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무사〉흥행 이끄는 무명의 두 무사/박정학·위롱광
  • 고재열 기자 (scoop@e-sisa.co.kr)
  • 승인 2001.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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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남·람불화 역의 박정학·위롱광/
'역전의 용사' 연기 진면목 보여
말다섯 마리가 눈앞으로 뛰어오고 있다. 뒤돌아 도망가면 바로 깔려 죽을 수도 있다. 위기의 순간, 배우는 스태프에게 살려 달라고 말하는 대신 극중 대사를 외쳤다. "말을 먼저 공격하라." 그는 힘차게 ‘일도 장검'을 휘둘렀다. 바로 앞의 말이 칼에 맞아 쓰러지고, 다른 말들은 모두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진짜 무사 : 몽골 장군 람불화 역을 맡은 위롱광(맨 왼쪽)과 용호군 별장 가남 역을 맡은 박정학은 좋은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자칫 대형 사고가 될 뻔한 상황을 명장면으로 바꾼 배우의 이름은 박정학(37). 그가 맡은 역은 용호군 별장 가남이다. 피할 곳도 없고, 피해 보았자 다시 맞서야 하고,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뒤로 물러설 수조차 없는 상황. 영화 속 무사들과 똑같은 처지에 내몰린 그는 무사처럼 의연하게 대처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고려 무사들을 지옥까지 쫓아갈 듯한 기세로 뒤쫓는 몽골 장군 람불화. 그가 마지막 결전을 치르기 위해 힘차게 말을 달리는 장면은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었다. 이유는 너무 멋이 있어서. 조연인 그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을 경계한 김성수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 장면을 짧게 편집했다.


조연의 명연기, 너무 멋있어서 삭제


하지만 람불화는 영화가 개봉되자 가남과 함께 〈무사〉의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네티즌들도 〈무사〉의 진짜 무사로 이 둘을 꼽았다.


감독은 명예와 충성심을 동일시하고 자신의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자신이 생각한 무사의 모습에 가깝다고 말한다. 오랜 세월 전장을 누빈 역전의 용사 가남과 람불화는 전쟁의 허망함과 부하를 잃은 상실감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전장을 떠나지 않는다. 주군의 아집과 독선을 쫓아 사지로 뛰어든 가남과, 복수에 눈 먼 주군을 위해 적진 깊숙이 들어간 람불화는 모두 전장에서 숨을 거둔다.


감독은 영화의 최고 장면으로 가남이 최 정을 구하러 토성 밖으로 뛰어나가는 장면을 꼽는다. 그는 무사로서 가장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 가남을 위해 클라이맥스 음악(〈가남의 출성〉)을 헌사했다. 그리고 가남과 람불화가 서로의 칼에 죽게 함으로써 진정한 무사에 대해 예를 갖추었다.


이 두 무사가 보여준 ‘무사혼'이 위기에 처한 영화까지 살렸다. 영웅적인 주인공이 없는 〈무사〉에서 시종일관 무사다움을 유지한 두 배우가 관객의 시선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개봉 직후 뉴욕에서 여객기 테러가 일어나면서 〈무사〉의 관객은 급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화에 대한 악평까지 쏟아지면서 〈무사〉는 최다 개봉관 상영이라는 좋은 조건에서 출발하고도 흥행이 부진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조용히 〈무사〉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기대보다 못 만들었다'는 평단의 평을 네티즌들이 ‘생각보다 재미있다'로 뒤집고 있다.


이 둘은 바로 네티즌들의 입소문을 이끌고 있는 배우이다. 제작사인 (주)사이더스는 이들의 인기를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람불화 역을 맡은 중국인 배우 위롱광(43)을 초청해 가남과 함께 중간 흥행 바람몰이의 선봉을 맡겼다.


배우에게 주군은 감독이다. 손색 없는 연기로 ‘무사 정신에 대한 향수가 현대인에게도 있다'는 감독의 생각을 증명한 이들에게도 좋은 일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에 팬클럽 사이트가 생기는 등 하루가 다르게 인기가 높아지면서 코미디 전문 연극 배우였던 박정학씨는 이제 영화 배우로서 입지를 굳혔다. 〈진용〉 〈철마류〉 〈동방불패2〉 〈풍운〉에 출연하며 여러 번 한국 관객과 만났지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위롱광씨는 이번 영화로 확실하게 얼굴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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