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낯설지 않은 '화가 조영남'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8.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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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영남, 11회 개인전… 화투·바둑알 등 친숙한 재료로 ‘대중 미술’ 표방
조영남이라는 이름 앞에 붙는 ‘화가’라는 직함은 어딘지 낯설다. 대중에게 노래 잘하는 가수로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조영남씨는 그 낯설음을 일거에 지워 버리는 대규모 개인전(3월28일∼4월16일·갤러리상·02-730-0030)을 열었다.

그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던 사람들도 전시장을 들어서면 먼저 두 가지 점에서 놀란다. 2백평 공간을 빼곡히 채운 1백50여 점이라는 작품 수도 그러하려니와, 이 전시가 조씨가 여는 열한 번째 개인전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조영남과 팝아트展>은 조씨가 본격적으로 붓을 잡았던 60년대 말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30년에 걸친 ‘작가’ 이력을 펼쳐 보인다. 다양한 작품들은 ‘가수 조영남’이 미술을 여기(餘技)로 삼아 오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고향 집과 도시의 달동네 같은 풍경을 거칠게 묘사하면서도 질박함과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초기 회화에서 시작해 조씨의 작품은 폭넓게 변화해 왔다.

7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그가 캔버스에 받아들인 재료는 화툿장이다. 사람들이 농담 삼아 ‘동양화’라고 부르는 화투에서 그는 독특한 조형미를 발견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화투를 철학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아침에 그날의 재수를 점치면서 화투 한 장을 잘 넘기면 그날 하루를 편안하게 잘 지내는 수도 있다.” 조영남 미술의 핵심은 이것이다. 조씨가 팝 아트, 곧 대중 미술을 표방하는 이유는 우선 ‘친숙한 재료와 소재를 통해 대중이 미술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도록’하기 위해서이다.

흑싸리에서 피카소까지… 주제·이야기 다양

한국인들이 애용하는 놀잇감을 활용해 그림에 대한 거부감을 없앤 다음, 그는 화면에서 갖가지 치기 어린 장난을 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화투의 비(12)가 마치 빗물처럼 날카롭게 쪼개져 화면을 가득 채우고 맨 아래에 작은 우산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영광>이라는 작품은 그들에게 주는 선물인 ‘오광’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화투 그림에는 흑싸리(4)가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데, 그 안에는 4자가 의미하는 ‘죽음’과 ‘내가 흑싸리 껍데기냐’라는 일상 속의 농담이 중첩해 있다. 화투라는 소재를 써서 그가 벌이는 게임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작품에 쉽게 접근하게 하고 웃음짓게 만든다.

최근 들어 조씨의 관심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으로 옮겨가 있다. 찢어진 대바구니가 지붕으로 묘사된 심청이네 집의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묘사하는가 하면, 역시 대바구니로 만든 <노아의 방주>에는 빈자(貧者)를 상징하는 찢어진 천들이 배 위에 올라가 있다. “신학 대학에 다닐 때부터 매료된 ‘가난에 대한 예찬’을 표현한 것이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조씨 작품의 큰 줄기는 작품에 잇달아 등장하는 화투·바둑알·대바구니 같은 재료를 통해 전개되지만, 그 사이 사이를 무수한 잔가지가 가로지른다. 국기(國旗)에 대해 퍼붓는 신랄한 야유, 그가 그토록 닮고 싶어하는 피카소와 벌이는 바둑 게임 등 그의 전시장은 다양한 주제와 이야기 들로 넘쳐흐른다. 다양함이 지나쳐 때로는 혼란스럽게 보이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대중 가수인 조씨가 표방하는‘대중 미술’ 전시회는 평일에는 천명, 주말에는 3천명에 가까운 대중을 끌어들임으로써 외견상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가 가장 큰 수확으로 꼽는 것은, 오랜 미술 작업에도 불구하고 그를 경원했던 미술계 관계자들이 전시장에 찾아와 그의 작품을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유명 가수라는 점은 그의 작품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한동안 화가 조영남에게 멍에처럼 따라다녔다. 그는 그것을 ‘숙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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