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에게 저당 잡힌 삶, 굿바이!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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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형 선고받은 권노갑씨, 사실상 정계 은퇴…40년 그림자 생활 마감
"피고인은 공판 과정에서 진승현씨와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 등이 자신을 음해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진씨 등이 허위 진술을 하면서까지 사건을 만들어낼 만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돼 공소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다.”


7월25일 오전 11시 서울지방법원 525호실. 재판장인 박영화 부장판사가 주문(主文)을 읽어 내려갔다. 판사의 착석 권유를 사양하고 서 있겠다던 권노갑 피고인이 ‘유죄’라는 말을 들으며 조용히, 피고인석에 무너져 내리듯 앉았다. 오랫동안 머리 손질을 못한 반백의 머리칼 때문에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김옥두·이훈평·조재환·박양수 의원을 비롯한 동교동계 ‘동생’들과 방청객 70여 명의 얼굴도 굳어져 갔다.





3년간 대통령 만나지 못해


판사의 주문은 “징역 1년과 추징금 5천만원을 선고한다”라는 말로 끝났다.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가 적지 않고 고령인 점, 많은 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한 형량이었다. 무죄든 집행유예든, 풀려날 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던 방청객들 입에서 짧은 탄식이 이어졌다. ‘이런 재판이 어디 있나’ ‘억울하다’는 소리가 낮게 퍼졌다. 방청객들이 일어나 동요하는 사이 권씨는 들어올 때처럼 눈인사도 악수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곧장 재판정을 빠져나갔다.


그가 구속된 날이 5월3일.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을 통해 진승현씨로부터 금감원 로비 명목으로 5천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그는 구속 전후나 재판 과정에서 줄곧 그 사실을 부인했다. 1997년 한보 사건으로 구속된 이후 돈에 관한 한 철저히 경계해 왔다는 그였다. 한 측근은 “당시 한보 정태수 회장은 5천만원만 줬다고 했으나 권고문은 검찰에서 1억5천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권고문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재판 과정에서 그에게 유리한 증언도 나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런 증언을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로써 ‘명예 회복 뒤 은퇴’를 꿈꾸던 권씨의 마지막 꿈도 사라졌다.


권씨를 목포 출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실은 경북 안동이 고향이다. 거기서 태어나 네 살 때 목포로 이사갔다. 목포상고에 재학 중 김대중 ‘선배’를 처음 보았다. 영어교사 생활을 접고 김대중씨의 비서로 옮긴 것이 1961년 5월, DJ가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였다. 그의 나이 31세. 그 날 이후 그는 DJ에게 인생을 저당 잡힌 채 살아왔다. 그가 자신의 묘비명을 ‘김대중 선생 비서실장’이라고 써달라고 했다는 것은 이제는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 그가 DJ를 못 만난 지 벌써 햇수로 3년째다. 마지막 본 것이 2000년 12월2일이다. 이 날은 정동영 당시 최고위원이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권노갑 퇴진’ 발언을 한 날이다. 그 날 이후 그는 최고위원 직에서 물러났고, DJ와 닿아 있던 공식적인 선도 끊겼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2인자이자 ‘DJ의 복심’으로 의심받았고, 끊임없이 정계 은퇴를 강요받았다. 마침내 DJ도 외유를 권했다. 그러나 그는 거절했다. 그림자 삶 40년 만에 처음으로 주군의 말에 불복한 사건이었다.



권씨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이훈평 의원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군을 위해 전쟁에 나가 장렬하게 전사할 수 있다. 그러나 장수더러 불명예를 안고 죽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이런 말은 역으로 그가 그림자 인생을 거두고 자신의 삶을 살고자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측근은 이런 말도 했다. “김근태 의원은 고문 한번 당하고서 유명해졌다. 권고문은 그보다 여러 번, 비슷한 강도로 고문을 당했지만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김근태는 독립된 인간이었지만 권노갑은 비서였기 때문이다.”


당뇨 합병증 등으로 고통스런 감옥 생활


하지만 권력자의 측근이 자신을 내세우기 시작하면 원하든 원치 않든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에서 그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현정권 내내 그는 2인자로 불렸고, 실제로 한때는 2인자였지만, 동시에 이 기간은 그가 끊임없이 풍파를 겪으며 몰락하는 기간이었다.


그는 결벽증이 있는 데다, 당뇨 합병증까지 겹쳐 무척 고통스런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고 측근은 전했다. 무엇보다 울분과 억울하다는 생각으로 그는 괴로워하고 있다. 그는 최근 ‘민주당을 탈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부에서는 그가 지금도 정치를 계속하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민주당을 탈당하겠다는 권씨의 말을 ‘동교동 신·구파의 단결을 도모한 후 대선 때까지 일정한 역할을 해나가기 위해서’라고 해석하는 사람(동교동계 출신 민주당 의원)도 있다. 그러나 가까운 측근들은 그가 명예로운 은퇴를 원했다고 전한다.




“그는 민주당에 대한 관심도 미련도 다 버렸다. 김대통령까지 당을 떠난 마당에 더 이상 그가 할 일도 없다.” 측근의 말이다. 다른 인사는, 그가 석방되면 정치에서 손을 떼고 가족만을 위해 살겠다고 부인과 약속했다고 밝혔다. ‘탈당’ 발언도 그런 차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의 나이도 72세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9개월이나 남은 형기를 보듬고 서울구치소로 돌아간 그는, 며칠 후 이석형 변호사를 통해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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