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의회, 환경부에 손해 배상 요구
  • 부산·박병출 주재기자 ()
  • 승인 199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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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의회 “불량 분뇨처리 기술 공인해 손해”… 시청에 배상 받으라 요구
“주머니 돈은 더 이상 쌈지 돈이 아니다.” 경상남도 창원시 의회(의장 김충규)가 창원시더러 ‘환경부를 상대로 분뇨처리장 설비비에 상당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라’고 요구한 이색적인 사건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행정 사무를 조사해 환경부의 부당 행정 행위로 창원시 예산 53억원이 낭비된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 창원시 의회의 주장이다.

창원시가 시 예산 백억원을 들여 이른바‘감압증발식’ 분뇨처리장을 준공한 때는 92년이다. 그러나 신공법으로 건설한 이 분뇨처리장은 제 구실을 못해 지난 2월 가동을 중단했다.

(주)삼비(대표 임무영·경남 창녕군 창녕읍)가 개발한 감압증발식 분뇨처리 방식은 89년 7월 환경부(당시 환경청)의 공인을 받은 ‘신기술’이다. (주)삼비는 특허청으로부터 시설 특허까지 따내 설계·시공권을 독점한 덕분에 창원시를 비롯한 전국의 12개 시·군 분뇨처리장 공사를 모두 수의 계약으로 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최종 방류수의 BOD(생물학적 산소 요구량)가 기준치인 40ppm을 10배 이상 초과하는 불량 기술로 드러나 한 곳도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말썽이 커지자 환경부는 지난 2월 감압증발식에 대한 공인을 취소했으나, ‘사후 약방문’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주)삼비가 이미 94년 말 도산한 상태여서, 뒷북 행정이라는 비난만 보탰다.

창원시 의회가 환경부에 화살을 겨눈 것도 이 때문이다. 행정사무조사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홍창오 의원은 “환경부의 공인고시나 특허청의 특허등록은 결정적인 선택 기준 역할을 한다. 그래서 ‘분뇨 시설의 공인에 관한 규정’에는 환경부에 기술· 경제적으로 엄격한 검토 의무를 지워놓고 있다. 환경부가 공인을 취소해 잘못을 인정한 이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위의 다른 위원들도 직무 태만이나 고의성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환경부의 공인 심사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공인 전에 철저한 시험이 이루어졌다면, BOD 기준치 초과와 같은 중요한 하자가 발견되지 않았을 리 없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지방 의회 모습

의회에 떼밀려 상급 기관을 법정의 피고인석으로 불러내야 할 처지인 창원시는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의회가 ‘창원시에도 상당 부분 예산을 낭비한 책임이 있다’고 결론 내린 점도, 관계자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사무조사특위는 지난달 12일 의회 임시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창원시의 사전 검토 부족, 공사 감독 소홀과 형식적인 시운전 등을 이번 문제의 원인으로 함께 지적했다.

특위 조사에 따르면, 창원시는 91년 감압증발식 분뇨처리 설비를 채택하면서, 이를 먼저 설치해 가동중이던 인근 거창군의 실태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시설 설치 후 분뇨를 하루 2백10㎘씩 1개월 이상 연속 투입해 종합 시운전을 해야 한다는 규정을 무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하루 1백23㎘씩 21일간 시험 가동한 후 서둘러 준공을 내줬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창원시는 환경부에 배상을 청구하라는 의회의 통보를 받은 지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다 할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수호 창원시 위생환경사업소장은 “의회가 요구한 ‘배상 조처’가 곧 ‘소송 제기’를 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 지원금 등의 형식으로 손해를 보전하는 방법을 환경부와 협의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회측은 “소송만이 최선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당한 타협’이 아니라 ‘정당한 요구’라는 인식을 가지고 해결해야 한다”(홍창오 의원)고 밝혀, 사실상 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자세이다. 또 창원시가 소극적으로 대처할 경우에는 의회가 직접 나서겠다고 벼르고 있다.

창원시 의회는 과거에도 한 차례 송사를 통해 뜻을 이룬 적이 있다. 93년 2월 강수의·홍금식·홍창오 세 의원이 기초 의회의 위상과 관련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었다. 지방자치법 제15조와 제20조가 도의회와 달리 기초 의회에는 허위증언자 제재 조례 제정권을 부여하지 않아 헌법이 정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취지였다. 이 주장은 재판부 전원일치로 받아들여져 지난해 지자제법 개정에 반영됐다.

전국의 지방 의회는 그동안 의정 수행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시비 속에 따가운 눈총을 받아 왔다. 중앙 정부를 의정의 ‘도마’에 올려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창원시 의회는, 본격적인 지자제 시대에서 바람직한 지방 의회의 역할과 자리매김에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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