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국회 신인④/방송·연예계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6.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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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 ‘단골 손님’답게 화려한 등장…“참신성 강화” “권언 유착” 평가 엇갈려
언론인의 정계 진출은 정치권에서 오래된 전통이다. 역대 국회의원 1천9백83명 가운데 7.5%에 달하는 1백48명이 언론계 출신이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김윤환 신한국당 전 대표, 김원기 민주당 대표,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 서청원 신한국당 원내총무, 신상우·이부영·신경식·최병렬 의원 등이 현재 정치권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언론계 출신 인사들이다.

15대 국회에 처음 진출한 언론인 출신 당선자의 특징은 한마디로 ‘방송 앵커 약진과 신문 기자 출신 부진’으로 요약된다. 과거에는 정치권에 진입하는 언론인 대다수가 신문 기자 출신이었다. 신문 기자가 정치권에 진입하는 경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정당이 새로운 이미지 창출과 ‘언론사 달래기’를 위해 언론인을 영입하거나 기자 스스로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권에 뛰어드는 것이다.

영상 매체 발전하자 ‘인기인’ 앵커 각광

이번에 당선된 기자 출신들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치권에 진입했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인 신한국당 강성재 당선자는 해직과 복직을 거쳐 민정당 국책조정위원으로 정계에 몸을 담았다. 이만섭 국회의장의 비서실장을 지내기도 한 강당선자는 3수 끝에 금배지를 따내 감회가 남다르다. <동아일보> 정치부장 출신인 이경재 당선자는 청와대 공보수석과 공보처 차관을 거쳐 국회에 입성한 중량급 신인이다. 김 철 당선자는 경복고 선배인 김덕룡 정무장관의 계보에 속한다. <동아일보> 기자이던 그를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발탁한 사람도 김덕룡 장관이라고 알려져 있다.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가 최근 신한국당에 입당한 임진출 당선자는 <국제신문> 기자 출신이다.

국민회의 정동채 당선자는 김대중 총재의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합동통신 해직 기자로 미국에 머무를 당시 망명한 DJ와 고락을 함께했고, 귀국 후 DJ가 아태재단을 설립하자 비서실장에 발탁되었다. 장성원 당선자는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끝으로 신문 기자 생활을 마감하고 지난해 8월 국민회의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자민련 안택수 당선자는 <한국일보> 기자와 기자협회장을 거쳐 보사부 대변인을 맡으면서 외도에 나섰다. 중간에 <토요신문> 편집국장으로 언론계에 잠시 복귀했던 그는 새정치국민연합 대변인으로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이동복 당선자는 5·16 무렵 <한국일보> 기자로 공화당에 출입하면서 JP와 인연을 맺었다. 국회의장 비서실장과 안기부장 특보를 지낸 이당선자는 지난 2월 자민련으로부터 전국구 제의를 받고 입당했다. 그러나 이당선자의 전국구 입성에는 과거의 언론계 경력보다 남북문제 전문가 경력이 더 높게 평가된 것으로 알려진다.

신문 기자 출신들은 대체로 당 대표의 언론 담당 특보나 정책 브레인, 행정부 대변인 등을 통해 현장 정치 감각을 익힌 뒤 국회의원에 도전한다. 그러나 방송 앵커의 경우는 정계 입문 경로가 더 직접적이다. 방송에서 널리 알려진 얼굴을 무기 삼아 곧바로 선거전에 투입되는 것이다. 15대 총선에서 방송 앵커의 위력은 명백히 입증됐다.

과거에는 방송 앵커가 정치에 입문하는 예가 드물었다. 그동안의 방송은 상대적으로 여당 성향이 강했다. 따라서 굳이 ‘달래기성 영입’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방송 기자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도 신문 기자에 비해 높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영상 매체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텔레비전 앵커가 지니는 힘 역시 막강해졌다. 인기 스타 못지 않은 높은 인지도에 앵커라는 자리가 보장해 주는 신뢰감과 지적 이미지가 곁들여 유권자의 표 획득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박성범 당선자가 국민회의의 차세대 주자로 꼽히던 정대철 후보를 물리친 것이나, 선거전에 뒤늦게 뛰어든 정치 초년병 정동영 당선자가 전국 최다 득표를 올린 것은 모두 영상 매체의 위력을 입증하는 예다.

언론인의 정계 진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이 엇갈린다. 긍정론을 펴는 사람들은, 취재 생활을 통해 형성한 객관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정치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를 의식한 듯 언론계 출신 당선자들은 한결같이 취재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계파 중심이 아니라 참신한 정책 중심으로 정치를 펴나가겠다고 공언한다.

각당 대변인 등 간판 역할 맡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언론인 출신 선배 정치인들의 경우를 예로 들며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친다. 이상희 교수(서울대·신문학)는 ‘권력과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할 언론의 본령을 근본부터 망각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런 비판에는 과거 언론이 정치 집단과 공생 관계를 이루어 왜곡 보도를 일삼고, 이러한 거래의 대가로 나중에 정·관계의 물 좋은 자리를 배정 받아 왔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특히 앵커들이 줄줄이 정계에 진출한 것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소리가 높다. 방송의 공공성을 의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대중 정치가 발달한 미국에서, 정치권의 끊임없는 유혹을 받아온 명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방송의 중립을 주장하며 정계 입문을 끝내 마다한 것은 한국 앵커들의 정계 진출과 대비되는 좋은 예이다.

한 정치학자는 앵커 출신을 공천한 데 대해 ‘단순히 의석 수를 확보하기 위한 카드’라고 비난한다. 이러한 우려 탓인지 방송가에서 국민회의 정동영 당선자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MBC 보도국의 한 간부는, 정당선자가 방송 앵커로는 첫 야당행 인사이기 때문에 그의 활약에 따라 언론인 출신에 대한 기존 이미지가 달라질 수도 있고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언론인 출신 초선 의원들은 당의 주요 직책을 차지하며 정치인으로서 힘차게 출발했다. 김 철·정동영·안택수 당선자는 당 대변인을 맡아 연일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고, 신한국당 맹형규 당선자는 중앙상무위 운영기획위원장에, 강성재 당선자는 대표 특보 자리에 올랐다. 국민회의 정동채 당선자는 총재 비서실장을 맡아 동교동 실세로 떠오르고 있다.

뉴스 전달자에서 뉴스 메이커로 변신한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에게 영원한 ‘기자 정신’을 기대한다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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