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쟁호투냐, 춘추전국이냐
  • 김종민 기자 (jm@e-sisa.co.kr)
  • 승인 200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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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이인제·노무현, 양자 대결 기대…정치권 변화 따라 ‘2강 2중’ 다자 구도 될 가능성 높아
용호상박(龍虎相搏)이냐, 춘추전국(春秋戰國 )이냐. 2002년 대선의 향방을 결정짓는 제1 요인은 바로 싸움의 모양새다. 최근 몇 차례 대선 경험이 이를 증명해 준다. 1987년에는 YS-DJ 양김의 후보 단일화 실패가, 1992년과 1997년에는 정주영과 이인제라는 제3 후보 출현이 대선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자신이 용이나 호랑이쯤 된다고 생각하는 대선 주자들은 이번 대선만큼은 용호상박의 양자 대결이 되리라고 장담한다. 이회창·이인제·노무현 씨등 대중 지지도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는 ‘기득권층’이 그런 축에 속한다. 이들이 양자 구도를 확신하는 이유는 현재 정치권에 민주당 대 한나라당 대결 구도를 깰 만한 에너지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그 양자 구도의 한 자리를 차지하리라는 기대가 깔려 있기도 하다.



현재의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고 양자 구도로 간다면 이번 대선은 이회창의 반DJ 대세론과 이인제 혹은 노무현의 세대 교체 돌풍이 맞붙는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대선 승부는 이인제든 노무현이든 민주당 간판으로 나서는 후보가 이회창 후보의 영남 표를 얼마나 깨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인제 고문은 자신이 후보가 되는 순간 이인제 학습 효과의 유효 기간은 끝난다며 영남 공략을 자신한다. 노무현 고문 역시 민주당 경선만 통과하면 자신의 출신지인 부산·경남에서 돌풍이 일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나타난 가상 대결 결과를 보면 이회창 총재가 이인제 고문에게는 5% 정도, 노무현 고문에게는 10% 정도 앞서는 상황. 여론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인제든 노무현이든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면 5% 정도 지지율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에 용호상박의 접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양자 구도 땐 ‘반DJ 대세론’ ‘세대교체론’ 대결


변형된 양자 구도, 즉 정계 개편을 통해 반이회창 진영이 총결집해 이회창 대 반이회창 구도를 형성하는 경우도 끊임없이 거론된다. YS와 JP까지 가담해 3김이 반이회창 연대의 병풍 역할을 하게 되면 이회창 대세론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반이회창 연대가 성사될 가능성은 날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연대를 하려면 강력한 중심 집단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민주당 동교동계가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 내분 과정에서 이들의 결속력과 정치력이 크게 훼손된 데다가 각종 게이트 연루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이들이 운신할 폭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그동안 막후에서 반창(昌) 연대를 조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되어 온 동교동계 좌장 권노갑씨는 장기 외유를 가니 마니 하는 처지에까지 몰려 있다. 민주당내 중도개혁포럼이 대역을 맡으리라는 관측도 있으나 당내 중심을 잡기에도 바쁜 처지여서 이들이 인위적 정계 개편을 주도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재의 구도가 유지되든 변형되든 이번 대선은 양자 구도보다는 춘추전국의 다자 구도가 되리라는 주장도 강하다. 다자 구도가 될 때 입지가 커지는 한화갑 민주당 고문과 YS측의 박종웅 의원이 이런 주장을 펴고 있다.
이번 대선은 사실상 3김 시대가 막을 내린 후 첫 대통령 선거라는 점이 다자구도론의 가장 유력한 근거다. 그동안 각자의 지역 근거지를 기반으로 하여 한국 정치를 쥐락펴락해온 3김의 영향력은 급격히 퇴조했고 그 공백을 메울 만한 새로운 중심 축은 아직 확고하지 않은 상태다. 그 힘의 공백 때문에 다자 구도는 필연이라는 것이다.

우선 여야의 유력 후보가 과거의 3김처럼 열성 지지층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야권에서는 이회창 대세론이, 여권에서는 이인제 대세론이 3김 이후 정치권을 봉합해 놓고는 있다. 그러나 그 대세론이라는 것이 과거 3김을 떠받쳤던 뿌리 깊은 정치 기반과 비교하면 허약한 것이어서 제3, 제4 세력 출현을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다자 구도를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다.

이회창 대세론은 영남의 반DJ 정서에, 이인제 대세론은 호남의 반이회창 정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DJ가 약해지면 이회창 대세론이 흔들리고, 이회창이 약해지면 이인제 대세론도 휘청거릴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영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회창 총재가 영남 출신이 아니고, 호남의 지지에 의존하고 있는 이인제 고문은 호남 출신이 아니다. 영남 출신인 박근혜·노무현·정몽준과 호남 출신인 한화갑·정동영이 자신의 지역 기반을 공략하고 나선다면 이회창의 영남 기반과 이인제의 호남 기반이 출렁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영남과 호남 출신 유력 주자들로서는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모두 뿌리와 이해 관계가 약간씩 다른 세력이 임시로 뭉쳐 있다는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이인제 지지 세력·동교동 세력·개혁 세력으로 나뉘어 있고, 한나라당 역시 이회창 직계 세력·영남 세력·개혁 세력이 섞여 있다. 3김과 같은 강력한 구심점이 없는 상태에서 대선 후보 경선과 상대 당의 분열 등 당 안팎의 변수에 따라 이들 세력이 갈라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권 분열이 다자 구도 촉진제 될 것”

변화의 모티브는 상대적으로 결속력이 약한 여권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다자 구도를 확신하는 박종웅 의원은 여권 분열이 다자 구도를 형성하는 촉진제가 되리라고 전망했다. 그는 1997년 신한국당 경선 때 힘이 빠지기는 했지만 총재도 있었고 재집권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었지만 경선에 참여했던 9룡 가운데 6명이 시차를 두고 탈당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현재 여당은 총재도 없고 집권 가능성도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분열 가능성이 그때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 박의원의 진단이다.

최근 게이트 정국이 어디까지 가느냐도 변수다. 동교동계나 여권 핵심 인사가 타격을 받기라도 한다면 민주당의 원심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한나라당은 각종 벤처 게이트가 여권의 16대 총선 자금 조성과 연관이 있다면서 창끝을 겨누고 있다. 이와 관련된 단서가 나타나 정치 쟁점으로 불거지면 민주당의 최근 쇄신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고 내분이 심해질 것이다.

여권이 분열하게 되면 한나라당에도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여권에 대한 경계가 풀어지면 반DJ와 정권 재창출을 위해 똘똘 뭉쳐 있던 한나라당의 결속력도 이완될 것이고, 한 곳으로 표를 몰아야 한다는 영남 정서의 긴장감도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올 대선에서는 현재의 여야를 기축으로 한 두 세력과 여야에서 각각 떨어져 나온 세력이 2강(强) 2중(中)이라는 다자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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