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후끈 달아올랐으나…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5.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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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지원 등에 업고 합당 ‘구애’…민주당 사정 복잡해 ‘재결합’ 무산
또 한바탕 양은 냄비만 달구다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05년 정초를 시끄럽게 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설은 당분간 잠복하게 생겼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성사되는데, 아직은 여건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탓이다.

이번에 합당설이 불거진 것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먼저 몸이 달았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 직을 잃게 될 소속 의원이 많아 조만간 과반수 정당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그렇다고 4월30일로 예정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또다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월26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과반수에 대한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숫자 한두 명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의를 가지고 가느냐, 대의에서 벗어나느냐가 핵심적인 문제다”라며 애써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김효석 교육 부총리 카드가 무산되고 민주당의 반발이 극심한 것을 의식한 사후약방문 성격이 짙다. 왜냐하면 당초 노대통령이 김효석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는 차기 교육 부총리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민주당 인사를 발탁함으로써 호남 민심을 추스르는 동시에 대통령이 당파를 떠나 널리 인재를 구한다는 유연함을 보여주려 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3년차 정책을 흔들림 없이 뒷받침해야 할 열린우리당 처지에서는 합당을 하든 정책 연대를 하든 어떻게 해서라도 의석 수의 공백을 메워야 할 절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DJ, 문희상에게 합당·당의장 출마 권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핵심 인사들에 따르면, 여권 인사들이 민주당에 대해 본격적으로 구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민주당 한 고위 당직자는 “12월 초부터 민주당 고위 인사들이 여권 인사들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자주 받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추미애 전 의원이나 이정일 의원이 여권 인사들로부터 입각 제의를 받았다고 한 것도 그 즈음이다. 이 고위 인사는 채널 역할을 한 여권 인사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헤비급’이라고만 대답했다.

이를 근거로 정가에서는 네댓 사람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민주당 인사들에게 그 정도 무게감을 줄 인사라면 청와대에서는 김우식 비서실장과 문재인 민정수석, 국회에서는 김원기 국회의장과 문희상 의원 정도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김우식 실장은 김효석 의원에게 교육 부총리 자리를 제안한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을 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가에서는 청와대 인사들보다는 열린우리당 쪽 인사들의 역할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인사들의 경우 어느 정도 확정 단계에서 ‘전달자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면, 당 인사들의 경우에는 사전 조율 단계부터 깊숙이 관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가에서는 특히 열린우리당 대표 경선에 나서기로 한 문희상 의원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문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을 지내 노심(盧心)을 읽는 데 정통하다는 평을 듣는 데다, 민주당 시절 ‘한화갑 계보’로 분류될 만큼 한화갑 대표와도 가깝기 때문이다.

정가 흐름에 밝은 한 소식통은 문의원의 최근 행보와 관련해 ‘동교동과의 교감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지난 1월5일 문의원이 동교동에 세배를 갔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두 가지를 당부했다고 한다. 하나는 열린우리당 의장 선거에 나가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당과 합당하라는 것이다. 그 때부터 문의원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문의원이 정보위원장 자격으로 미국에 나가 있어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한화갑 대표의 한 측근 역시 “한대표도 문의원이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라고 말해, 동교동과의 교감설이 전혀 근거 없는 관측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뿌리가 같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열을 늘 안타깝게 생각해온 김 전 대통령 처지에서는 가능하면 빨리 두 당이 합치는 동시에, 대북 송금 사건과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시달리고 있는 박지원·한광옥 전 비서실장 등 측근들이 법적·정치적 자유를 얻기를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문희상 의원은 출장에서 돌아온 후 의장 출마를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하지만 동교동의 지원까지 등에 업은 여권의 구애 작전은 민주당 내부 사정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현재 민주당 안에는 열린우리당과의 합당 또는 연정을 놓고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

재·보궐 선거나 2006년 지방 선거에서 수도권이나 전북 지역 출마를 노리는 인사들은 가능한 한 빨리 합당하기를 바라는 반면, 민주당세가 강한 광주·전남 지역 출마를 노리는 인사들은 절대로 합당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또 참여정부 출범과 분당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합당을 적극 반대하는 데 반해 참여정부에서 뭔가 역할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합당을 바라는 형국이다. “시간·모양새가 문제일 뿐 결국 합당한다”

이처럼 내부 정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2월3일로 다가온 민주당 전당대회는 대표 출마자들 사이에 선명성 경쟁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들 가운데 호남 출신이 많기 때문에, 당권 도전에 나선 한화갑 대표나 김상현 전 의원 모두 ‘합당 반대’를 경쟁적으로 외치고 나선 것이다.

불을 먼저 지핀 쪽은 도전자인 김상현 전 의원이다. 그는 1월19일 출마 선언을 할 때만 해도 합당에 유연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2월3일 전당대회를 합당 불가 선언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강경해졌다. 김씨측은 특히 한대표가 당권을 잡으면 전격적으로 합당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한대표와 여권 인사들 사이에 사전 교감이 있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애당초 합당불가론을 내세우던 한화갑 대표 역시 김씨가 강경하게 나오자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합당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시간’과 ‘모양새’가 변수일 뿐, 언젠가 두 당이 합칠 것이라는 데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염동연 의원은 “양쪽 모두 좀더 당해야 된다. 악 소리 나도록 어려움을 겪어 봐야 합치지 않고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얘기가 절로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시점은 아마도 2006년 지방 선거 직후와 2007년 대선후보 경선 직전, 아니면 2007년 대선 직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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