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리더 시리즈 ⑧ / 김영춘 열린우리당 의원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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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정당 터닦기’ 삽을 들다
정치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는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일 때문이거나 아주 친한 사람들하고가 아니면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 “유시민·김부겸 의원처럼 말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저러다 실수하지 싶어 걱정되기도 한다”라고 털어놓을 정도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아예 모든 당직을 마다하고 ‘방학’ 선언을 했다. 올 겨울까지는 새로 맡은 상임위원회(정무위) 공부에만 전념하면서 재충전하겠다는 이유에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년 동안 그는 정치에 입문한 이래 가장 숨가쁜 나날을 보냈다. 지난해 7월 한나라당을 탈당해 ‘독수리 5형제’가 되고서는 통합신당을 위한 협상 대표로 나섰고,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진 후에는 홍보담당 원내부대표를 지냈으며, 정동영 의장이 선출되고서는 의장 비서실장을 맡아 매일매일을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로 지샜다. 그 때문에 몸무게가 반년 사이 6kg이나 빠졌다.

상임위 공부 전념하기 위해 당직 포기

하지만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편했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한나라당에서는 10년이 지나도록 정서적 일체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동안 (YS든 DJ든) 누구 밑에서 일했느냐보다, 옛날에 학생운동을 하거나 시민운동·재야운동을 하면서 맞춰 본 코드가 역시 강력한 모양이다.”

198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그는 운동권 출신 중에서는 비교적 일찍 제도권에 발을 디뎠다. 1987년 직선제 개헌 투쟁이 한창일 때 김영삼 전 대통령 비서실로 들어가면서다. 당시 민정당사 농성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나온 그를 상도동으로 적극 영입한 사람이 현재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김덕룡 의원이다. 그는 동교동에 들어간 운동권 선후배들과 짜고 YS·DJ 단일화를 위해 애썼지만 끝내 좌절했다.

대선 실패 후 그는 학교로 돌아갔다. 구속되는 바람에 미처 졸업하지 못한 탓이다. 내친 김에 대학원까지 마쳤다. 그 사이 노동운동을 하려고 여러 번 위장 취업을 했지만, 번번이 들통나곤 했다. 그는 “일부러 얼굴에 숯검댕이를 칠하고, 한겨울에 찬물로 빨래하는 모습을 보여도 소용없었다. 천상 백면서생 같아 보여 그랬던 모양이다”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그는 1992년 대선을 앞두고 상도동으로 복귀했다. 3당 합당으로 ‘호랑이 굴’에 들어간 YS가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SOS를 친 것이다. 그 때만 해도 YS가 아직 민자당 후보도 되기 전이어서 그는 반신반의하면서 YS 돕기에 투신했다. 그 결과 그는 대선 승리의 짜릿함을 맛보았고, 젊은 나이에 청와대 정무비서관이라는 벼슬도 얻었다.

그러나 그때 얻은 ‘김현철 장학생’이라는 꼬리표는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했다. 1996년 처음 총선에 나섰을 때는 ‘김현철 백으로 공천받았다’는 상대 후보의 공격이 먹히면서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초선과 중진 잇는 접착제 되겠다”

하지만 이 멍에는 한나라당 탈당과 신당 창당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씻긴 상태다. 가만 있으면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는 그가 탈당이라는 험로를 택하는 것을 보며 ‘정치 개혁’과 ‘국민 통합’을 앞세운 그의 ‘진정성’이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은 “당의 중추적 역할을 할 사람인데 아깝다”라고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를 불러 “한나라당에 있으면 대선 후보도 될 수 있을 텐데 왜 하루살이가 되려고 하느냐”라며 만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를 배울 때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라고 배웠다. YS 학교에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라며 뿌리친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 탈당파이면서도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선거에서 서울시지부장으로 뽑힐 수 있었던 저력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 출신인 한 동료 의원은 그를 두고 ‘정치 행로는 달랐지만, 반듯하고 왠지 끌리는 매력 있는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이제 그는 다른 재선그룹과 함께 당의 중추세력으로 거듭났다. 초선과 중진을 잇는 접착제가 되어 ‘100년 가는 정당을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그의 야무진 꿈이 서서히 날개를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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