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로 몰려드는 '온정의 해일'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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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구호 단체들, 남아시아 참사 지역 총집결…의료·복구 작업 구슬땀
남아시아 해안 지역 일대를 초토화한 사상 최대의 지진 해일(쓰나미) 참사가 발생한 이래 세계의 주요 강대국은 노름판 판돈 올리듯이 앞다투어 지원금을 늘리고 있다. 저마다 ‘정치적 효과’를 노린 면밀한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 진정한 인류애를 발휘하려는 구호와 원조 노력이 물결치고 있다. 의술을 가진 사람은 의술로, 기술을 가진 사람은 기술로,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은 전문 지식으로, 그도 아니면 뜨거운 마음과 몸뚱아리 하나만으로 무장한 ‘인도주의 전사’들이 재난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

국제 구호 대열의 선두에는 1859년 전쟁이 한창이던 크림 반도에서 인도주의 구호운동의 씨앗을 뿌린 국제적십자사도 있고,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서 창설된 옥스팜도 있다. 한국의 한비야씨(58~61쪽 인터뷰 기사 참조)가 단체의 일원으로 있는 월드비전도 있으며, 1971년 이래 분쟁 지역과 재난 지역을 돌며 정의와 인도주의 의술을 펼쳐온 ‘국경 없는 의사회’도 있다.

1991년 또 다른 국제 구호단체 적신월사와 결합해 국제적십자 및 적신월사 연합으로 재탄생한 국제적십자사는 남아시아 지진 해일 사태가 알려진 직후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현지의 조직망을 가동해 피해 상황 파악에 나서는 한편, 전세계 1백81개국에 퍼져 있는 사무소를 통해 재난 현장에서 일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긴급 구호품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적십자사·옥스팜·월드비전 등 ‘봉사 경쟁’

가장 큰 피해를 본 인도네시아 반다 아체 지역의 경우, 국제적십자 사무소도 파괴되어 기능이 마비되었지만 구호 노력만큼은 그치지 않았다. 자원 봉사자가 6백명이나 몰려들어, 현장에서 시체를 옮기고 생존자에게 방수포를 나눠주고 생활 필수품을 지급하는 등 구호 활동을 펼쳤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의 해상 봉쇄를 뚫고 적군이 점령하고 있는 그리스의 부녀자와 어린이를 위해 선박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운동을 벌이면서 창설된 옥스팜의 활동 방식은 좀 다르다. 재난 현장에 자원 봉사자와 구호품을 보내기는 매한가지지만, 이와 동시에 국제 여론을 움직이는 데도 적극 나섰다. 지난 1월4일, 선진 채권국에 대해 지진 해일 피해 국가의 빚을 유예해 주자고 성명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같은 주장은 1월6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구호국 정상회의에서 공식으로 받아들여졌다.

동작이 날래고 준비가 잘 되어 있기로는 1971년 프랑스 의사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국경없는의사회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단체는 18개국에 네트워크를 구축해 의사·간호사·의료 전문가 2천5백여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행정 요원만 해도 80개국 1천5백명에 이른다.

남아시아 지진 해일 사태가 터지자마자 이 단체 소속 의료진은 즉시 현지로 급파되었다. 참사 발생 이틀째에 이미 의사와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진 12명이 인도네시아 반다 아체와 함께 최대 피해 지역인 스리랑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 단체는 또한 같은 날, 전세기를 빌려 구호 물자 30t을 스리랑카 콜롬보로 보냈으며, 인도네시아에도 의료팀 8명과 의료 장비 35t을 보냈다.

한국의 한비야씨가 긴급 구호팀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월드비전도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월드비전은 재난의 규모에 따라, 긴급 구호 사업을 3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월드비전이 이번 사태에 발동한 것은 이른바 ‘카테고리3’ 단계. ‘카데고리3’(심각한 인도적 긴급 사태)은 피해 규모가 전체 인구의 50%이거나 100만명 이상이 거주지를 잃고 식량 부족을 겪을 경우 발동된다. 일단 ‘카테고리3’ 상황이 발생하면 월드비전은 ‘1년 이상 복구 작업’에 들어간다.

주판알 튀기기 바쁜 정치인들과 대조

12월26일 발생한 지진 해일은 1월6일 현재 사망자 수만 15만명이 넘는 최악의 피해를 냈지만, 이와 함께 7백만명에 이르는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더 딱한 일은 약 1백50만명으로 추산되는 재해 어린이 중 부모와 집을 잃고 고아가 되어 길거리를 헤매는 어린이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이들을 노린 국제 인신매매단의 극성이 우려되는 가운데, 국제어린이기금(유니세프)은 어린이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월1일, 스리랑카 등 피해 지역을 돌아보던 캐롤 벨라미 집행국장은 어린이 보호를 구호 활동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달라는 호소를 신년사 대신 발표했다. 아울러 국제어린이기금은 긴급 방역과 교육 시설 복구 등에 필요하다며 8천1백만 달러에 이르는 긴급 구호 기금을 요청했다.

국경과 피부색을 초월한 인도주의 전사들의 구호 노력과는 대조적으로, 사상 최악의 참사에 헌신적으로 봉사하겠다고 공언하는 각국 국가 원수들의 얼굴에서는 진정한 박애 정신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지진 해일 참사로 인도양 연안이 전쟁터로 돌변하던 바로 그 때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고 있던 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뒤늦게 새까맣게 그을린 모습으로 텔레비전에 나타나 ‘최대한의 지원’을 공언해 프랑스 국민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1월20일 취임식을 앞두고 있는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도 사태 초기에 구호 노력에 인색한 태도를 보여 손가락질을 받았다. 일본은 1월 첫째 주 국가별 지원금 규모로는 가장 많은 5억 달러를 내놓겠다며 각국의 지원금 증액 경쟁에 불을 붙여놓더니, 지난 1월5일에는 ‘구호 활동’을 내세워 자위대 8백명을 파견하겠다고 선언했다.

지진과 해일이 할퀴고 간 진흙더미에서는 인도주의라는 숭고한 연꽃이 피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각국 정상의 집무실에서는 지원 규모와 반사 이익을 놓고 주판알 튀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성금은 이곳으로

유엔세계식량계획
(www.wfp.org)
유니세프
(www.unicef.org)
적십자/적신월사연합
(www.ifrc.org)
월드비전
(www.wvi.org)
옥스팜
(www.oxfam.org)
대한적십자
(www.redcross.or.kr)
월드비전한국
(www.worldvis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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