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실종자 가족의 ''죽음보다 깊은 분노''
  • 李興煥 기자 ()
  • 승인 1995.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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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깊은 분노 “피살자 가족 이라 불러달라”
‘사망자 번호 315번. 성명 연령은 모두 미상. 여자. 인상 착의 및 유품:오른손과 왼손에 금반지, 자주색 치마, 검정색 샌들.’

박승현양이 기적적으로 구조된 7월15일 밤 11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서울교대 체육관 벽에는 사망자 명단이 계속 나붙는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실종자 집계에 잡혀 있던 사람이 사망자로 바뀌는 순간이다. 실종자 가족 30여 명이 새로 나붙은 벽보 앞에 몰려든다. 그들에게서는 한숨도 탄식도 나오지 않는다. 침묵뿐이다.

벽보를 보던 한 아주머니가 돌아서서 외친다. “자주색 치마 입은 여자! 까만 샌들 신었대!”가족이 있으면 나서라는, 이제 생사는 알아냈다는 안도의 외침이다.

가족들 사이에 번지는 또 한번의 동요. 그러나 허둥대거나 들뜬 분위기는 아니다. 한두 번째가 아닌 까닭이다. 벌써 17일째, 하루에도 몇번씩 겪은 생과 사의 확인 절차. 피를 말리는 순간들이지만 이제는 차라리 담담하다. 30분이 지났지만 ‘자주색 치마·검정색 샌들의 가족’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체발굴 지도 만들기도

실종자인 여동생 윤윤숙씨(26)를 찾는 언니 영숙씨(31). 그는 신원 미상자 명단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대신 그의 손에는 삼풍백화점 지하 2층 매장의 약도 한 장이 들려 있다. 약도에 빼곡하게 그려진 70여 개의 숙녀의류 점포 옆에는 발굴된 사망자 이름이 적혀 있다. 윤씨가 적어넣은 것이다.

“동생이 근무한 점포 쪽은 아직 파내지 않았다. 같은 점포 직원이나 옆 점포에서 근무한 직원들의 이름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다른 발굴 지점을 보면 사망자들이 무더기로 얽혀서 나온다. 몇 발짝 떼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은 것 같다. 사망자 한 사람 이름만 알면 다음은 누가 나올지 대충은 알게 된다.”

윤영숙씨는 경황 없는 와중에서도 나름대로 ‘발굴 약도’를 작성해 가며, 사망자 인식법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체가 발굴된 지점마다 표시해놓은 X 표시는 2층 매장을 시계 바늘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고, 남은 점포 수는 차츰 줄어들고 있다.

삼풍백화점 근무복을 입고 있었을 동생의 신원을 확인할 길은 명찰뿐이다. 동생은 평소 액세서리를 좋아하지 않아 그 흔한 실반지 하나 없이 시계만 차고 다녔는데, 매장에서 근무할 때는 그 시계마저 풀어놓는다는 말을 들었다. 고교 졸업 후 7년을 데리고 있던 동생이지만 그날 어떤 속옷을 입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남은 건 명찰뿐인데 여지껏 붙어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동생의 방을 뒤져 머리카락이라도 주워올 생각이다. 감식할 때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이제 시집만 보내면 언니로서 할 일을 다했다 싶기에 맞선을 보이려 했던 동생이다. 윤영숙씨에게 지금은 그 동생의 머리카락을 찾아낼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최명석군이나 유지환·박승현 양의 생환 이후 실오라기 같은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사고 사흘째는 혹시 살아 있을지도 모를 핏줄의 생환에 기대를 걸었고, 나흘째는 포기 상태였다. 최군이 살아나오고 유양의 웃음을 본 다음부터는 텔레비전 화면에 사고 현장이 비칠 때마다 그 앞으로 몰려가곤 했다.

그리고 또 박양. 그러나 박양이 살아돌아오던 그날도 40여 구의 싸늘한 시체만이 돌아와 사망자 명단에 올랐을 뿐이다.

그나마 생사 확인이 안 된 가족들의 비통함과 답답함은 체육관의 4면 벽을 메우고 있다.

‘찾습니다. 노영진. 38세 남자. 특징은 1백72㎝의 키에 쌍꺼풀진 눈.’ 사고 직후에 붙여졌을, 노씨를 찾는 벽보 하단에는 몇 단어가 덧붙여져 있다. ‘항시 고생만 하시더니, 편히 잠드소서.’사망자 명단을 뒤져보았다. 사망자 번호 75번. 노영진. 38세. 벽보에 덧붙여져 있는 그 말은 잉크마저 말랐는지 희미하게 써내려간 마지막 진혼사였다. 이제 노씨의 가족은 삶과 죽음이 한순간에 교차하는 서울교대 체육관에 있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막내 여동생을 찾고 있다는 회사원 김기현씨(39)는 “여동생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어머니가 벌써 다섯 번이나 쓰러졌다”고 말한다.

시신 확인할 길 갈수록 막막

시신이 수습된다 해도 이제는 신원을 확인할 일이 막막해져 간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시체여서 지문 감식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유전자 감식의 결과는 열흘 이상이 지나야 나온다.

청주에서 올라온 아주머니 김순이씨(52)는 새로 나붙은 사망자 벽보를 보고 딸애가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이름과 나이도 미상이고 인상 착의 난에 단 한 글자도 써있지 않았지만 유품이 꼭 열아홉살짜리 딸애의 것이었다. 단 하나, 키가 미심쩍었다. 기록에는 1백52㎝로 되어 있었다. 딸애보다 10㎝나 작은 키였다. 시신이 후송된 병원으로 달려가 확인해본 결과 죽은 딸이었다. “시체가 심하게 부패해 키를 정확하게 잴 수 없었다”는 병원 관계자의 말을 듣고 김씨는 통곡도 멈춘 채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울교대 체육관 안팎은 온통 절망과 안타까움으로 뒤덮여 있다. 임신 6개월인 29세 산모를 찾는 벽보에는 ‘사고 직전 목격자(생존자)와 대화중이었다’는 상황까지 묘사되어 있고, 한 여자 실종자의 인상 착의 부분에는 ‘가로 약 15㎝ 제왕절개 수술 자국’이라는 문구도 들어 있다.

안타까움뿐만이 아니다. 실종자 가족 주변에는 분노와 불신의 목소리도 가득하다. 실종자가족위원회의 ‘현장 감시단’발족을 알리는 대형 벽보도 한쪽 벽면을 장식한다. 위원들이 현장에서 시신 발굴을 직접 감시하고 파악해 신속히 전달하자는 위원회의 의결 내용도 적혀 있고, 신원 확인을 할 때 시체의 옷을 벗기지 말고, 부패를 막기 위해 현장에 냉동차를 준비해 달라는 요구 사항도 붙어 있다. ‘젊은애들 앞세우고 병 보석이 웬말이냐’는 질타는 삼풍백화점 이 준 회장을 비난하는 벽보이다.

한 실종자 가족은 “실종자 가족이라고 부르지 말라. 유가족이라고도 하지 말라. 차라리 피살자 가족이라고 불러라”라고 말한다. 그들의 노여움과 분노는 이제 잃어버린 살붙이에 대한 애틋함으로 남아 있다. 교대 정문 옆 기둥에는 한 남편이 실종자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가 붙어 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유미 엄마, 나와 유미를 생각해서라도 꼭 살아서 돌아와. 조금 있으면 새로 아파트에 입주한다고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는데. 여보, 유미가 보고 싶지 않아? 유미 재롱 떠는 모습을 생각하며 어떤 악조건에서도 이겨서 살아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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