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던 무전기 사업, 끝내 '혼선'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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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VHF 사업 담당 업체 부도…
사업 추진 지연, 구형 장비로 전락


육군이 추진하는 차기 VHF 사업(다중 채널 무선장비 사업)을 담당해 온 군납업체 휴니드테크놀로지스가 지난 6월30일 부도 났다. 1968년 설립되어 지난해 1천4백26억원 매출(60%가 방산 분야)을 올린 휴니드테크놀로지스가 부도 난 것은 한빛은행 등에 돌아온 31억원의 어음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1973년부터 무전기와 통신 장비 등을 군에 납품해 온 이 회사는 7월5일 수원지방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 회사측은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을 50 대 50으로 본다. 군납 업체가 부도 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어서 군 안팎에서는 이 사업이 어떤 변화를 겪을지 주목하고 있다.


1999년에 시작되어 2006년까지 총 5천9백28억원을 투입할 예정인 차기 VHF 사업은 연대급 이상 부대에서 쓸 다중 채널 무전기를 확보하는 사업이다. 다중 채널 무전기는 음성·데이터 외에 화상까지 제공할 수 있고, 전송 데이터를 2회씩 송신하며, 수신 신호 2개 중 상태가 좋은 것을 수신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군은 올해까지 5백억원을 들여 이 무전기 4백여 대를 도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


1989년 육군이 필요성을 제기해 시작된 이 사업은 10년 만인 1998년 12월에 들어서야 휴니드테크놀로지스(당시 대영전자)와 기술 제휴를 한 캐나다 CMC사의 'AN/GRC-512'를 대상 장비로 선정하는 등 온갖 풍상을 겪었다. 그러나 휴니드테크놀로지스와 경쟁한 LG정밀측이 승복할 수 없다며 민원을 제기하는 바람에 1999년 4월에야 기종이 최종 확정되었고, 이를 둘러싸고 말이 많아 1999년에는 감사원으로부터 감사도 받았다.


당시 실무 최고 책임자는 문일섭 전 국방부 차관


그 뒤에도 국회 등에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민주당 정대철 의원은 "기종을 결정한 1998년 12월의 획득심의회의 회의록을 보면, 심의위원 9명 중 3명이 대리 투표를 해 5 대 4로 캐나다 장비를 선정했다"라며 대리 투표가 효력이 있느냐고 따졌다.


지난 4월18일 열린 국회 국방위에서는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이 이 사업의 타당성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의원은 "군이 도입하려는 AN/GRC-512 무전기는 사업 추진이 지연되면서 이미 구형 장비로 전락했으며, 필요한 주파수 대역이 부족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 또 기종을 선정한 과정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휴니드테크놀로지스 최영상 사장은 회사가 부도 난 뒤 차기 VHF 생산 작업을 차질 없이 진행해 달라고 직원들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도 올해 계약 물량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상 없이 납품하겠다는 의사를 최사장이 전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방부가 생산 업체를 새로 지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전례 없이 휴니드테크놀로지스측과 1년 단위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올 12월28일이면 계약이 끝난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아예 기종을 바꾸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미 구형이 된 현재 기종보다는 최신 기종을 들여오는 것이 국가 차원에서 더 낫다는 주장이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휴니드테크놀로지스측이 계약을 잘 지키는지 지켜보고 있으며, 내년에 어떻게 할지는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관련 업체인 LG정밀과 삼성전자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정치권에서는 '업체 재무 구조도 확인하지 않고 사업자를 선정했느냐'는 책임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기종 결정 당시 실무 최고 책임자는 문일섭 전 국방부 차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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