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평화 위협하는 이스라엘 신군부
  • 뉴욕/김진화 (chinwkim@sisapress.com)
  • 승인 2003.11.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스라엘 신군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초강경 노선 고수하며 샤론 정부 압박…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에 가장 큰 걸림돌
정부가 팔레스타인인들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어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심에 불을 지르고, 결국 하마스 같은 테러 조직을 키워주고 있다. 정부가 점령 지역을 고립시키기 위해 철제 콘크리트 장벽을 쌓는 것도 반대한다”. 지난 10월 말 이스라엘 참모총장 모세 얄론은 그의 직속 상관 샤론 총리에게 정면 도전했다. 얄론 총장은 또 “(팔레스타인 온건파) 아흐무드 압바스 총리가 아라파트와의 힘겨루기에서 밀려난 것도 정부의 강변 일변도 정책 때문이다”라고 비난했다.

지난 10월 말 점령지 주둔 이스라엘군 사령관들도 회의를 열고 “통행 금지, 이스라엘 내 취업 금지, 자유 이동 제한 등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자살 폭탄을 택하거나 테러 조직으로 기울고 있다”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참모총장과 군 수뇌부의 반발은 이스라엘 정국을 강타했다. 샤론 총리는 군부가 군사 작전 실패를 정치인들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고 비난하고, 얄론이 발언을 취소하든지 참모총장 직에서 물러나라고 호통쳤다. 그러나 얄론은 꿈쩍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군부가 샤론 총리 ‘과격성’ 비난한 속뜻

군부의 반발은 샤론을 곤경에 몰아넣고, 지켜보는 이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군부는 정부보다 훨씬 강경했기 때문이다. 얄론은 자신이 참모차장이던 올해 초, 팔레스타인과의 투쟁이 이스라엘의 ‘제2의 독립 전쟁’이라고 과장했다. 지난 7월 참모총장에 오르자마자 그는 한술 더 떠 “자살 폭탄 테러분자들의 집을 모두 폭파하고, 가족들은 국외로 추방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또 같은 달 하마스 조직의 군사작전 책임자 쉐하다의 집을 미사일로 폭격하는 과정에서 이웃 어린이 10명을 포함해 무고한 인명 16명을 살해해, 국제 사회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샤론 총리의 ‘과격성’을 비난하고 나선 것은 무슨 까닭일까. 군부가 유화 정책으로 일대 방향 전환을 결심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스라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스라엘 유력지 <하레츠>의 알루프 벤 대기자는 “군부의 조직적 반발은 부쩍 늘어나는 자살 폭탄 공격을 막지 못해 위기에 몰린 샤론 총리를 압박해, 군부의 입김을 강화하려는 시도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얄론 총장이 앞으로 정치 지도자로 나서려고 국민에게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전략의 하나다”라고 분석한다. 얄론이 신군부를 등에 업고 총리 자리까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샤론 정부의 국방장관 모파즈 장군(얄론의 전임자)은 자타가 인정하는 초강경파다. 그는 대규모 군사 작전으로 하마스와 아라파트 무장 세력을 ‘끝장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런데 최근 얄론 총장은 모파즈 국방장관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얄론은 “적을 단번에 때려눕히기보다 강·온 작전을 섞어가며 소모 탈진 작전을 펴, 팔레스타인의 저항 의지를 꺾어야 한다. 그들 스스로 아라파트와 하마스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얄론의 기회주의적 ‘정치 쿠데타’ 실험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며, 군부는 내부 혼란을 거쳐 다시 강경 노선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역사상 한 번도 군이 정부보다 더 유화적인 예는 없었기 때문이다.

군부의 민간 정부 휘두르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55년 당시 총리였던 샤레트는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건국 초기 팔레스타인은 자주 테러 공격을 벌였다. 그때마다 군은 나의 정치적 해결책에 반대했다. 모세 다얀 참모총장과 아리엘 샤론 대령(현 총리)은 대량 보복을 재촉했고, 특히 샤론 대령은 탱크 부대를 이끌고 나가겠다고 압력을 가하곤 했다’. 군부 압력에 밀려 결국 샤레트는 사임했고, 1년 후 제1차 중동전쟁이 터졌다.

그후 50여 년간 이스라엘 군부의 영향력은 꾸준히 증대해 왔다. 장성들이 퇴역하면 정치권으로 직행하는 것이 정해진 순서이다. 당수가 되는 일도 흔하다. 특히 노동당에서는 시몬 페레스나·요시 베일린·슐로몬 벤야민·아브라함 부르그 같은 능력 있는 민간 정치인들이 이츠하크 라빈·예후드 바라크·벤 엘리저 같은 군 장성 출신에게 당권이나 총리 직을 빼앗겼다. 노동당에서 차기 당수로 유력한 인물은 탱크부대 사령관을 지낸 암란 미츠 장군(현 하이파시 시장)이다. 1995년 11월 극우파 동족 청년에게 암살된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비록 군 참모총장 출신이었으나 아라파트 펠레스타인해방기구(PLO) 수반과 평화 조약 체결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온건파로 세계적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그의 서거 8주년을 앞두고 이스라엘에서는 그를 어떻게 추모할 것인가를 두고 군 지도부와 진보적 시민 단체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1982년 탱크부대를 이끌고 레바논을 침공해 베이루트 공항 인근 팔레스타인 난민촌 두곳을 쑥밭으로 만들며 난민 학살극을 벌인 샤론(팔레스타인인들은 그를 ‘샤틸라 사브라 난민촌의 살인마’라고 부른다)마저 후배 장성들의 거친 반발에 막혀, 라빈 추모식을 군부대 안에서는 거행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라빈과 샤론 세대에 비해 훨씬 젊은 신군부는 라빈의 유화책이 팔레스타인 과격파들을 살아 있는 자살 폭탄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결국 라빈 추모식은 신군부가 철저히 외면하는 가운데 일부 민간인들이 주도해 거행될 것으로 보인다.

군·정부 완충역 없어 극우 시온주의 치달아

군이 왜 이토록 ‘인정 사정 볼 것 없다’ 식으로 나오는 것일까. 그동안 군 조직 구성원의 사회적 배경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20여 년 전부터 사회 상류층이 군 경력을 통한 출세를 마다하기 시작했다. 대신 보수적인 유태교 근본주의자들, 동유럽 출신 이민 계층, 중동 출신 극우 유태인, 이런 부류들이 군 지휘 계통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한때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팔레스타인 민가 공격을 거부하고, 위관급 장교들이 민간인 사살을 규탄한 예도 있었으나 이것은 극소수 예외일 뿐 이스라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군부의 상층부는 극우 보수 시온주의 경향의 강경파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부 조직의 제도적 결함이다. 이스라엘에는 미국과 같은 국가안보보좌관제가 없다. 군과 정부 사이의 정책을 조율하는 완충역이 없는 것이다. 또 국방부에는 장관을 위시해 고위직 군 출신 일색이다. 정보부도 마찬가지. 때문에 군과 정보부는 그들만의 밀폐된 공간에서 전략 전술과 정책을 논의·결정하고, 이를 정부에 들이밀기 일쑤다.

최근 이스라엘 명문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HUJ) 부설 한 연구소는 국방부 내 정책 관련 고위 직에 민간인을 좀더 많이 임명하고, 정부 각 부처에도 민간 전문 조직을 늘리라고 건의했다. 한마디로 미국처럼 군부에 대한 문민 통제를 제도화하라는 말이다.

하기야 군 장성 출신이 정치 지도자가 되는 지름길인 현 제도에서 군부가 정부에 대한 ‘고압적 태도’를 바꾸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부패와 독재의 사막’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 국가임을 입버릇처럼 자랑하며 서방의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얄론 참모총장을 앞세운 군의 시위는, 이 나라가 ‘군부 민주 국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초강경 군부가 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