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비판하다 밉보였나
  • 프랑크푸르트·허 광 편집위원 ()
  • 승인 2003.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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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 부총리 묄러만 타살설 제기돼 뜨거운 논쟁
요즘 독일에서는 한 정치인의 의문사를 둘러싸고 연일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비운의 주인공은 유르겐 묄러만. 한때 독일 자유민주당(FDP) 당수였고, 독일 통일을 이룬 헬무트 콜 정부에서 부총리로 일하기도 한 거물 정치인이다. 그는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공수부대 출신답게 낙하산 타기를 취미로 즐겼는데, 지난 6월5일 늘 하던 대로 낙하산을 메고 경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가 숨졌다.

독일 언론은 뮐러만이 죽자 이내 ‘자살설’을 제기했다. 심리학자들을 내세워 자살한 원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정치가들은 권력의 세계에서 소외되거나 정치적 전망을 잃어버렸을 때 강한 자살 충동에 빠지기 쉬운데 묄러만이 바로 이같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묄러만이 경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 15분 전, 독일 국회는 그로부터 면책 특권을 박탈해 이같은 분석에 설득력을 더했다. 묄러만은 지난해 11월부터 선거에 불법 자금을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아 조사받아 왔는데 국회가 사고 당일 검찰 수사 결과를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독일 여론 일각에서 이런 분석에 만만치 않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당국의 조사가 미처 시작되기도 전에 언론이 자살설을 퍼뜨리는 것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며 자살설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한 증거는 없다는 반론이 나왔다. 자민당이나 묄러만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사고가 알려진 뒤 한 시간도 못 되어 이같은 내용이 담긴 반론으로 가득 찼다. 사고 현장에서 자살이 확실하다고 발표했던 경찰도 이같은 반론에 밀려 ‘자살일 수도 있다’고 한 걸음 물러났다.

자살설에는 실제로 몇 가지 허점이 있었다. 첫째, 묄러만이 6월5일 자살할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선거 자금 문제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불거진 것이고, 검찰 조사에 대해서도 묄러만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묄러만은 또 자신의 면책 특권 박탈 사실도 이미 하루 전에 알았는데, 그 때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하며 주변 사람들과 만나기로 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자살설의 또 다른 근거가 된 것은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인데, 이 또한 의문투성이였다. 어떤 이유에서건 낙하산이 떨어져 나가면 보조 낙하산이 자동으로 펼쳐진다. 만약 보조 낙하산도 작동하지 않게 되면, 지상 200m 쯤에 도달했을 때 두 번째 보조 낙하산이 펼쳐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게다가 낙하산을 펼치는 장치는 추락 속도를 자동 기록하도록 고안되어 있기 때문에 낙하산의 ‘블랙 박스’라고 부른다. 바로 이같은 각종 장치가 있기 때문에 낙하산을 버리고 자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정말 자살할 생각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낙하산을 펼치지 않는 편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목격자들은, 일단 첫 낙하산을 펼친 후에는 수동으로 조작되지 않는 이같은 이중·삼중의 안전 장치가 막상 사고 순간에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 원인을 밝히려면 보조 낙하산을 분리하는 장치와 블랙 박스를 분석해야 한다. 수사 당국은 처음 사흘 동안, 낙하산 장비를 외부에서 조작한 흔적은 없다고 말하다가, 최근에는 이 두 가지 부품을 발견해 감정 중이라고 발표했다. 당국은 감정 작업에 며칠 또는 몇 주일이 걸릴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사고 규명이 미루어지면서 묄러만의 죽음이 ‘제2의 바셸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견해가 일각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은 독일 북부의 한 주 주지사였던 우베 바셸(기독교 민주당 소속)이 1987년 10월 스위스의 한 호텔 욕조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바셸은 당시 주 선거를 겨우 몇 시간 앞두고 ‘사민당 후보의 통화를 도청했다’는 폭로 기사가 <슈피겔>에 실리는 바람에 선거에서 패하고는 곧바로 외국으로 나가던 중이었다. 당시 언론은 ‘독극물 복용에 의한 자살’이라고 그의 죽음을 보도했고, 그 후 수사 결과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항’이라는 이유로 비밀에 부쳐졌다.

그런데 전 독일 국방 차관 뷸로 변호사가 1998년에 펴낸 책 <국가라는 이름으로>에 따르면, 바셸의 죽음에는 당시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 벌어지던 비밀 무기 거래 사건이 개입되어 있었다. 당시 이라크와 전쟁 중이던 이란은 미제 팬텀 전투기 부품을 손에 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라크 전쟁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좋다는 속셈으로 이란에 부품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단지 겉으로는 거래 사실을 감추려고, 무기를 인도하는 중간 기착지를 덴마크로 골랐다. 그런데 덴마크 정보부가 국내 정세 변화를 내세워 무기 선적을 연기했다.

무기 거래를 관리하고 있던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는 그 대안으로 독일 항구 함부르크를 골랐는데, 이 과정에서 자기네 계획을 방해하는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바셸이 이를 알고 거부한 것이다. 모사드는 독일 언론 재벌에 압력을 넣어 바셸을 선거에서 떨어뜨리려는 전략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슈피겔>이 보도한 도청 사건의 ‘전사’였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당한 바셸은 이 음모를 주 의회에서 폭로할 결심을 굳히고 확실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그는 스위스의 한 호텔에서 독극물을 주입당한 채 숨진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묄러만은 자민당뿐 아니라 독일 정당들을 통틀어서 이스라엘을 정면으로 비판해온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오랫동안 ‘독일-아랍 협회’ 의장을 지냈고, 주로 중동 지역에 설비 수출을 하는 기업체를 운영한 ‘아랍통’이기도 했다. 그는 또 이라크 전쟁 반대론자로도 유명했다. 이같은 묄러만을 자민당 지도부는 ‘자살 특공대원’ ‘시한 폭탄’ ‘반 유대 인종주의자’라고 매도했다. 이스라엘의 중동 정책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묄러만은 독일 지식계 일각에서 바셸과 비유된다. 분단국 독일에서는 바셸 사건이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과연 통일된 독일에서도 그같은 일이 되풀이될지, 독일 시민들은 묄러만 의문사 수사를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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