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외국 컨설팅 사에 2100억 썼다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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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최초 공개 'IMF 이후 자문 비용 지출 내역'/
주택 은행, 4백68억 '최고'


IMF 사태 이후 국내에는 컨설팅 바람이 불었다. 특히 외환 위기를 불러온 한 주체로 지목된 금융권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미국계 회사들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에 국내 금융권에 대한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의 구체적인 용역 내용과 용역비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미국계가 싹쓸이…매킨지, 4백50억원 벌어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들이 외환 위기 이후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지불한 용역비는 모두 2천1백33억 5백만원이다. 금융기관들은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4백억원 이상을 들여 외국 회사들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외국계 컨설팅 회사는 매킨지로 23건을 컨설팅해 4백50여억원을 벌었다. 주택은행은 4백68억원 넘게 외국계 컨설팅 사에 지출해 금융기관 가운데 가장 돈을 많이 썼다.


또 외국계 컨설팅 사가 수행한 컨설팅 1백65건 중 7건을 제외한 1백58건을 미국 회사가 맡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계 회사들은 경영 전략 수립·리스크 관리 시스템 구축·관리 회계 시스템 구축·인사 관리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 자문에 응했다.


금융기관 중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가장 용역비를 많이 지출한 곳은 은행권인데, 1천7백69억7백만원을 썼다. 국세청 분석에 따르면, 1998∼2000년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의 매출액 총액은 5천2백66억원이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은 호박을 덩굴째 거두어들이듯 매출액의 33%를 은행권에서 올렸다.


공적자금이 많이 투입된 제일·한빛·서울 은행은 컨설팅 비용도 많이 썼다. 한빛은행(3백16억원) 제일은행(2백51억원) 서울은행(1백97억원) 순서였다. 그러나 이들 은행이 돈을 들인 만큼 효과를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한빛은행의 한 직원은 들인 돈에 비해 효과가 적다는 말이 금융권에 나돌고 있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주택은행처럼 '21세기를 대비한 새로운 전략 방향 설립' '신경제 경영 자문' 등 발 빠른 변신을 위해 4백68억원을 컨설팅에 투자한 은행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효과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은행마다 컨설팅을 받는 데도 특성이 있었다. 2백51억원을 들여 열여섯 차례나 컨설팅을 받은 제일은행은 그 때마다 용역 업체를 바꾸었다. 그러면서도 매킨지나 아더 앤더슨 등 널리 이름이 알려진 컨설팅 사에는 한 번도 용역을 맡기지 않았다.




금융권, 외국계 컨설팅 사에 얼마나 지출했나
(1998∼2000년) 총 2천1백33억5백만원














은행권 보험사 증권사 종금사 투신사
1천7백69억
7백만원
2백15억9천
9백만원
1백40억2천
7백만원
3억9천6백만원 3억7천6백만원



은행별 내역






























주택은행 4백68억7천7백만원 조흥은행 1백13억6천4백만원
한빛은행 3백16억5천만원 신한은행 69억5천4백만원
제일은행 2백51억1천7백만원 외환은행 51억3백만원
서울은행 1백97억7천8백만원 하나은행 39억원
국민은행 1백66억8천5백만원 부산은행 37억4천만원

자료 : 금융감독원


설문서 작성 자문료로 5천7백만원 쓰기도


반면 3백16억원을 컨설팅 용역비로 쓴 한빛은행은 50%가 넘는 1백73억원을 매킨지에 주었다. 9건 중 6건을 보스턴 컨설팅 그룹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신한은행은 '경영 개선 설문서 작성을 위한 자문'에 5천7백만원을 썼다.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는 서류 하나를 작성하는 데 자문료만 수천만 원을 쓴 것이다.


그동안 금융권에는 합병을 앞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주도권 싸움이 실제로는 컨설팅 사 간의 싸움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런 관측이 나올 만한 배경이 있었다. 국민은행은 합병과 관련한 전반적인 자문은 골드먼 삭스로부터, 합병 은행의 비전 및 전략 수립은 아더 앤더슨으로부터 조언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주택은행은 합병과 관련한 재무 자문은 메릴린치와 ING베어링스에, 합병의 경제적 효과 분석은 호주의 CVA 사에 맡겼다.


컨설팅 비용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한 '정보 유출' 논란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 경제 연구소 소장은 "컨설팅 과정에서 기업 비밀이 외국에 많이 빠져나갔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외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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