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모든 길은 부산으로 통한다”
  • 신호철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2.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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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신항만 등 대역사 박차…동북아 물류 거점 겨냥


"지금 서 있는 이 땅도 얼마 전까지 바다 한복판이었다.” 부산 신항만 책임 감리를 맡고 있는 동일기술공사 김영래 과장은 매립지 현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덕도를 마주보는 안골 욕망산 중턱을 굴삭기가 깎아내면 기다리고 있던 트럭들이 흙을 담아 바닷가로 날랐다. 산을 떠서 바다를 메운다.
가덕도 신항만은 컨테이너 처리 용량이 연간 8백만 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하나에 해당하는 단위)로 기존 부산항의 처리량 8백7만TEU와 거의 맞먹는다. 부산항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신항만 공사는 2011년 완공 예정이다.



요즘 부산항의 변신은 눈부시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접안 부두 공사(2003년 완공), 크루즈 전용 터미널 공사(2006년), 자성대부두 개조 공사(2003년) 등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해양수산청 황종우 사무관은 “고베 대지진 이후 일본 항구를 이용하던 선박들이 정박지를 부산으로 많이 바꿨다. 확장 공사를 게을리했다면 이 물량을 놓쳤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새 항구를 기반으로 2020년까지 컨테이너 처리량을 지금의 3배에 달하는 2천2백만TEU로 올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부산해양수산청 정홍식씨는 특히 일반 수출입 화물보다 환적 화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환적이란 큰 배에 실은 화물을 작은 배에 나누어 옮기는 과정을 말한다. 환적 화물은 내륙 교통에 장애를 주지 않으면서 높은 부가가치를 올려주기 때문에 환적 비율이 높을수록 선진 항구로 인정받는다. 싱가포르 항은 전체 화물의 70∼80%가 환적 화물이다. 부산항은 환적 비율이 올해 40%로 늘어났다.



내년 3월부터 LME(런던비철금속선물거래소) 지정 창고를 운영하게 되는 것도 부산항의 희소식이다. LME는 철을 제외한 알루미늄·구리·니켈·아연 등 비철금속을 거래하는 국제 기구다. 선물 거래 특성상 이 금속 화물은 소비지와 가까운 창고에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비철금속 저장 창고는 아시아 지역에서 싱가포르가 유일했다(일본은 알루미늄만). 황종우 사무관은 “싱가포르에서 동북아까지는 너무 멀다. 동북아 3국은 자연히 부산항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육·해·공 3포트 시스템으로 물류 체계 정비



2003년부터는 런던에서 선물로 구리를 산 중국 회사가 부산항 신선대 부지 창고에 쌓인 구리 화물을 배로 실어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고객이 천t짜리 화물을 10일 동안 저장하면 부산항은 하역료 1천1백만원, 보관료 2백50만원을 번다. LME 창고에 금속이 하루 평균 1만t 저장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매출액이 연간 1백30억원, 이에 따른 생산 유발 효과가 9백10억원, 고용 유발 효과가 16억원으로 추정된다.



부산시가 꿈꾸는 미래는 동북아시아의 허브(물류 중심지)가 되는 것이다. 허브 도시를 향한 노력은 바다뿐만이 아니라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경부선 부산역사는 아시안게임 중에도 아랑곳없이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08년 완공될 고속철도 역사 공사다. 여기에 경의선까지 복원되면 부산역 물동량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교통개발연구원 김연규 연구위원은 “경의선을 이용하는 컨테이너 물동량은 연간 22만TEU에 이를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부산과 일본 사이에 해저 터널이 뚫리면 부산이 일본과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통로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50쪽 상자 기사 참조).



하늘길도 예외가 아니다. 김해국제공항은 2010년까지 여객 2백33만명, 화물 15만t을 처리할 수 있도록 확장하고, 현재 17개인 국제 노선을 48개 노선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육·해·공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물류 체계를 부산시 관계자는 3포트 시스템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길은 부산으로 통한다’는 구상이다. ‘길’에 대한 부산의 의지는 이 뿐만이 아니다. 시 외곽에 도시 철도를 건설하고 2007년까지 지하철 3호선 건설, 2012년까지 양산선 완공 등 시내 철도망 건설에만 7조원이 넘는 자금이 투여된다.



물론 부산시의 장밋빛 청사진과는 별도로 실현성 여부는 찬찬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주변 도시 간의 경쟁이 지적된다. 동북아의 웬만한 항구 도시들이 모두 허브 항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상하이의 경우 부산 신항만과 비슷한 공사를 계획하고 있는데, 그 완공 시점이 가덕도 신항만보다 빠르다는 지적이 있다. 당장 국내에서도 부산항은 광양항과 경쟁하고 있다. 부산해양수산청의 한 관계자는 “부산은 국제 물류항으로 발전하고 광양항은 수출입 화물 항구로 나가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광양항 홈페이지에는 명백히 ‘동북아시아의 컨테이너 허브 항만’이 광양항의 목표라고 적혀 있다. 국가의 자원이 두 도시에 분산된다는 지적이다.





부산상공회의소의 한 관계자는 부산항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버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현재 부산항을 관리하는 곳은 해양수산부이므로 부산항의 수입은 대한민국 정부로 귀속된다. 허치슨과 같은 주요 컨테이너 터미널 회사들도 대부분 외지 기업이다. 부산항과 부산시의 괴리 현상을 막기 위해 시민들은 항만 관리를 지자체에 이전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중앙 정부는 막대한 예산이 드는 항만 사업을 지자체가 감당할 능력이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항구의 발전이 분명 부산 경제에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죽어가는 경제를 근본적으로 살리려면 내륙 산업이 뒷받침해야 한다. 부산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옛 수영비행장이 있던 해운대구 우동 35만평 자리에 서울의 테헤란밸리와 같은 첨단 벤처단지를 가꾼다는 ‘센텀시티 프로젝트’를 세웠다. 그러나 이 사업은 1997년 12월 SK그룹이 손을 뗀 이후 지지부진하고 있다. 서울의 테헤란밸리와 달리, 부산 기업들은 단지를 만들 만한 자생력이 없었다.



이런저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부산시 김효영 경제정책과장은 “부산 발전을 낙관한다”라고 말했다. 경제 지표도 개선되고 있고 아시안게임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여기에 “동서고금을 통틀어 바다를 낀 도시가 가난했던 때는 드물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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