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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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1.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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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김성수

주연/정우성·안성기·주진모·장쯔이

제작사/사이더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첩자 혐의를 받고 귀양길에 오르게 된 고려의 무사들. 귀양지로 향하다가 원나라 기병의 습격으로 명의 군사는 몰살당하고, 그들만 사막에 고립된다. 사신단을 이끄는 용호군 장수 최 정은 고려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천신만고 끝에 사막의 객잔에 도착한 고려인들은 명나라 부용공주를 납치해 행군하던 원나라 기병과 마주친다. 최 정은 부용에게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다. '救'라는 글씨가 쓰인 부용의 혈서를 주운 그는 부용을 구출해 고려로 돌아가는 배를 얻어내겠다고 말한다. 부관 가 남과 하급 무사 진 립은 무모하다며 이를 반대한다. 그러나 결국 구출 작전은 시작되고 부용은 구출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려 무사들이 많이 희생된다.


최 정은 부용을 데리고 황하에 다다른다. 그러나 나루터는 원나라 기병에 의해 불타버리고,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족 피난민뿐이다. 자신의 백성을 저버릴 수 없었던 부용은 자신과 한족을 명군이 있는 해안 토성까지 데려다주면 고려로 가는 배를 내주겠다고 제안한다.


천신만고 끝에 토성에 도착하지만 성은 이미 폐허로 변해 있고, 기대했던 명군도 없다. 부용을 쫓는 원나라 기병은 어느새 성 밖까지 추격해 오고, 고려 무사들의 불안은 커져만 간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고려로 돌아갈 수 있을까? (9월7일 개봉)


김영진이 본〈무사〉★ 5개 중 2½개

노림수 너무 많아 초점 '흔들흔들'




〈무사〉는 이야기의 규모와 주제와 액션 스타일 모두 주목될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 고려 말 사신단을 호위하고 명나라에 갔다 돌아오지 못한 호위 무사 일행의 종말을 담아낸 상상력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특이한 그림을 펼쳐 놓는다. 서부 영화의 이야기 구조와 영웅주의에 고려 말의 시대적 배경을 깔아 놓고 러브 스토리를 가미한 대하 서사극이지만, 등장 인물들에게 고루 화면을 배분한 것이 거의 집단 서사극에 가깝다. 혼란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에 딱 한 가지 결점이 있다면 관객의 시선을 잡아챌 초점이 약하다는 것이다.


고려에서 파견된 무사 일행은 당시 고려 사회를 그대로 대변하는 축소판이다. 용호군 장수인 최 정은 봉건 왕조의 장수로서 구시대의 윤리를 명예롭게 여기는 인물이며, 그에 반해 사신의 호위 노비로 따라간 창술의 명인 여솔은 구시대의 신분 질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새로운 사회 세력의 대변자다. 활의 명인이며 하급 장수인 진 립은 두 사람이 갈등하고 대립할 때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영화의 관찰자다. 지배층인 귀족과 무인이 유림의 도전을 받고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끊이지 않았던 고려 말의 혼란스런 신분 질서가 〈무사〉의 인물 배치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것이다.


신분이 다른 등장 인물을 묶어주는 것은 바로 무사의 윤리와 명예다. 최 정은 봉건 왕조의 충복다운 무사의 명예를, 노비 출신 여솔은 자유인으로서 무사의 명예를, 진 립은 인간적인 신의를 지킬 수 있는 무사의 명예를 고집한다. 명나라 부용 공주를 납치했다가 고려 무사 일행이 부용 공주를 구해내자 이들과 전쟁을 치르는 원나라 장수 람불화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미 원나라가 대륙 회복을 이룰 꿈은 사라졌다는 것을 안다. 다만 무사로서의 명예가 그를 전쟁터에 서게 하는 것이다. 〈무사〉의 모든 등장 인물에게 스며 있는 것은 상실감이며, 누구도 의탁할 만한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무사〉의 드라마는 산만하게 뻗어간다. 캐릭터의 욕망을 따라 진행되는 플롯도 아니고, 플롯의 동선에 따라 캐릭터를 배치한 것도 아니다. 모든 등장 인물에 고루 시선을 주려 노력하면서 드라마가 지체되는 사이에, 피가 튀고 목과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액션 장면 설계는 공간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으면서도 드라마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한다. 〈무사〉는 장점이 많은 영화지만 그만큼 단점도 많다.


심영섭이 본〈무사〉★ 5개 중 3개

화려한 액션 초라한 스토리


〈무사〉는 이역 만리 사막에서 자신의 목숨을 촌각의 허공에 매단 채, 사멸해 가는 대의명분에 온몸을 산화한 남자들의 이야기이다. 원나라와 명나라, 유교와 불교, 주군과 하인, 이 모든 사회적 경계가 뒤바뀌는 격변기에 그들은 극한 상황에서 불쑥 다가온 자신들의 한계, 인간으로서 지닌 심리의 밑바닥과 맞닥뜨린다. 고려와 원나라 모두 망해 가고 있고, 그들은 자기들의 싸움이 부질없고 허망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어떤 '가치'를 위해 지푸라기같이 목숨을 버린다. 그것은 사내들의 죽음이고 사내들의 세계이며 사내들의 판타지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르겠다. 이것이 무협 영화인가? 혹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식의 휴먼 드라마인가? 애초에는 여름을 겨냥했던 블록버스터인가? 혹은 〈와일드번치〉 류의 지독한 수정주의 액션극인가? 부용 공주와 세 '또라이'들의 삼각관계 멜로물인가? 아주 이상하게도 〈무사〉에는 이 모든 요소가 다 들어 있으면서도 어떤 불충분의 교집합 속에서 장르적 야심과 드라마의 내공이 휘발되고 있었다.


누구나 인정하듯 〈무사〉에서 단연 시선을 잡아채는 것은 슬로 모션과 핸드헬드 카메라 속에 담긴 혈기 넘치는 액션이다. 창질 한번으로 핏줄기가 허공을 가르고, 살기 넘치는 주인공들의 눈빛과 몸짓은 활이 되고 화살이 된다. 마치 현미경으로 싸움터를 들여다보는 듯한 〈무사〉의 처절한 액션 신들은 김성수 감독의 손끝에서 공작의 깃털처럼 화려하고 매끄럽게 다듬어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완급과 고저의 혈맥이 없었다. 관객들은 늘어지고 사막은 배경으로 전락한다. 장쯔이가 맡은 명나라 공주야 원래 사내들의 '이너 서클'에 균열을 가하는 하나의 기표에 불과하더라도, 의연한 외양에 감추어진 내면을 보여 주어야 하는 주진모의 연기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무사〉는 카메라가 발산하는 비감함과 주인공들이 발산하는 에너지의 불균형, 고전적인 알맹이와 감각적인 포장 사이에서 비틀거린다.


결국 반복되는 핏물투성이 액션 신과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자 하는 집요한 남성 판타지의 끝에 이르게 되면, 감독을 위시한 모든 '무사'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안성기의 활솜씨 같은 '거리감'이 아니었나 싶게 된다.


말할 것도 없이 〈무사〉는 올해의 대작이다. 스태프와 감독 모두 이국 만리에서 무척이나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고생은 한국 역사상 최고 최상의 측면 지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해볼 만한 승부였다. 〈무사〉는 신화를 원했고, 우리는 기적을 원했다. 〈무사〉는 스태프의 열정과 기술적 혜택이 영화의 윤을 어디까지 내줄 수 있는지 증명했지만, 여전히 감독 자신의 형식 미학에 갇힌 과잉의 칼싸움, 2% 부족한 아쉬운 한판 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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