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채 협상 '벼랑 끝 전략' 배수진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8.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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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거부하고 ‘민간 대출금 한은 보증’ 제시키로
외채 협상이 지나치게 미국 일변도로 흐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미 협상에 관여하고 있는 한국 출신 미국 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국제 금융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미국 채권 금융기관에 너무 휘둘리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외채 문제 해결을 위해 유럽계 자금을 끌어들이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 유럽계와 일본 채권 은행단 역시 한국의 외채에 대한 금리가 국제 금융 시장이 아니라, 미국계 금융기관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본다.

이렇게 지적하는 배경에는 한국이 ‘빚의 덫(debt trap)’에 빠져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깔려 있다. 이는 만기가 연장된 외채에 너무 나쁜 조건이 부과되어, 채무국이 원금을 줄여나가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80년대 초반 중남미 금융 위기 때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일부 국가가 이런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이 당시 중남미 국가들보다 좀 나은 편이기는 하지만, 미국 채권 금융기관들의 요구 사항은 당시보다 결코 약하지 않다. 금융기관에 따라 요구 사항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그들은 중·장기채로 전환되는 한국 기업 및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금에 대해 정부가 보증해 줄 것과 턱없이 높은 가산 금리(국제 우대 금리인 LIBO에 6∼10%를 더한 것)를 추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아예 고금리 국채를 발행하라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빚의 덫을 우려하는 여론에 따라 한국 정부는 ‘벼랑 끝 전략(brink-manship)’도 불사할 작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1월18일 미국으로 향한 협상 대표단(단장 김용환)은 17일 전체 회의를 갖고 협상 전략을 숙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터무니없는 고금리는 거부하되, 민간 부문 대출금에 대해서는 한국은행이 보증을 하는 절충안을 내놓기로 했다. 합리적인 수준에서 추가 가산 금리는 받아들이되, 그 대신 만기 전 중도 상환이 가능한 콜옵션(call option) 조항을 얻어내는 데 주력하자는 방침도 확정했다. 한국이 지불 유예 상황에 처할 경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게 설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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