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원 사퇴한 안동선 의원 직격 인터뷰
  •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 승인 2001.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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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말했을 뿐인데 왜 사과하나"/
"여당 격려할 줄 모르면 야당 총재 아닌 싸움꾼"


그동안 이회창 총재 부친의 친일 의혹을 제기한 의원은 많았지만, 안동선 의원만큼 주목되지는 못했다. 특유의 거친 입이 가져온 파괴력은 그를 일약 여름 정국 최고의 '뉴스 메이커'로 만들었다. 민주당 지도부의 일원이자 동교동계 구파의 원로인 그가, 영수회담 기운이 무르익던 찰나에 독설로 판을 뒤엎어버린 까닭이 뭘까. "나는 소인배고, 자기는 대인배란 말이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빗대 '소인배'라고 한 것에 대해, 그는 흥분을 삭이지 못했다. 며칠 전, 발언 파문에 책임을 지고 최고위원 직을 사퇴했지만, 생각은 아직까지도 8월16일 발언 때 그대로였다.




대통령이 영수회담을 제의한 상태에서, 그런 발언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


광복절 날 독립기념관 행사에 이총재가 불참했다. 우리 민족 최대의 경축일인데 야당 총재가 참석하지 않다니, 섭섭했다. 그래서 다음날 청주에서 열린 국정 홍보대회에서 '이총재가 양심은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독립기념관에 못 온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부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영수회담에 차질을 줄까 봐서 심한 말은 안 했다. 다만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때 국민 모두가 울었는데 두 놈만 안 울었다. 하나는 제주도 돌하루방이고, 또 하나는 이총재다'라고는 했지. 그러나 '놈'자는 연설할 때 자연스레 나올 수 있는 관용어 아니냐. 농담으로 말했을 뿐이다.


이총재는 영수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사과와 재발 방지'를 내걸었는데.


나도 정치인이다. 윤리위에 회부했으면 됐지, 재발 방지를 어떻게 약속하라는 건가. 의원들이 자기 소신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라, 하지 마라, 일일이 간섭하려는 것은 정치 초보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전제 조건을 고집하는 것 자체가 영수회담을 안 하겠다는 것 아니냐. 이총재한테 조언할 것이 있다. 여당이 아무리 밉더라도, 국가를 위한다면 잘한 것은 잘했다고 격려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총재가 여당 칭찬하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게 싸움꾼의 자세지, 무슨 야당 총재의 자세냐. 역대 야당 총재 중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다시 한번 사과할 의사는 없는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무슨 사과를 하나. 박상규 총장이 내 대신 사과한 모양인데, 그것도 잘못한 것이다. 정형근이가 전에 대통령을 빨치산이라고 했다. 김만제는 입만 열면 국민의 정부를 빨갱이라고 한다. 그때마다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사과했나? 독립운동가 집안은 3대가 망하고, 친일파는 3대가 득세를 한 게 사실 아니냐.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이 이회창 판사에게 사형 판결을 받은 것도 사실 아니냐.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했는데, 왜 내가 사과해야 하나.


이총재 부친의 친일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나? 그게 없다면 무책임한 정치 공세에 불과한 것 아닌가.


조금만 기다려 봐라. 일제 검찰에서 구체적인 친일 행위를 어떻게 했다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서 근무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무 기록은 나올 것이다. 역사는 숨기지 못한다.


민주당이 폭로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직은 이르지만, 나올 것으로 믿는다.




최근 민주당에서는, 장영달 의원의 호남 후보론 발언 이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권노갑 전 최고위원의 최측근인 이훈평 의원은 '호남 후보가 나오면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에 대해 한화갑 최고위원측은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동교동계의 갈등이 재연될까. 안동선 의원은 권노갑 전 최고위원과 가까운 사이다.


호남후보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구든지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는 있다. 호남 후보론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훈평 의원이 지적한 것은 현실론이다. 내 생각도 이훈평 의원과 같다.


동교동계 구파의 생각이 모두 같나?


권노갑 전 위원과는 관계없이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똑똑하기 때문에만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다. 일생 동안 박해를 받으면서, 국민들과 미운 정 고운 정이 충분히 들었다. 그런데 투쟁 경력도 없고, 미운 정 고운 정 쌓인 것도 없는데, 똑똑한 것 하나 믿고 대통령을 하겠다는 발상은 현실감이 떨어진 생각이다.


앞으로 동교동계의 역할은?


당론을 통일시켜, 정권 재창출의 산파 역할만 하면 된다. 당권을 잡자는 것도 나는 반대다. 총재가 물러나고 대권 후보가 나오면, 대권 후보 쪽으로 당권이 가는 거다. 그래야 힘이 생길 것 아니냐. 어쨌든 간에 동교동계는 정권을 재창출하는 매개 역할만 하면 된다. 그 이상은 없다.


권노갑 전 위원의 당내 역할은 무엇인가?


아무리 대통령의 신임이 있어도 실권이 있어야지. 권 전 위원에게는 정치를 뒤에서 조정할 힘이 없다. 이회창이 왜 이회창이냐. 당 총재이기 때문 아니냐. 그래서 김윤환이나 이기택 씨 같은 노장들이 한칼에 간 것 아니냐. 그게 정치다.


그는 1956년,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직후부터 야당 정치에 입문했다. 당시 그가 최초로 한 정치 행위는 풀통을 짊어지고 다니며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신익희 대통령 후보의 선거 전단을 붙이는 일이었다. 이후 민주당의 이른바 '해위(윤보선 전 대통령)계'의 젊은 식객으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 12대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될 때까지 그는 네번이나 낙선의 설움을 맛보기도 했다. '야당 정치 생활 40년의 피와 눈물'이라는 그의 관용구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는 입이 거칠기로 유명하다. 대야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당내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할 말은 꼭 하고야 마는 정치인'이다. 그 때문인지 그는 지난해 말 김중권 대표와 불편한 관계였고, 올해도 개혁파 의원들이나 이해찬 정책위의장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거칠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이렇게 응답했다. "거칠 수밖에 없지. 야당 생활이 편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과거에는 싸우면서도 금세 화해했다. 타협과 대화가 되었다. 지금은 비정상이다. 이건 정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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