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물갈이 전쟁’ 선전포고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3.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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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파와 힘 합쳐 ‘10월 전면전’ 준비…“위원장 50% 교체” 주장도 나와
8월22일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원내총무실. 주요 당직자회의가 거의 끝나갈 무렵, 김병호 홍보위원장이 난데없이 ‘개구리 발언’을 꺼냈다. “올챙이 적 모른다, 시도 때도 없이 지껄인다….” 옆에 있던 박주천 사무총장도 말리기는커녕 거들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생긴 게 똑같다.”

노무현 대통령을 개구리에 비유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발언은 최병렬 대표 체제의 주요 실책 중 하나로 기록될 전망이다. ‘되로 주려다 말로 받았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당내에서조차 주요 당직자들의 인식이 이 정도 수준이냐는 한탄이 쏟아지고 있다.

굳이 ‘개구리 발언’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최대표 체제에 대한 실망감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최틀러’라는 별명에 걸맞게 폭풍 같은 변화가 몰아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두고 보니 별 것 아니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이성헌 의원은 “최대표가 변화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라고 말한다.

최대표 체제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최대표가 ‘나 홀로 정치’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수시로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말을 하고, 인공기를 불태우는 보수파의 집회에 참석하는 등 스스로 ‘민정당’ 이미지를 자초했다. 인사에서도 원칙 없이 오락가락하는 행보가 자주 노출되었다. 그런 데다 최대표가 내세운 ‘정책 정당’ ‘디지털 정당’ 모습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대표가 취임 초기 ‘반면교사’로 삼았던 노무현 대통령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또한 임태희 비서실장·원희룡 기획위원장·박 진 대변인 등 최대표 체제의 골간 당직자들이 하나같이 ‘모범생’ 스타일인 것도 최대표 체제의 순항을 가로막는 한 요인이라고지적한다. 이들이 최대표를 견인하기보다는 오히려 끌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최병렬 대표는 전략적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양다리 걸치기를 하며, 이회창 전 총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공격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라고 분석한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전통적인 지지층은 회복하고 있지만, 부동층이나 민주당 지지자들은 전혀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최대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가 사무총장이나 원내총무 등 당직을 맡은 적이 없어 당 사정에 어둡고, 주요 당직자들이 초선 중심으로 짜여 아직 일처리에 익숙치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 체제가 분권화한 것과 동시에 사람이 바뀌어서 아직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뿐,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그러나 최대표 참모들은 최근 ‘빨간 불이 켜졌다’며 위기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특보단장을 맡고 있는 안상수 의원은 “위기 의식이 당 개혁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는 절박함이 의원들을 짓누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와 발맞추어 이제 타협 카드보다 돌파 카드를 써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최대표의 참모들은 최대표가 당내 강경 보수파와 타협한 결과물인 대북 송금 특검제나 ‘박주천 사무총장’ 카드, 보수적인 행보 등이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합리적 개혁파인 윤여준 의원이 여의도연구소를 맡게 된 것도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최대표 체제는 이제 ‘물갈이’를 핵심 의제로 하는 2기 체제를 맞고 있다. 최대표의 참모들은 이미 당내 강경 보수 그룹과 한판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다양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갈이 전쟁’은 10월쯤 전면화하면서 지역적으로는 수도권과 영남권, 선수로는 초·재선 그룹과 다선 그룹의 대결 양상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남경필 의원은 “물갈이는 생존 문제이다. 정기 국회를 전후해 그런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소장파 의원들이 힘을 합쳐 강력하면서도 일관된 목소리를 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갈이의 물꼬를 튼 사람은 6선 원로인 양정규 의원이다. 최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그의 주장에는 최대표의 의중이 실려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양의원은 “나이를 기준으로 물갈이를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하지만 당선 가능성이나 도덕성 등을 고려해 물갈이를 하지 않고서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라고 단언했다. 당내 중진들을 두루 접촉하고 있는 그는 10∼11월이면 후진에게 자리를 물려줄 사람이 당내에 꽤 있다고 말했다. 원로 중진 의원들이 스스로 지구당위원장에서 ‘용퇴’하는 자연스러운 물갈이를 이루기 위해 막후에서 그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용퇴하는 의원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이다. 이런 측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쇄신연대’를 중심으로 한 재선 의원들의 움직임이다. 안상수 의원은 “지구당위원장의 50% 정도를 바꿔 재창당 수준의 물갈이를 하지 않고서는 당이 국민의 신뢰를 받기 힘들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물갈이를 하기까지는 당내에서 상당한 저항이 있을 것이라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과 국가 이익을 우선하는 국민연대’(국민우선연대)를 만든 홍준표 의원도 “물갈이를 위해 최대표를 중심으로 힘을 모으겠다”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는 지난 8월19일 첫 회의를 가진 ‘한나라당 정치발전특별위원회’(위원장 현경대)를 주목한다. 최병국·안택수·김문수 의원 등 대부분 재선인 위원 13명은 현행 상향식 공천제를 보완하는 공천 제도 개혁과 총선 전략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이 특별위원회 위원인 홍준표 의원은 “중앙당이 개입하지 않으면 물갈이를 하기가 어렵다. 공천 틀을 새롭게 만들 방법이 있다”라며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강경 보수파의 저항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김용갑 의원은 “실행도 안해 보고 상향식 공천 제도를 바꾸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의원이 간사로 있으며 당내 보수파 중진 의원 30여 명이 참여한 ‘중진 모임’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쇄신연대 대표인 남경필 의원은 “최대표는 노인당·영남당·재벌당·수구당 이미지를 벗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수혈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의지만 가지고는 안되는 만큼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느냐에 따라 최대표 체제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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