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토종 애니메이션’ 비상 날갯짓
  • 成宇濟 기자 ()
  • 승인 1996.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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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용 장편 시대 개막, 전문 학과 무더기 개설·프로덕션 붐까지…전문 인력 부족이 숙제
한국 애니메이션에 닥친 기회인가, 위기인가.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 세 편(<헝그리 베스트 5> <홍길동> <아마게돈>)이나 개봉되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3차원 기법을 도입한 미국 월트디즈니사의 <토이 스토리>가 여기에 가세해 이번 겨울 극장가는 애니메이션의 싸움터가 되고 있다 (97쪽 기사 참조).

대작 애니메이션 세 편이 동시에 제작·개봉된 일도 국내에서 처음이려니와, 제작사들은 저마다 20억~30억원씩 제작비를 들였노라고 자랑한다. 실사 영화 한 편의 제작비가 평균 10억원인 데 비하면, 2~3배를 쏟아부은 셈이다.

96년 들어 한국 애니메이션은 전기를 맞았음에 틀림없다. 문화체육부는 95년을 ‘만화 진흥의 해’로 정하고 ‘제1회 서울 국제 만화 페스티벌’을 개최하면서 만화, 특히 애니메이션 부문에 각별히 신경을 기울였다. 여기에 힘입어 한국 애니메이션은 문화산업 가운데서도 가장 촉망되는 분야로 떠올랐다.

애니메이션이 지닌 다양한 고부가가치가 새삼 강조되면서 눈에 띄게 변한 곳은 대학이다. 만화예술과(혹은 영상만화과)를 설치해 올 3월 신입생을 선발하는 세종대·상명대·순천향대 등을 포함해, 97년 3월까지 모두 14개 대학·전문대학에 만화 관련 학과(90년 3월 처음 생긴 공주전문대 만화예술과를 제외하면 13개)가 생겨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환경 변화는 <헝그리 베스트 5>를 제작한 영프로덕션과 <홍길동> 제작사인 돌꽃컴퍼니, <아마게돈>을 만든 아마게돈제작위원회, 만화가 김수정씨의 둘리나라, 박봉성씨의 박봉성프로덕션 등 제작사 설립 붐을 낳았다.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의 종래 방식이 미국과 일본의 하청 제작을 하는 단순 작업이었다면, 신생 제작사들은 저마다 대작을 제작하고 캐릭터·음반 등 부대 사업에 신경을 쏟을 뿐만 아니라 해외 유통망까지 염두에 두는 ‘정상적인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대기업·CATV도 “해외 시장 겨냥” 진출

최근 미국·일본의 하청 주문도 크게 늘어 국내 제작물에 할애할 시간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헝그리 베스트 5>와 <홍길동>을 일본에서 제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국내에서 밑그림을 그릴 제작업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하청 업체들은 싱가포르·베트남·중국에 재하청을 주면서까지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나, 미국·일본의 주문에 따르기도 벅차리만큼 호황을 누린다.

애니메이션계에서 96년을 ‘한국 애니메이션 부흥의 원년’이라고 보는 까닭은 비단 이와 같은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96년에는 큰 자본을 무기로 앞세운 ‘대기업 군단’이 애니메이션업계에 진출하는 것이다. 이미 스티븐 스필버그·제프리 카젠버그의 드림웍스 SKG와 손잡은 제일제당의 제이컴이 극장용과 텔레비전 시리즈물을 기획하는 단계에 착수했고, (주)쌍용·쌍용정보통신이 컨소시엄의 리더로 있는 ‘씨네드림’이 지난해 9월 출범해 <마젠티움>(가제) 제작에 들어갔다. 96년 연말 개봉을 목표로 제작되는 <마젠티움>은 기존 셀룰로이드판에는 인물을 그리고, 그 배경은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하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했다.

삼성은 삼성영상사업단이 애니메이션 기획에 착수했고, 현대도 계열사인 금강기획에 지난해 11월 영상사업기획팀을 발족시켜 언제든 애니메이션 제작에 착수할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12월1일부터 케이블 TV의 만화 채널 `‘투니버스’를 통해 하루 13시간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기 시작한 동양그룹의 오리온카툰네트워크도 미국 제작사와 공동 제작을 계획하는 등 방송과 제작 부문에 동시에 뛰어들었다.

대기업들의 공통점은 극장을 세워 국내 배급을 본격화하고, 외국 제작사들과 공동 제작하면서 제작 노하우는 물론 해외 배급망까지 이용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투니버스의 김성수 편성제작부장은 “국내에서 제작하든, 합작을 하든 무조건 해외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세계 소요량의 60%가 넘는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재패니메이션’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도 외형적으로는 ‘코래니메이션’이라는 소리를 들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대기업들의 갑작스러운 투자 의욕을 걱정스럽게 보는 눈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12월18일 서울 흥사단에서 크리스챤아카데미가 주최한 ‘코래니메이션 만들기’ 심포지엄도 최근 보이는 ‘거품 경제에 기반을 둔 한국 애니메이션의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을 진단하기 위한 것이다. 이 심포지엄에 참여한 만화 이론가 한창완씨(서강대 대학원 박사 과정)는 “투자 비용을 회수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투자했다가 한번 실패했다고 물러난다면 한국 애니메이션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애니메이션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제작 인력 부족이다. 아무리 큰 자본을 투입한다 하더라도 창의력을 지닌 제작 인력을 하루 아침에 키울 수도, 외국에서 손쉽게 데려올 수도 없는 근본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96년 들어 코래니메이션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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