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붕괴 시나리오, 난민 대처 ‘도상 훈련’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6.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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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평화·충무 계획’ 도상 훈련/난민 문제 집중 검토
어느날 북한이 갑자기 붕괴한다면?

이런 상황이 더 이상 우리 정부에 축복이 되지 못한다는 점은 이제 분명해졌다. 정부는 이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 오히려 엄청난 부담만 안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점차 굳혀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과는 무관하게, 우리 정부는 이런 불길한 상상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져 가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정부가 이에 대비해 각종 비상계획들을 손질하는가 하면, 도상 훈련을 실시하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지고 있는 비상계획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통일·안보 관련 부처가 공동으로 만들어 놓은 ‘평화계획’이 그 하나다. 6공 때까지 ‘북한 급변 상황 (시나리오와) 대책’으로 알려졌던 이 계획은, 북한이 전쟁을 도발하거나 스스로 무너지는 상황, 또 체제를 개혁해 나가는 경우와 같은 시나리오 별로 우리 정부의 대비책을 마련해둔 방대한 계획이다. 또 하나는 국방부가 주관하는 ‘충무계획’. 이 계획은 평화계획과 비슷한 골격이나, 군사 작전 계획과 연계성을 고려해 만들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그동안 정부 관련 부처와 전문가들이 매년 북한의 동향을 감안해 비상계획 상의 각종 시나리오와 대비책을 일부 수정해 오기는 했으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대폭적인 수정 작업은 이례적인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 작업은 지난해 북한의 수해와 극심한 식량난, 김일성 사망 이후의 권력 동향 등을 반영하기 위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충무계획 보완 작업 사실에 대해서는, 정부가 이미 이를 공식화했다. 지난 12월15일 권영해 국가안전기획부장이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군의 특이 동향을 보고하면서 이 사실을 밝힌 것이다(<시사저널> 제323·324 합병호 18∼19쪽 기사 참조). 통일원이 주관하는 평화계획 수정 작업은 충무계획에 앞서 지난해 상반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작업에 참가한 일부 관리들은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3개월 가량 독일 현지 조사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해류 타고 아산만·포항으로 보트 몰릴 듯

비상계획 수정 작업은 북한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많아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경제 부처를 비롯한 소속 부처 사람들은 해당 공무원들이 해외에 파견 근무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9월 이 작업의 일부 내용이 국내 언론에 흘러나온 후, 평양방송을 통해 ‘수해를 계기로 북한에 정치적 문제가 발생할 것을 기대하며 반북(反北) 소동을 벌이고 있다’는 요지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의 담화를 발표했다.
이 작업에서 가장 논란이 일고 있는 부분은,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와 동시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북한 난민 대량 유입 사태다. 정부는 난민 유입이 한국의 정치·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폭발적인 사안이라고 본다. 지난해 6월에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위해 관련 부처 담당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도상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는 북한 사태에 대해 종합적인 점검을 했지만, 대규모 난민 발생 가능성과 그 대비책이 가장 깊이 다뤄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외무부가 북한 난민 발생에 대비한 비공개 워크숍을 개최한 것을 비롯해 한 부처가 이 문제를 연구해 온 적은 많았지만, 이 경우처럼 범정부 차원에서 대비책을 마련한 적은 드물었다고 한다.

특히 북한 난민이 해상으로 몰려들 경우의 대비책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북한 난민이 육로를 통해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로 향하는 경우와 달리, 해상 난민(boat people)은 우리 정부에 직접적인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해안과 서해안에 난민 수용소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는데, 그 후보지로는 해류의 영향 때문에 보트 피플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서해안 아산만 인근 지역(아래 상자 기사 참조)과 동해안의 포항이 꼽혔다.

한·일 양국, 해상 난민 문제 긴밀히 논의

또 육상 난민을 위해서 중·러 두 나라와 외교 채널을 구축하고, 난민 관련 국제기구인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밖에 난민의 의식주 문제와 직업 알선, 교육 문제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는 한 곳에 너무 집중해 수용할 경우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감안해, 특정 공장의 취업 난민 비율이 10%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난민 규모와 관련해서는 대략적인 추정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6월의 회의와는 별도로, 93년 7월 정부가 만든 한 보고서는 북한 인구의 11∼18%에 달하는 2백50만∼4백만명 가량이 한국으로 이주하려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예측이 나온 후 김영삼 대통령은 8·15 광복절 축사를 통해 최초로 북한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에서 해상 난민이 발생할 경우 우리와 비슷하게 골머리를 앓게 될 일본 정부가 자국에 몰려들 것으로 보고 있는 난민의 수는 4백만명. 우리 정부는 이 문제와 관련해 최근 일본 정부와의 협의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린 양국 국방장관 회의에서 이 문제가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후, 두 나라 정부는 관련 정보를 긴밀하게 교류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바야흐로 정부는 북한 붕괴라는 우리 경제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복잡하고도 미묘한 답안들을 써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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