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에서 현실로 회귀하는 인터넷 기업
  • 이문재 기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0.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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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모델 한계 인식…온라인 넘어 오프라인과 결합 모색
서울 서초동 한솔M닷컴 빌딩 뒤편에 ‘프리존’이라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 푸르스름한 형광빛이 감도는 조명과 노란색과 청색을 주된 색으로 꾸민 실내 장식에 붉은 아크릴 반구(半球)로 둘러싸인 책상은 동화 속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컴퓨터 사용은 거저이고,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피곤해지면 쉴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도 마련되어 있다.

지난 2월 문을 연 이곳은, 인터넷 카드업체 ‘레떼컴’의 고객지원센터이자 홍보 공간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레떼컴은 올 7월부터 프리존을 자사의 온라인 커뮤니티 ‘레떼 스쿨’의 회원들이 만나 교류하는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가상 세계인 온라인과 현실 세계인 오프라인을 잇는 ‘오프라인 커뮤니티 센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3월30일 인터넷 포털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서울랜드와 전략적 제휴 협정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서울랜드의 테마 파크를 10만개에 달하는 ‘다음’의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이 직접 만나 교감을 나누며 진정한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끔 오프라인 커뮤니티 센터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구상이다. 인터넷 증권사 ‘겟모어증권’도 서울 광교에 커뮤니티 센터를 준비 중이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삼는 인터넷 기업들에게 커뮤니티 형성은 매우 중요하다. 커뮤니티는 회원 수를 늘리고 양질의 컨텐츠를 확보하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형성을 촉진하기 위해 ‘오프라인 커뮤니티센터’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 것은 SK텔레콤이 최초였다. TTL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시내 번화가에 세운 ‘TTL 존’은 TTL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TTL이 성공함으로써 016 같은 이동통신업체뿐만 아니라 인터넷 기업들도 현실 공간에 ‘TTL 존’ 같은 오프라인 커뮤니티센터를 구축하는 전략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다음이나 레떼컴은 오프라인 커뮤니티센터로 강화된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하여 자사 온라인 쇼핑몰 매출액을 늘릴 계획이다.

오프라인 커뮤니티 센터, 새 ‘수익 모델’로 등장

추계엔터테인먼트는 이들 기업보다 더 적극적인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 ‘TGI Friday’, 영화사 ‘태원엔터테인먼트’와 제휴해 인터넷 방송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테마 레스토랑을 올 9월께 서울 강남에 세우려는 계획이다. 이 레스토랑에서는 추계엔터테인먼트가 보유하고 있는 연예·오락·영화·패션 컨텐츠가 하루 종일 방영될 예정이다. 즉, 온라인 회원들을 오프라인으로 유치하는 동시에 추계엔터테인먼트를 잘 모르는 소비자들을 온라인으로 유인하겠다는 전략이다.

코엑스몰에 전용 면적 5백40평짜리 ‘메가웹스테이션’을 설립한 메가웹처럼 오프라인 커뮤니티센터 그 자체를 수익 모델로 제시하는 업체도 있다. 메가웹스테이션은, 인터넷 기업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교류 공간이다. 전문 통역요원이 대기하고 있는 ‘메가비즈사이트’는 벤처 기업과 엔젤 투자자의 장으로, 증권 전문 사이트 ‘팍스넷’이 입점한 ‘메가스톡 사이트’는 사이버 금융의 중심지로, 하루 6시간씩 게임 대회가 치러질 ‘메가벤트 사이트’는 엔터테인먼트 이벤트의 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현재 메가웹의 주수입원은 입점한 인터넷 기업들로부터 받는 임대료이다.

코리아디지틀온라인의 황왕호 이사는 메가웹과 같은 거대한 ‘오프라인 커뮤니티센터’ 설립을 기획·추진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다. SK비서실을 거쳐 골드뱅크에서 월급쟁이 생활을 끝내기까지 유통·무역·인터넷 사업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인터넷 기업들은 온라인만으로 장기적인 성장 모델을 제시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배너 광고는 이미 한계에 부딪혔고, 컨텐츠 유료화는 여전히 쉽지 않다. 전자 상거래를 한다고 해도 물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오프라인의 유통망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디지털 음원이나 온라인 게임 등 무형 상품과 전자 상거래를 통해 거래되는 유형 상품이 집적되는 오프라인 커뮤니티센터를 구상하고 있다. 입점한 인터넷 업체가 각자 장점을 살리며 영업 활동을 펼치고, 마케팅 업체가 끊임 없는 이벤트로 소비자들을 ‘중독’시킴으로써 집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백화점 규모의 오프라인 커뮤니티센터를 지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황씨의 생각이다.

인터넷 기업들의 ‘외도’는 오프라인 커뮤니티센터를 구축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도시생활정보 포털 사이트 ‘시티넷’이 설립한 ‘시티투어’는 애초 인터넷 여행사로 출발했다. 그러다가 시티넷이 서울 역삼동으로 사옥을 옮기면서 당당한 현실 세계의 여행사로 자리잡았다. 사옥 2층에 고객과 상담하며 여행 상품을 파는 사무실을 마련한 것이다. 시티넷 기획이사 김성식씨는 “이제 인터넷 기업도 오프라인 기반 없이는 살아 남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컴퓨터 화면만으로는 고객에게 신뢰와 만족감을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인터넷 카드업체 ‘디어유’ 역시 오프라인 세계에 지점을 낼 예정이다. 디어유는 지난 4월에 인수한 서울 문정동의 팬시 상점을 거점으로 삼아 올 9월부터 자사의 팬시 상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디어유 대표이사 이호남씨는 “온라인 기업이나 오프라인 기업이나 다 같은 경쟁자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궁극적인 목표는 디어유 사이트로부터 카드를 받은 사람이 디어유 숍에서 선물을 사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얼굴을 갖게 되었다”

인터넷 기업들이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는 모습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최대의 검색업체 ‘야후!’는 뉴욕 록펠러센터에 야후 인터넷 쇼핑몰을 소개하는 홍보센터를 개장했다. 그밖에도 인터넷 완구 쇼핑몰 ‘이토이즈’는 자사 브랜드의 장난감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고, 주식중개업체 ‘웹스트리트’가 작년 말부터 지점을 내기 시작했다. 야후의 사장 겸 이사 제프리 멀렛은 오프라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로 “인터넷 기업이 성공하려면, 만져서 알 수 있는 ‘실체’처럼 여겨지는 브랜드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코카콜라와 야후를 비교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코카콜라의 제품은 어느 식료품점에 가더라도 마주칠 수 있다. 보고, 만지고,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야후를 느끼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작동해 야후 사이트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웹스트리트’의 공동 최고경영자인 조셉 폭스는 베벌리힐스에 제1호 지점을 내고 나서 “우리는 더 이상 이름도 얼굴도 없는 인터넷 사이트가 아니다”라고 자랑스러워 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 기업들이 급격히 성장하자 이에 자극된 오프라인 기업들이 너도나도 온라인 진출을 꾀하던 상황을 돌아본다면, 이렇게 인터넷 기업이 거꾸로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는 상황은 예상 밖의 결과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대표적인 인터넷 기업 아마존이 적자를 내는가 하면, 채산을 맞추지 못해서 파산 신청을 하는 인터넷 업체의 소식이 잇달아 들려온다. 올해 1/4분기에 다음커뮤니케이션이나 골드뱅크 등 대표적인 인터넷 기업들이 흑자를 낸 것은 채무 면제와 주식을 매각해 얻은 결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제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인터넷 기업에 제일 먼저 던지는 질문은 회원 수나 방문자 수가 아니라 뚜렷한 ‘수익 모델’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결국 인터넷 기업들이 새롭게 내놓고 있는 대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과의 결합이다. 이런 새로운 시도가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채무 면제나 주식 처분 같은 영업 외적인 수단으로 인터넷 기업의 ‘장밋빛 미래’를 그려내기가 불가능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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