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에 묶인 외국인 노동자 인권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6.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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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 명동성당 입구에서는 일단의 외국인들이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연결한 채 온몸에 페인트로 구호를 써붙이고서 매일 1시간씩 우리말과 영어를 번갈아 써가며 이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다’ ‘We want freedom’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이들은 바로 한국의 3D 업종에서 일하다 부당한 대우에 항의해 작업장을 뛰쳐나온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방글라데시·네팔·미얀마·중국(조선족) 사람들로 구성된 이들 26명은 지난 6월11일 명동성당을 찾은 뒤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다.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이 명동성당에서 쇠사슬 시위를 벌이기는 이번이 두번째다. 지난해 초 네팔인 노동자 13명이 이곳을 찾아 같은 방법으로 시위를 벌여 국내외에 파문을 던진 일이 있는데, 당시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 처우개선 대책을 발표해 급한 불을 껐다.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지시해 나온 당시의 대책은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산재보험과 의료보험을 적용하고, 최저임금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실제 정책은 지시 내용과 영 딴판으로 흘렀다는 것이 이번에 다시 명동성당을 찾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하소연이다. 우선 산재보험과 의료보험은 강제 조항이 없어 실제로 적용하는 사업장을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발견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한다. 또 최저임금제 역시 단서 조항을 두어 그동안 무료로 제공받던 하루 세끼 식사를 사업주 자율에 맡긴다고 규정함으로써 사업주들이 최저 임금에서 식대를 공제해 급여가 전보다 줄어드는 부작용이 생겼다.

이처럼 뒤늦게 마련한 정부 대책이 그나마 졸속으로 변질되자 국내 외국인 노동자 상담 단체들은 올들어 외국인노동자 대책협의회(대표 김해성 목사)를 결성해 정부에 근본 해결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핵심이 외국인노동자보호법 제정 청원이었다. 지난 4월26일부터 이 단체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입법 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에 들어가자 법무부는 6월 한달을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집중 단속 기간으로 정한 뒤 서명에 참가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단속을 막던 김해성 목사가 공무집행방해로 구속되자 함께 서명운동에 참여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명동성당에서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같은 사태에 대해 “김목사 구속은 단속 현장의 마찰이 이성적으로 풀리지 않은 경우라 유감이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이 보호법 제정 운동에 나서는 것은 내정 간섭에 해당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라며 강력히 대처할 뜻임을 비쳤다. 그러나 김해성 목사 구속과 뒤이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명동 시위는 예기치 않은 파문을 낳고 있다. 국내 30여 종교·노동·시민 단체가 공동대책위를 구성하는가 하면, 국제사면위원회는 김목사 석방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결국 정책 부재 속에 단속과 관용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가 또다시 국제 여론의 도마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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