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나무들이 다 어 디로 갔나
  • 안철흥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3.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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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산림포럼 등 ‘북한 숲 살리기’ 머리 맞대…“복구 비 엄청나 외부 지원 필수”
동북아산림포럼의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박동균 박사는 설명을 하다 말고 캐비닛에서 두툼한 사진첩을 꺼내들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사진첩에는 꼭대기 근처까지 밭으로 가득 찬 산, 풀 때문에 푸르게 보이지만 실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산, 토사 유출로 누렇게 파헤쳐진 산 등 갖가지 형태의 ‘민둥산’이 가득했다. 회원들이 몇 차례 북한을 방문해 찍어온 자료 사진이었다.

박동균 박사에 따르면, 북한의 황폐한 산림 면적은 전체 9백16만ha 가운데 18%인 1백63만ha에 달한다. 2000년 강원도에 난 산불로 소실된 면적의 70배, 서울시 전체 면적의 25배에 해당하는 넓이다. 특히 이 중 45만ha는 토양 유실이 극심해 홍수나 산사태 같은 자연 재해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급히 복구해야 한다고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유엔개발계획(UNDP)은 밝히고 있다(99쪽 표 참조).

북한의 산림을 훼손한 주범은 ‘가난’이다. 식량난을 해결하고자 계단식 밭이나 비탈밭 등으로 개간된 산림만 60만ha에 달한다. 또 에너지가 부족해 나무를 연료로 쓰는 바람에 농촌 인근 숲이 황폐해졌다. 유엔개발계획은 ‘취사용이나 땔감으로 나무가 벌채되면서 함경도 일대 동해안 지역은 해안으로부터 10km 정도까지 산림이 완전히 황폐화했다’는 보고서를 냈다.

얼마 전까지 북한이 원목 수출국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은 1980년까지만 해도 내수용으로만 벌채를 허용했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그 해결책의 하나로 원목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1990년 첫해에 1만4천㎥이던 원목 수출량은 6년 만인 1996년에는 40만5천㎥로 무려 28배나 증가했다.

여기에다 1995~1996년 연이어 내린 폭우가 사태를 악화시켰다. 완충 역할을 해야 할 숲이 없어지는 바람에 집중 호우가 내릴 때마다 홍수→토사 유출→경작지 유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연이은 홍수와 가뭄은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숲을 살리는 계기로 작용했다. 심각한 실태가 외부에 알려졌고, 자력 복구를 포기한 북한이 국제 사회에 공식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유엔개발계획 등 국제기구들은 이때부터 식량 원조와 함께 산림 복구 사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이때부터 경실련이나 ‘생명의 숲 살리기 국민운동’ 등 시민단체에 참여하고 있던 학자·시민운동가 등을 중심으로 북한 숲 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1998년 말 국내의 산림학자들을 중심으로 출범한 동북아산림포럼은 북한 몽골 중국 등지의 사막화 방지와 산림 복구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이다. 북한에서는 유엔개발계획의 지원을 받아 양묘장 복구와 산림 전문가 교육 사업을 맡아 하고 있다. 그동안 자강도 희천군과 강원도 통천군의 양묘장 두 곳을 복구했고, 트럭과 나무 종자 등을 지원했다. 복구된 양묘장에서는 현재까지 묘목이 1억5천만 그루 생산되었다. 1999년 초에는 북한 숲 살리기를 위한 순수 시민모임인 ‘평화의 숲’도 발족했다. 평화의숲은 1999년 소나무 종자와 묘목 1억원어치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5천만∼1억원 안팎의 종자와 묘목, 임업 물자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전영우 교수(국민대·산림자원학과)는 “한국이 20세기에 녹화 사업을 추진한 나라 중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식 절대 권력이 있었고, 국민들을 값싸게 취로 사업에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북한이 절대 권력이 유지되고 있는 데다 가난하다는 점에서 남한의 1970년대와 비슷하다면서, 북한도 지금 녹화 사업을 시작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도 절박한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다. 북한은 최근 세계 여러 나라와 산림 기술 교류와 협력 증진을 하도록 명문화한 산림법 시행 규정을 채택하고, 적극적으로 산림 복구에 나설 태세를 갖추었다. 특히 북한은 남한의 녹화 사업 성공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북한의 황폐화한 산림 지역 1백63만ha 가운데 1백53만ha는 연료림(40만ha)과 경제림(1백13만ha) 조성이 필요하고, 10만ha 정도는 사방 사업이 필요한 지역이다. 이들 지역을 우선 복구하는 데만도 17년 이상이 걸리며 13조원 정도가 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문제는 북한 당국은 돈이 없어 홀로 산림 복구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것. 그런데도 숲 살리기 사업이 식량이나 의료품 지원처럼 즉각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어서, 아직 우리 정부나 국민의 관심은 적은 편이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북한의 숲을 살리는 것은 민족의 이해를 떠나 인류의 기본 양식에 비추어도 시급한 일이다”라며 정부 차원의 지원 대책 마련과 국민들의 도움을 호소했다(100쪽 인터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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