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안에 꽃피운 ‘맥주 순수령’
  • 이영미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3.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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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맥주를 집에서 직접 담가 먹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신지? 사실 나는 맥주를 만들어 먹은 지 7,8년 됐다. 사람들이 우리집에 놀러와서 가장 신기해 하는 것이 바로 맥주이다. 지난번에 막걸리와 청주를 담가 먹느라 겪은 우여곡절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얼떨결에 얻은 값진 보너스가 맥주 만들기였다. 집에서 술을 발효시키는 것을 한 번도 보고 자라지 못한 나에게는 술을 담근다는 것이 마음만 굴뚝 같았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홈쇼핑 광고지에서 맥주 재료를 파는 광고를 발견했다. 발효통과 캔으로 된 재료 몇 개, 효모, 병마개를 닫는 기구 같은 것을 묶은 키트였는데, 값도 그리 비싸지 않았다. 옳다구나 싶었다. 그래, 깍두기 담글 줄 알면 배추 김치도 웬만큼은 되는 법이니, 맥주를 만들어보면 술 만드는 원리를 대충 알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캔에 든 재료는 보리와 호프 등 곡물을 끈적끈적한 물엿 상태로 만든 것이었다. 그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맥주의 종류(라거·필즈·비터·스타우트 등등)가 결정된다. 대개 1.5kg나 1.8kg짜리인데 여기에 설탕 1kg을 더해 물에 섞고, 저으면서 끓여 완전히 녹인다. 전체 양이 20ℓ가 될 정도로 물을 넣으면 되는데, 보통 맥주병이 0.5ℓ이므로 40병 정도가 나온다. 이 액체를 20℃ 정도로 식힌 다음 효모(이스트)를 넣어 발효시킨다. 발효 온도는 25℃. 1주일이 되면 1차 발효가 끝난다. 다음에는 이것을 일일이 유리병이나 페트병에 옮긴 후 발효를 시킨다. 이때 맥주병 하나마다 1티스푼 정도의 설탕을 더 첨가해 마개 닫는 기구로 완전히 밀봉한다. 이 약간의 설탕은 밀봉한 병 안에서 다시 발효를 진행하게 하는데, 그때 나온 탄산가스는 밀봉한 병마개에 막혀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고 물 안으로 녹게 된다. 탄산음료처럼 톡 쏘면서 기포와 거품이 생기는 것은 이렇게 탄산이 물에 녹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이런 후 발효는 시원한 곳에서 한 달 정도를 시키는 것이 좋다.
설명을 말로 하자면 번거롭지만 막상 해보면 그리 복잡하지 않다. 결국 탄수화물(그것이 밥이건 보리죽이건 엿이건 설탕이건)을 효모로 하여 알콜 발효가 된 것이 술이다. 그건 막걸리나 맥주나 마찬가지이다. 물이 많이 들어가면 싱거운 술이 되고, 물이 적으면 독한 술이 되고, 또 후 발효가 잘 안된 것은 탄산의 톡 쏘는 맛이 적고, 후 발효가 너무 왕성하게 되면 마개를 따는 즉시 샴페인처럼 펑 터지고, 뭐 그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맥주를 만들어 보면서 나는 술 만들기에 별로 겁먹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이 질리는 대목은, 병에 넣어 한 달 정도 숙성 기간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맥주는 적어도 한 달은 지나야 성숙해 맛과 향이 부드러워진다. 처음에는 그걸 못 참고, 1주일째부터 야금야금 따서 먹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다.

집에서 만든 맥주는 상품화한 맥주보다 단맛·쓴맛·신맛과 향이 모두 강하고 색깔도 진하다. 그래서 한번 맛들이면 가게에서 파는 맥주는 싱겁게 느껴진다. 그러니 우리 냉장고에는 늘 수십 병의 맥주가 쟁여 있다. 한 7∼8년 이렇게 살다 보니 이제 냉장고 속의 맥주가 20병 이하로 떨어지면 불안하다. 다시 한 달을 기다려야 하니 그럴 수밖에. 저녁에 기분 좋게 한잔 하기 위해 나는 기꺼이 이 ‘슬로 푸드’의 노동을 감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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