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마
  • 임진모 (대중 음악 평론가) ()
  • 승인 200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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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애·이은미·권진원·이상은·린애 ‘디바 콘서트’
‘팝 의 디바, 셀린 디온’. 원래 오페라의 주역 여가수를 의미했던 디바는 1990년대 휘트니 휴스턴·머라이어 캐리·셀린 디온 등 인기 여가수가 잇달아 등장하면서 ‘톱 여가수’를 정의하는 어휘로 음악 팬들에게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이런 디바가 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한테도 디바는 얼마든지 있다.

디바의 전제 조건은 말할 것도 없이 가창력과 자신만의 색깔이다. 따라서 우리 여가수 중에서 노래 잘하거나 개성적인 음악 세계를 가진 가수가 있다면, 그 역시 디바가 된다. 그러나 인기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디바라는 영예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디바의 위상에 걸맞는 가창력과 독특한 음악 세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 점에서 오는 6월28일 열리는 ‘정전협정 50주년 기념 한반도 평화 기원 디바 콘서트’(서울 장충체육관)는 음악 팬들의 관심을 모으는 특별한 공연이다. 이번 공연에 한영애·이은미·권진원·이상은·린애 다섯이 디바라는 이름으로 출연하기 때문이다.

노(No!) 할 때는 노 해야 한다”라는 자세가 오늘날 그녀를 디바로 승격시킨 밑거름이다. 민중 가요 그룹 ‘노찾사’의 스타였다가 대중 가수로 발돋움한 권진원 역시 라이브의 특급이다. 가창력을 갖춘 출연자만을 고르기로 유명한 KBS <열린 음악회>의 단골 출연자라는 사실은 스케일이 크고 여유 넘치는 그녀의 ‘유유자적’한 노래 부르기를 말해주는 단편이다.

이들이 히트 차트를 주름잡는다고 말할 수 없을지라도 이들의 독자적 음악 스타일을 아끼는 팬들이 엄존한다는 점에서는 찬란하다는 수식이 결코 아깝지 않은 이름들이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아마도 관객들은 이 다섯 디바의 열창과 독특한 소리 색깔을 통해, 화려한 율동과 건조한 비주얼로 10대를 미혹하는 요즘 여가수 풍토를 ‘응징’하는 쾌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고참인 한영애는 1980년대에 텔레비전과 대립한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의 보석이다. 후배 남자 가수 강산에는 한영애 같은 여가수가 있다는 것은 우리 음악계의 축복이라고 토로한다. 1980년대의 음악 마니아들은 <여울목> <루씰> <누구 없소> <바라본다>와 같은 노래를 들으면서 한국 여가수에게서 좀처럼 목격할 수 없는 파워와 탁월한 곡 해석에 매료되었다.

한영애는 지난해에도 백설희의 1950년대 트로트 <봄날은 간다>를 리메이크해 ‘한국형 블루스’의 멋을 선사한 바 있다. 트로트의 이난영 이미자 하춘화 심수봉 주현미, 스탠더드의 패티김 윤복희 정훈희 임희숙 박경희, 포크의 양희은, 록의 김추자 펄시스터스 인순이 이선희를 우리의 디바 계보라고 한다면 한영애는 직계 소속이 없다고 할 만큼 ‘독야청청’의 영역을 구축한 귀인이다. 한영애의 무대가 마치 귀신 쫓기 의식이라면 ‘맨발의 디바’ 이은미는 그에 못지않은 폭발과 열정의 화신이다. 토네이도처럼 가공할 에너지를 뿜어대는 그녀의 ‘위풍당당’ 무대에 객석은 늘 넋을 잃는다. 한영애가 그랬듯 그룹 신촌블루스에서 노래한 바 있는 이은미는 1992년에 데뷔 앨범을 발표해, 벌써 활동한 지 10년을 넘긴 중견이 되었다.

그 동안 명성에 걸맞게 앨범이 많이 판매되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녀는 ‘라이브의 여왕’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자기 세계를 잃어가면서 방송이나 제도권 음악 흐름에 무조건 따라가선 안된다. 노(No!) 할 때는 노 해야 한다”라는 자세가 오늘날 그녀를 디바로 승격시킨 밑거름이다. 민중 가요 그룹 ‘노찾사’의 스타였다가 대중 가수로 발돋움한 권진원 역시 라이브의 특급이다. 가창력을 갖춘 출연자만을 고르기로 유명한 KBS <열린 음악회>의 단골 출연자라는 사실은 스케일이 크고 여유 넘치는 그녀의 ‘유유자적’한 노래 부르기를 말해주는 단편이다.

<살다보면> <해피 버스데이 투 유> 같은 노래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음반보다도 라이브 무대에 포커스를 두어 2000년에는 소극장 콘서트 100회 돌파라는 위업을 이루었다. 얼마 전에는 신곡 <축복>과 <나의 노래>를 수록한 베스트 앨범을 내놓아 건재를 과시했다. ‘휴머니즘’을 간직한 음악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영역 또한 각별하다.

179㎝인 꺽다리 여가수 이상은도 누구에 비견할 수 없는 소우주를 개척한 인물이다. <담다디> <사랑할 거야>로 한창 인기를 누리던 때 자질을 소진시키기만 하는 국내 음악 풍토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스타덤을 박차고 일어섰다. 대신 일본과 미국으로 날아가 거기서 직접 곡을 쓰고 편곡하는 ‘정정당당’ 아티스트의 위상을 갈고닦았다. 일본에서 발표한 뒤 우리 음반 시장에 역수입된 <공무도하가>나 <외롭고 웃긴 가게> 등은 심지어 ‘국내에 한 유파의 장르를 창출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상은은 다수 대중을 의식하지 않음으로써 도리어 건강한 소수 팬을 확보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올해에는 재충전을 위해 떠난 영국에서의 체험을 녹여낸 앨범 <신비체험>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콘서트의 디바 가운데 가장 막내인 린애는 신인이지만 성숙한 음악적 감성으로 급속히 자기 자리를 꿰어찬 인물이다. 일본 노래를 리메이크한 절절한 곡 <이별후애(愛)>로 신고식을 성공리에 마친 뒤 최근 내놓은 그녀의 두 번째 앨범 <22 솔 섬>은 그녀가 추구하는 솔(soul) 음악에 인접 음악들을 잘 섞어내 서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제목의 22는 그녀의 나이를 가리킨다. 언론에서는 그녀를 두고 벌써 ‘젊은 디바’라고 치켜세운다. 현재 대학생으로 미스 월드유니버시티에서 포토제닉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미모인 것도 강점이다. ‘20대적이고 신세대적인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까.

이번 공연은 내로라 하는 다섯 디바의 옴니버스 콘서트라는 매력을 내세우고 있다. 아울러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20년 세월 우리의 여가수 노래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한눈에 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참여한 다섯 가수의 노래에는 각 시대와 코드를 맞춘 노래 문화의 흔적이 투영된다. 음악을 통한 시대 체험이다. 또한 그들이 전하는 음악은 각자 스타일이 블루스든 재즈든 포크든 발라드든 장르를 불문하고 어디까지나 ‘한국형 음악’으로 귀속된다. 디바의 기본은 외국 음악 답습이 아니라 우리 숨결을 불어넣는 창조적 소화라는 점을 말해줄 것이다. 여름의 길목에서 놓칠 수 없는 음악의 향기와 공연 열기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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