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용 부장검사가 살인 교사했다”
  • 정희상·주진우 기자 ()
  • 승인 2004.09.2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촌씨는 “1986년 인천 뉴송도호텔 황익수 사장 습격 사건은 박검사가 죽이라고 해서 저지른 일이다”라고 밝혔다. 18년간 가슴에 묻어온 진실이라는데….
“현직 서울고검 박남용 부장검사가 인천 뉴송도호텔 황익수 사장 피습 범죄에 개입했다.” 지난 9월14일 인천 지방법원 형사 법정에서 열린 전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에 대한 감호 재심 첫 공판에서 김씨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그는 이 날 18년 동안 가슴 속에 묻어온 진실이라며 변호사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사건 전모를 자세히 진술했다.

“대전교도소로 박남용 부장검사가 나를 면회와 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출소 후 그가 황익수에게 4천8백만원 채권을 못 받았다고 하기에 거절하지 못하고 청부 폭력을 했다. 황사장을 납치해 3년치 달러 이자까지 쳐서 1억5천만원을 약속어음으로 받아 박남용 부장에게 갖다 줬는데 나중에 사건이 확대되니까 8천만원짜리는 박부장이 없애버렸다. 그 뒤 황익수, 나, 박남용 세 사람이 4 대 4 대 2 비율로 호텔 지분을 나눴다. 황익수는 이것을 억울해 하며 박남용 부장이 김태촌을 시켜서 약속어음 받고 호텔을 뺏으려 했다는 요지로 대검에 진정했다. 박검사는 그 앙갚음으로 나에게 황익수를 살해하라고 지시하고 시신처리법까지 다 가르쳐주는 등 완전 범죄를 노렸지만, 나는 차마 살해할 수 없어 후배들에게 다리만 분지르라고 지시했다. 범행을 지시하면서 박검사가 손가락을 면도칼로 베어 ‘신의’라는 혈서를 써주었으며, 나는 황익수 살해 후 후배를 자수시키면 박검사가 뒷일을 책임진다는 대화 내용을 녹음해뒀다.”

김태촌씨측은 이 날 법정 진술 이후 박남용 전 검사와 목격자 손하성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판부는 추후 기록을 더 검토하고 결정하자며 두 사람에 대한 증인 채택을 일단 보류했다.

1986년 7월26일 새벽에 발생한 인천 뉴송도호텔 황익수 사장 피습 사건은 당시 서진룸살롱 살인 사건과 함께 세상을 발칵 뒤집은 조폭 범죄였다. 주범으로 기소된 김태촌씨는 이 사건으로 징역 5년에 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김씨가 법정 진술을 한 직후 박남용 변호사(박 전 검사는 1986년 9월 사직한 이후 변호사로 활동해 왔다)는 “황당무계하다. 보호감호에서 동정을 사고 싶은 의도에서 미친 소리를 한다”라며 김씨의 주장을 극구 부인했다. 둘 중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시사저널>은 황익수 사장 피습 사건 당시 현직 부장검사가 김태촌씨의 청부 폭력에 개입했다는 주장을 지난 2월에 접했다. 조폭 세계를 잘 아는 한 취재원에게 이 내용을 제보받고 청송교도소에 수감된 김태촌씨를 면회해 진실을 말해 달라고 설득했다. 김씨는 그 후 약 4개월에 걸쳐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피습 사건의 감추어진 진실을 포함해 조폭 보스 인생 이면을 회고하는 편지 100여 통을 <시사저널>에 보내왔다. 취재진은 김씨가 털어놓은 박검사의 청부 폭력 개입 의혹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별도로 6개월에 걸쳐 수천 쪽에 이르는 당시 사건 기록과 진술 조서, 판결문, 공소장 등을 입수해 분석했다. 아울러 사건에 직간접으로 연루된 핵심 인물 20여 명을 인터뷰했다.

추적 결과 박남용 검사가 인천뉴송도호텔 황익수 사장 피습 사건 전후 여러 방면에서 깊숙이 개입했지만 당시 검·경의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러나 박남용 변호사는 취재진에게 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철저히 부인했다.

황익수씨 습격 사건에 박남용 검사가 개입했다는 주장은 결코 두 사람 사이에서 묻힐 비밀이 아니었다. 사건 당시 김태촌씨의 운전기사로 있으면서 인천 뉴송도호텔 총무를 맡았던 손하성씨는 “이 사건은 박검사가 개입한 사건이다. 서초동 온천장 안마시술소에서 박검사와 김태촌씨가 쓴 ‘신의’라는 한자 혈서를 내가 보았다”라고 말했다. 손씨는 황익수 사장 피습 당일 김태촌·박남용 씨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손씨는 “부천 애리조나 스탠드바에서 김태촌과 술을 마시다가 그 날 새벽 황익수 사장 습격에 성공했다는 전화가 오자 김태촌이 나에게 운전을 시켜 서울 신촌에 있는 박남용 부장검사 집으로 갔다. 황익수를 해치웠다고 보고하니까 박검사는 우리 두 사람을 데리고 해장국집에 가서 소주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제의했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황사장 피습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난 1987년 가을 원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김씨가 박남용 변호사에게 신의를 지키라고 촉구하며 보냈다는 5장짜리 편지 사본을 입수했다. 특별면회객을 통해 내보낸 이 편지는 박검사에게 범행을 교사한 구체적인 사실과 범죄 관련 혈서 및 녹취록 등을 거듭 환기하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세상에 진실을 폭로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박변호사는 당시 이 편지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이후 김태촌씨가 1989년 폐암 수술을 받기 위해 형집행정지로 출소하자 박변호사는 김씨의 큰누이와 병상의 김씨를 찾아가 무릎 꿇고 눈물로 사과하면서 5천만원을 주기로 약속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관해 취재진은 목격자 8명을 확보했다. 박변호사는 얼마 후 2천만원을 김태촌씨의 큰누이 숙자씨에게 건넸다. 박변호사는 폐암 수술 후 다시 활동하던 김씨의 행사장에 가끔 참석해 두 사람이 다정한 포즈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박변호사는 최근 이같은 내용을 확인하는 취재진에게 처음에는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다가 증인과 증거를 들이대자 돈을 주었다고 시인했다

황사장 피습 배후에 박남용 검사가 있다는 의혹은 사건 당시부터 불거졌다. 수사 초기에 인천경찰서는 박남용 검사의 혐의를 일부 확인하고 그를 소환 조사하려 했지만 검찰의 비협조로 실패했다.

검찰 내에서는 그 무렵 부천경찰서 문귀동 경사가 권인숙씨를 성고문한 사건에 대해 문경사를 검찰이 기소유예처분해 경찰 조직의 체면을 살려줬는데, 박남용 검사 청부 폭력 문제를 배려하지 않는다며 경찰에 형제애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을 조직의 수치로 받아들인 당시 검찰은 박검사에게 사표만 받고 형식적인 조사 후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