았으며, 영남 출신 국민통합 후보라는 점이 그의 장점. 한마디로 그의 무기는 정체성과 본선 경쟁력이다.


‘오락가락’ 행보로 점수 까먹은 노무현


그는 최근 이인제 고문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 ‘반 이인제 연대’의 대표 주자로 나서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야 할 사람’ ‘나는 한번도 오락가락하지 않았다’라는 발언은 이인제 고문을 겨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위 구호이다. 국민 경선제 도입도 그에게는 불리하지 않다. 당내 기반이 없는 그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이나 자신의 외곽 조직인 ‘개혁연대’ 등을 통해 대대적인 국민선거인단 모집에 나설 예정이다.

그러나 그는 최근 두어 달 동안 오락가락 행태를 보이면서, 점수를 상당히 까먹었다.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머무르는 등 경쟁력에 한계가 온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당내에서는 이런 ‘방황’을 김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여파로 보고 있다. 자신을 지지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DJ가 총재 직을 사퇴하자 갑자기 아노미에 빠졌다는 것이다. 한화갑·정동영 상임고문의 출마도 그에게 위기감을 주는 요소다. 게다가 김근태 상임고문과의 연대도 어려워졌다. 과연 그가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노고문의 지지부진을 틈타 떠오르는 주자가 ‘다크호스’ 정동영 상임고문이다. 더구나 국민경선제가 채택되면서 ‘스타 정치인’ 정고문은 날개를 단 격이 되었다. 정고문의 장점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기존 정치권의 관습에서 벗어난 이미지다. 세련된 매너와 말솜씨, 뛰어난 정치 감각도 그를 떠받치는 힘이다. 그는 지난해 권노갑 퇴진 이후 정풍운동의 맨 앞에 항상 서 있으면서 당 쇄신에 따른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정고문이 출마를 강행할 경우 기존 순위에도 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고문 측근들도 ‘목표는 후보이며, 못해도 3위’라는 말을 공공연히 흘리고 있다. 민주당 주변에서도 이인제를 위협할 만한 주자로 정고문을 꼽는 사람이 늘고 있다.


‘다크호스’ 정동영, 당내 뿌리 없는 것이 약점


정고문 또한 당내 쇄신파의 ‘대안’ 중 한 사람. 최근까지 ‘노무현 지지자’로 통하던 천정배 의원은 요즘 말을 아낀다. 바른정치모임 소속 정동영 고문이 출마를 거의 기정 사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고문이 깃발을 날릴수록 당내 개혁파의 고민 수위도 높아질 전망이다. 이인제 고문측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 “우리는 노고문보다 정동영을 더 주목하고 있다.” 이고문 측근의 말이다.

그러나 당내 뿌리가 없다는 점이 정고문의 약점이다. 더구나 동교동계 구파와는 ‘원수지간’이다. 국민들 사이에서 아직 ‘대통령감’으로 거론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밖에도 자천 타천 후보를 모두 합치면 대권 도전에 나설 민주당 주자는 이미 ‘8룡’ 수준을 넘어섰다. 한화갑·김근태·김중권 상임고문과 한광옥 대표, 유종근 전북도지사가 사실상 출마 선언을 마쳤다. 여기에 고 건 서울시장이나 이한동 국무총리, 무소속 정몽준 의원도 여전히 여권 주자로 분류되고 있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진성 주자와 가성 주자가 구별되고, 합종연횡을 통해 메이저급 3~4명만 남게 되리라는 분석이 높기는 하다.


그럼 최종 승자가 될 주자는 누구일까. 국민 경선으로 치러지는 이번 민주당 경선 방식은 누구에게 유리할까.

전통적으로 당내 경선을 좌우하는 요소는 조직·자금·인맥이었다. 이번 경선 또한 이런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선거인단이 7만명으로 늘었다 하더라도 대의원과 당원 선거인단은 지구당위원장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힘들며, 국민선거인단도 민주당에 애정을 가진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할 공산이 크다”라면서, 이번 경선 또한 조직 선거가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국민경선제가 도입되면서, 기존 계산법으로 주자들의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선거인단 규모가 늘어나면서 특정 계보의 입김이 통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따라서 조직보다는 바람이 승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노무현 고문의 한 측근은 “1971년에도 당내 기반이 엷었던 DJ가 주류의 지원을 받던 YS를 누르고 당선되었다”라면서 이번 경선도 주자들 간의 연대와 바람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존 잣대로 메이저와 마이너 주자를 가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바람론자들의 희망 사항이다. “지금 지지율은 중요한 게 아니다. 1997년 신한국당 경선 때 이인제 후보는 초반에 한자릿수였으나 5월 이후 텔레비전 토론을 거치면서 20%대로 치솟았다. 한순간이다.” 초반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김근태 상임고문 측근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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