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트는 옛노래 ‘후보교체론’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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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회창과 2002년 노무현의 닮은 점·다른 점


"이러다가 정권 넘어가는 것 아냐.” “할 수 없지 뭘. (후보 지지율이 급락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있나.”
민주당 이야기가 아니다. 1997년 8월19일자 한 신문에 나와 있는 신한국당 의원들의 대화 내용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5년 전과 똑같은 일이 현재 민주당 안에서도 목격된다. 후보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내분이 일고, 후보교체론까지 언급되는 현상이다. 과연 후보 교체는 가능할까. 1997년 이회창 후보를 둘러싸고 진행되었던 후보교체론과 현재 노무현 후보를 놓고 벌어지는 책임 공방을 비교해 보자.


1997년 8월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비리 의혹이 터지면서 한때 60%를 웃돌던 이후보 지지율은 10%대까지 떨어졌다. 당은 분란에 휩싸였고, 당원들은 패배 의식에 젖었다. 후보교체론은 이런 난기류 속에서 싹텄다. 당시 이후보의 추락이 본인의 자책 때문이었다면, 현재 노무현 후보가 급락한 원인은 복합적이다. 이른바 ‘3홍 비리’와 노후보의 실책이 겹치면서 지방 선거에서 대패했고, 이것이 지지율 급락으로 이어진 것. 그러나 이후 전개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YS 때리기·DJ 결별로 위기 돌파 공통점


패배 의식이 확산되고 있고, 대안론이 들먹여지는 것도 당시와 같다. 이인제 의원이 후보 책임론의 선두에 있다는 점도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정균환 의원을 비롯한 중도개혁포럼 소속 의원들이 후보책임론에 목청을 맞추고 있는 점도 당시 후보교체론의 본대 역할을 했던 정치발전협의회(정발협)를 연상시킨다.


5년 전, 이회창 후보는 비주류 인사들을 향해 당근과 채찍을 병행했다. 서청원 정발협 회장을 찾아가 협력을 부탁했고, 최병렬·김덕룡 의원 등 경선 패자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반면 굽히지 않는 비주류 인사들은 과감히 내쳤다. 이후보가 선택한 최후 해법은 김영삼 대통령과의 차별화였다. 1997년 10월 초, 그는 YS에게 탈당을 요구했다. YS 인형을 불태우기도 했다.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하면서 전선을 ‘DJ 대 이회창’으로 바꾸는 데도 성공했다. 이런 노력으로 후보교체론은 점차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YS 때리기는 그에게 득과 실을 모두 가져다 주었다. 대구·경북의 지지가 회복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부산·경남의 민심 이반을 더욱 촉진한 것. 이는 결국 이인제 후보에게 경선 불복 효과를 누리게 만들었고, 대선 패배의 빌미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5년 뒤, 똑같은 상황에 처한 노무현 후보에게는 어떤 해법이 있을까. 우선 국민의 손으로 뽑은 후보를 당원들이 바꿀 수 없다는 여론은 노후보에게 힘이다. 지지율 하락의 결정적인 귀책 사유가 노후보에게 있지 않다는 점도 그에게는 다행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한참 게임을 뛰는 선수에게 밀리니까 그만두라고 하는 소리나 같다”라면서 후보교체론을 비판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한 측근도 노무현 후보가 교체되는 상황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서 ‘상식 이하의 발상’이라고 말했다. 또한 경선 비용만 30억원이 드는 국민 경선을 다시 치르는 것도 부담이다. 8·8 재·보선이 끝난 후 경선을 치르기에는 일정도 촉박하다. 민주당 당헌·당규에도 후보 재신임이나 재경선 규정은 없다. 대통령 후보가 교체된 전례는 국내외적으로도 거의 없다.




이런 점을 들면서, 민주당 관계자들은 재신임 논란이 후보 교체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1997년에 비해 지금의 민주당 사정이 훨씬 안 좋은 만큼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우선 DJ와의 차별화에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시사저널>의 6월28일 여론조사(제663호 참조)에서 보듯, DJ와의 차별화에 대한 찬반 여론은 비슷하다.

또한 당시 신한국당 총재였던 YS와 이미 당을 떠난 DJ와는 위상도 다르다.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이 지금 민주당보다 막강했다는 점도 차이다. 현정권 초반 총풍·세풍 사건이 연이어 터졌던 것도 지난 선거 때 모든 권력이 이회창 후보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여권은 껍데기뿐이다. 노후보가 ‘나는 여당 후보가 아니다’라고 한 말은 단순한 수사만이 아니다.


대체 후보 존재·당 장악력 등에서는 큰 차이


대통령 선거 외에는 정국에 영향을 미칠 만한 선거가 없었던 5년 전에 비해 지금은 지방선거와 재·보선이 연이어 치러지고 있다는 점도 차이다. 끊임없이 중간 평가를 받아야 하는 노후보로서는 12월 본선에 목표를 맞추어놓고 기초체력을 끌어올리는 이른바 ‘히딩크식 전략’을 구사하기에도 어려움이 많다.


5년 전 신한국당에는 경선에서 패한 흠결이 있는 이인제씨 외에는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월드컵 성공의 후광을 업고 있는 정몽준 의원이 있다. “8월 재·보선 이후 노후보가 또 책임론에 휩싸인다면 재경선 외에는 타개책이 없을 수도 있다. 그때 정의원이 입당해서 경선에 참여한다면 누가 이길지 장담하기 어렵다.” 민주당 관계자의 말이다.
무엇보다도 후보의 당 장악력이 다르다. 당시 이회창 후보는 후보가 되기 전부터 당 대표였다. 후보교체론도 카리스마와 친위 부대를 통해 제압해 나갔다. 반면 노무현 후보는 후보가 되기 전이나 된 후 모두 ‘아웃사이더’다. 집단지도체제도 당권 장악을 어렵게 하고 있다.


당내 상황도 썩 좋지만은 않다. 현재 민주당 의원들의 분포는 ‘소수의 주류와 소수의 비주류, 그리고 다수의 방관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노후보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원군을 크게 늘릴 수 있다. 하지만 노후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 답변이다. ‘방관 그룹’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도움을 요청해야 나서지, 아무런 연락도 없는데 자원 봉사라도 하라는 말이냐”라고 되물었다. 노후보의 측근도 “후보가 세몰이 정치를 하지 않겠다면서 의원들과의 접촉에도 소극적이다”라고 아쉬워했다.


경선 후유증이 당시보다 적은 것은 민주당에 그나마 다행이다. 1997년 후보교체론에 앞장섰던 이들은 이인제 이수성 박찬종 이한동 등 경선 탈락자들이었다. 반면 지금은 이인제 의원을 제외하고는 적대적인 이가 없다. 한화갑 대표는 이미 노후보와 ‘한몸’이 되어 있고, 김근태 의원도 최근 ‘8·8 재·보선 특위’ 위원장을 맡으면서 동참했다.


후보교체론 파문의 위기가 1997년 신한국당 때보다 시기적으로 빨리 찾아왔다는 점도 어찌 보면 노후보에게 다행이다. 당시 8월 초에 점화된 파문은 대선을 불과 한 달 남겨둔 11월12일에야 공식으로 종료되었다. 노후보는 한달 보름을 더 확보하고 있다. 민주당 내분이 제어될 수 있을지, 후보 교체나 분당으로 이어질지는 노무현 후보의 당 장악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여야 정치권 전반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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