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만 몰리면 성공인가
  • 정준모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 승인 200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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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기획전 ‘봇물’…인파에 떠밀려 작품 감상 제대로 못해



다시 학교 운동장이 아이들 떠드는 소리로 가득하다. 방학을 마치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선생님을 다시 만난 아이들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하다. 이제 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이들이 조잘대는 소리에서 읽어본다.
지난 겨울방학 동안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어떤 기억과 추억을, 살아 있는 경험을 하고 왔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대형 전시들을 되돌아보았다. 지난 겨울에도 여러 대형 기획전이 열렸고, 우리가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중요한 미술 작품들이 우리 눈을 즐겁게 했다.


근대 조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귀스트 로댕(<위대한 손>, 2월26일까지 예술의전당)이 우리 곁을 찾았고, 바르비종파의 거장이자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화가 중 한 사람인 장 프랑수아 밀레(<밀레의 여정>, 3월30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가 봄까지 우리와 ‘여정’을 함께한다. 이밖에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팝아트>전이라든가 <추상이란 무엇인가> <조각이란 무엇인가> 같은 기획전이 열렸고, 일부 대형 화랑도 아이들이 미술을 친근하게 접하도록 한다는 취지로 <프린스, 프린세스>(갤러리 현대) <맛있는 미술관>(인사아트센터) 전시를 열어 학부모와 아이들의 발길을 끌었다.
이러한 전시들은 비단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잘살아 보자’는 구호 속에서 미술관 구경 한번 제대로 못했던 부모 세대에게도 더할 수 없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형 전시들이 유난히 방학 기간에 열리는 까닭을 조금만 되짚어보면 입맛이 씁쓸하다. 대형 전시를 하려면 미술품 운반과 경비, 대여료, 보험료 등을 포함해 최소한 5억∼10억 원이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우리 나라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운송 기간이 길고 안전 문제도 있어, 이러한 전시를 유치한다는 것 자체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을 많이 확보해 최소한의 경비는 충당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시장은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루며, 먼지와 소음 속에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채 출구를 향해 밀려가는 일이 발생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대형 전시회 개최 비용 최소 5억~10억원


귀한 전시일수록 전시된 작품은 제작 연도에 상관없이 이미 문화재에 준하는 문화적 재화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전시장 조건은 작품 보존에도 치명적이다. 이런 환경에서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일 수 있다. 훼손 등에 대한 최소한의 방비책이나 과학적인 검토 없이 연일 관객을 맞는 작품들을 보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이나 전문가들은 아연 실색할 지경이다.


문화적 재화는 어디까지나 문화적 재화로서 다루어져야 한다. 문화적 재화가 그 자체로 상업적 재화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요즘 무소불위로 쓰이는 ‘문화산업’이라는 말은 실은 문화적 재화의 무형적 가치를 바탕으로 유형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 말이 문화적 재화가 곧바로 상업적 이윤을 낳는다는 것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최근의 대형 전시를 보면서 마치 대형 뮤지컬이나 블록버스터 영화를 수입해 한몫 보려는 것에서처럼 상업성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대형 전시회가 갖는 긍정적인 여러 측면에도 불구하고 난감함을 느낄 때가 많다.


문화적 인프라 부족하고 운영도 초보 수준


역사적으로 미술품은 ‘숭배 가치’, 즉 ‘성물 가치’에서 ‘미술 가치’로 점차 변화해 왔고,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일반과 공유하고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점이 무시되고 단지 ‘보여지는 귀한 물건’ 정도로만 인식된다면 이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에게는 종교와 예술처럼 이성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이를 계량화하려 들거나 경제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그 근거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국·공립 미술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주요 작가나 사조 중심의 대형 전시를 개최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들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인구가 4천만명을 웃돌고 국제적인 물동량이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경제 규모에도 불구하고 국립 미술관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도 과천 산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어 편하게 접근할 수 없다. 또한 대부분의 지방 시립 미술관들은 ‘미술관’이라기보다는 ‘전시관’에 가까운 형태로 형식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문화적 인프라는 하루빨리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자동차는 있지만 기름과 운전기사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미술관 개수가 몇 개나 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운영되는가, 어떤 시설을 갖추고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또한 사설 미술관에도 세제 혜택을 주어, 기업들이 국민을 상대로 기업의 이윤을 나눌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이런 것은 국민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극대화하고 안목 있는 고급 고객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기업에게도 궁극적으로는 득이 되는 일이다. 한번 더 생각하면 결국은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아방가르드 미술의 사회적 발언


<야요이 쿠사마전> 2월15일~5월11일, 아트선재센터(02-733-8945)

현대 아방가르드 미술의 거장 야요이 쿠사마의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 그는 회화 조각 퍼포먼스 환경설치 작품 등을 통해 성 해방과 반전운동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루어왔다. 이번 전시에는 물방울·그물 등 그의 대표적 모티브를 응용한 최신 설치 작품 10여 점이 선보인다.




사진으로 만나는 들꽃 세상


<한국야생화연구회 특별사진전> 2월18일까지, 갤러리 라메르(02-730-5454)

15년 이상 한국 야생화를 찍어온 사진작가 김태정 박사의 회갑을 기념해 제자들이 마련한 야생화 사진전. 강은희 구본순 김 민 김은주 김임수 김정숙 김해동 등 27명의 야생화 사진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자화상, 예술가의 화두

<아이.유.어스.i.you.us 전> 2월13일~3월30일, 성곡미술관 본관 1,2층(02-737-7650)

고흐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이 자화상을 그린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근대 이후 미술의 최대 화두는 ‘자아’다. 사진·회화·설치 등 다양한 양식으로 표현되는 이번 전시의 주제도 마찬가지다. 권여현 고정민 김정욱 김진정 김차섭 김홍주 박형진 서용선 송하나 이영순 윤유진 정규리 홍성철 황규태 총 14명이 참여했다.




사회주의 중국의 목판화 개관


<중국현대목판화 : 혁명에서 개방까지, 1945∼1998> 2월19일~5월5일, 국립현대미술관(02-2188-6000)

사회주의 혁명 시기부터 개혁 개방 정책의 시대를 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작된 현대 중국의 판화 작품 1백20여 점을 모았다. 이들 다양한 작품을 통해 혁명 이후 중국 현대 목판화의 변천 과정과 양식의 특징들을 볼 수 있다.




회화와 설치 작품이 만나면


<움직이는 정물> 3월2일까지, 두아트 갤러리(02-737-2505)

정물은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뜻한다. 정물화는 그 물체를 그린 것인데, 이 전시는 정물화의 상식을 뒤집는다. 정광호 김동유 배준성 송영화 한수정 황혜선 등이 회화와 설치 작품이 결합한 새로운 정물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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