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 게이트’, 정치권 삼키나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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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 게이트’ 몸통 이중근 회장은 누구인가/정치권과 유착, 대출 특혜 의혹
총선 다음날인 4월16일 출근길,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느렸다. 발걸음이 느린 만큼 ‘모닝 멘트’는 길었다.

“두 가지만 이야기하자.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남아 있는 일반 정치자금 수사를 다시 진행한다. 가급적 신속하게 종결할 것이다. 정리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기 전에 모두 처리하겠다.”

지난해 여름 SK 비자금 수사로 시작한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연착륙에 들어갔다. 17대 국회 개원일은 5월31일이니, 검찰이 정한 연착륙 기간은 한 달 반인 셈이다. 이 기간도 이륙할 때만큼이나 요란할 것 같다. 연착륙 한복판에 ‘부영 게이트’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견 건설업체 (주)부영에 ‘게이트’라는 어마어마한 꼬리표를 붙인 당사자는 안대희 중수부장이다. 지난 4월3일 안부장은 사석에서 “부영은 게이트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닷새 뒤 (주)부영 이중근 회장은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검찰이 영장에 적시한 비자금 규모는 2백70억원대. 적지 않은 규모인데 이마저도 맛보기였다.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검찰은 무려 1천2백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추궁했다. 서울중앙지법 이혜광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영장에 적시된 2백70억원보다 비자금 규모가 훨씬 커질 여지가 있고 증거 인멸 우려도 있다”라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날 이회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부영 게이트 중심에는 구속된 이중근 회장이 있다. 입지전적 인물인 이회장은 전남 순천이 고향이다. 그는 혼자 상경해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국대에 입학했다. 등록금이 없어 대학 3학년을 중퇴하고 군에 입대했다. 제대한 뒤 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선배 사무실 한 구석을 빌려 가옥수리센터를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1976년 우진건설을 세웠다. 중동 특수 붐을 타고 해외에도 진출했지만 오일 쇼크로 부도가 났다.

고향 순천으로 내려가 절치부심하던 이회장은 1983년 부영주택흥산으로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10년 만에 서울로 입성해 1993년 (주)부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부영은 주식회사로 바뀌었지만 1인 회사나 마찬가지다.

잇단 선행으로 국민훈장 받기도

이회장은 배움에 대한 설움 때문인지, 이후 교육사업을 줄기차게 벌여왔다. 1991년 순천 부영초등학교 교사를 신축해 기증하면서, 자신의 아호를 딴 ‘우정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3월까지 중학교·고등학교 등 전국 70여 학교에 교실이나 생활관을 지어 무상 기증했다. 순천대·건국대·경희대 기숙사도 무상으로 지어 주었다.

이렇게 기증한 건물을 액수로 따지면 거의 7백억원대 수준이다. 건설업계의 관행을 깬 파격이었다. 보통 건설업계는 아파트 2천 가구 이상을 지으려면 학교를 한 개 이상 지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피하기 위해 갖은 편법을 쓴다. 하지만 이회장은 반대로 지역에서 낸 수익을 지역에 환원한다는 취지로 학교나 노인복지시설을 지어 기증 릴레이를 펼쳐 왔다. 지난해에는 베트남의 한 중학교 신축 공사비도 쾌척했다.

게다가 1989년부터 매년 소년 소녀 가장 1만2천여명에게 월 11만원씩 총 10억원 가까이 학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시민운동지원기금을 마련해 소규모 시민단체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상자 기사 참조).

이런 선행으로 그는 국민훈장 동백장(199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01년) 국무총리상(2002년)을 받았고, 경희대 광운대 인제대 순천대 등 도움을 받은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그동안 부영을 둘러싼 특혜설이 끊이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 때 괄목 성장하면서부터다. 특히 이회장이 이희호 여사가 참여한 ‘사랑의 친구들’ 후원회장을 맡으면서 특혜설이 증폭했다. 이와 관련해 이중근 회장의 한 지인은 “이회장과 이희호 여사는 종친이다. 이회장이 종친회 회장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부영 특혜설의 핵심은 국민주택기금 대출 독식이다. 1981년 설립된 국민주택기금은 자산 규모가 46조에 이르는 대형 기금이다. 건교부장관이 운용 관리하고, 국민은행(옛 주택은행)장에게 위탁해 왔다.

국민주택 기금을 대출받아 건설하는 공공임대주택사업은 자금 회전율이 낮아, 대기업 건설업체가 눈독을 들이지 않는 틈새 시장이다. 부영이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었다.

부영측은 운이 따랐다고 하지만, 국민의정부 임대주택 정책은 부영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1998년 7월 임대주택법시행령이 개정되어 임대 의무 기간이 5년에서 절반으로 준 것이나, 1999년 6월 국민주택기금 지원을 소형 18.1평뿐 아니라 중형 25.7평까지 지원하게 한 조처는 부영에게는 호재였다.

게다가 1998년부터 부영은 국민주택기금을 독식했다. 2002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장 20년 장기 저리로 지원된 대출 잔액이 2조1천억원대에 달했다. 이같은 의혹에 대해 (주)부영이나 건교부는 임대주택을 많이 건설하니까 많이 지원한다고 해명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지루한 공방이 국감 때마다 되풀이되었는데, 검찰은 국민주택기금 대출 독식설뿐 아니라 정치권 로비 여부를 캐고 있다. 아무래도 전남 순천에서 기반을 닦은 만큼 로비설의 중심에는 동교동계 실세들이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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