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티베트 僧王 “대화와 비폭력으로 21세기 열자”
  • 인도 히마찰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r)
  • 승인 1996.08.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반도에서 중요한 것은 자비에 바탕을 두고 내적 평화를 이루는 것이라 봅니다. 이것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인내라는 것은 한반도 내부의 증오를 한민족 스스로가 잘 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
불교도에게 ‘승왕’이라 불리는 티베트 망명 정부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61·속명 텐진 캇쵸)는 지난 6월27일 인도 북부 히마찰 주 스피티 지역의 히말라야 산맥 중턱에 자리한 천년 사찰 다보사에서 <시사저널> 취재진을 맞이했다. 그는 세계 불교도들을 대상으로 한 ‘칼라차크라 대법회’를 주관하고 있는 중이었다. 달라이 라마와의 인터뷰는 취재진을 안내한 정우 스님(서울 양재동 구룡사 주지)과 달라이 라마의 통역 비서가 자리를 함께해 약 1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장대한 기골에 소탈하면서 이지적인 인상을 지닌 달라이 라마는 시종 카랑카랑하고 진지한 어조로 설법하듯이 대화를 이끌면서도 중간중간 호탕한 웃음을 보이는 등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도 오랜 불교 문화와 전통을 보존해온 국가입니다. 우선 <시사저널> 지면을 통해 한국 국민과 불자에게 한말씀을 해주시죠.


티베트 불교인을 대신해서 한국의 형제자매와 불자 들에게 첫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불자로서, 삶이란 것이 매우 귀중하기 때문에 결코 파괴적이 아닌 의미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쓸모 있는 삶을 영위할까 하는 문제로 직결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지향점입니다. 부를 추구하고 높은 교육을 받는 것은 2차적인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서, 우리의 마음에는 반드시 진지한 동기와 자비로운 동기가 부여돼야 합니다. 저는 항상 ‘선의적인 마음’을 개척하라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바로 대승불교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자비를 배우는 방법은 삶의 지혜와 많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지혜가 있지만 그 중 으뜸이 공(空)을 인식하는 지혜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도 그러한 지혜와 자비심입니다. 저는 이 점을 한국 국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동안 승왕께서는 세계 각지를 돌며 비폭력주의를 설법해 오셨습니다. 그 내용을 설명해 주시죠.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는 비폭력주의입니다. 이는 단순히 말하면 폭력을 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핵심에는 자비가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비폭력주의는 자비를 바탕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비폭력주의를 지향해야 할까요. 그것은 연기법(緣起法) 때문입니다. 인연으로 말미암아 만물(萬物)이 생성한다는 연기론에 따르면, 나의 미래와 다른 사람의 미래는 상당한 연관 관계가 있습니다. 때문에 나의 행복을 생각할 때는 반드시 남의 행복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연기법의 관점에서 비폭력주의는 우리 모두가 취해야 할 매우 중요한 자세입니다.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연기법이라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인식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오늘날 현대 과학은 연기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물리학자들이 연구하는 양자론에서 연기법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제 ‘실체’라는 말을 쓰기를 주저합니다. 그동안 ‘실체’라는 것은 ‘항상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인식됐습니다. 그러나 이제 실체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 ‘상호 연관 관계를 갖고 작용하고 있는 그 무엇’으로 개념이 바뀌고 있습니다. 여러 물질 때문에 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바꿔 말해 어떤 사물이 존재하는 것은 다른 여러 물질 때문이라는 점에서, 어떤 물질이든지 절대적 존재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와서 그런 것이 과학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불교의 연기법과 물리학의 양자론, 그리고 공(空)에는 연관이 있습니다. 공이라는 것은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빈 상태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실체가 존재하는 것은 다른 실체가 있기 때문이라는 포괄적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에 인류가 진정한 평화를 얻으려면 불교의 가르침이 아주 유용할 것입니다.

비폭력주의는 훌륭한 가르침이기는 하나 현실에서는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닙니까? 20세기 인류 역사만 보아도 약육강식의 역사였고, 지금도 지구상에 폭력적 대결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20세기는 폭력과 유혈의 세기였습니다. 문제를 풀기 위한 행동이 문제를 더 야기했습니다. 그것은 폭력을 수단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21세기를 준비하는 현재로서는 비폭력에 대한 전지구적인 공감과 인권, 자결주의 등에 대한 대화가 더 늘어나야 합니다. 다행히 그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령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중동(팔레스타인 -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아직 많은 장애물이 있기는 하지만 대화와 비폭력주의가 자리잡아 가고 있지 않습니까. 다가오는 21세기를 대화와 비폭력의 세기로 준비하는 데 이런 흐름은 분명히 좋은 징조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한반도는 아직 그런 흐름을 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남북한 간에 약 2백만의 정규 병력이 중무장한 채 팽팽해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반도에서 중요한 것은 자비에 바탕을 두고 내적인 평화를 이루는 것이라 봅니다. 이것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인내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파괴자와 파괴 행위에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반도 형제자매는 파괴적 행동을 극복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서 자비 없이는 어떤 파괴적 행동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인내라는 것은 한반도 내부의 증오를 한민족 스스로가 잘 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전세계를 비무장지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남북한 사이에는 비무장지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 그것은 모델로 삼을 수 없는 잘못된 비무장지대입니다. 원래 의미대로 모두가 즐거이 뛰놀 수 있는 무기 없는 비무장지대로 변화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 남북한 양쪽의 지혜와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 결심은 자비에서 나와야 하고, 지혜는 상호 존중 및 상호 의존이라는 인식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세계 평화를 이루는 데 한반도가 앞장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세계에는 여러 종교가 있는데, 정신적인 지향점은 같아도 현실적으로는 여러 종교 사이에 대립·갈등의 측면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세계가 한 종교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계에는 여러 가지 종교가 있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여러 민족과 사람들이 각자 알맞은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인을 자기 종교로 억지로 개종시키려는 것은 잘못된 일이고, 특정 종교를 지나치게 선동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은 반드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종교인이든 아니든 개인에 따른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면 그만입니다. 종교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라는 사실을 기초로 해야 비로소 종교 간에 조화와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저의 희망이며 소신이고, 이런 생각들을 한국 국민들이 저와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승왕께서는 이곳 히말라야 오지에서 전세계 불자 1만5천여 명을 불러모아 ‘칼라차크라 법회’를 열고 있는데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웃음) 칼라차크라는 칼라차크라입니다. 칼라차크라는 탄드라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법회로 많은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크게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그리고 그밖의 것으로 나뉩니다. 외적인 칼라차크라는 모든 우주 만물이고, 내적인 칼라차크라는 자기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그 밖의 칼라차크라라는 것은 이 외적·내적 칼라차크라를 정화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여기에는 자비에 바탕을 둔 참선이 있고, 만다라와 신들을 도식화하는 작업이 있습니다. 이번 칼라차크라 법회에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마는 이런 모임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이뤄지므로 한데 모아진 기도 에너지가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합니다. 개개인이 힘을 합치면 큰 물건을 들 수 있듯이, 정신적인 면에서도 많은 에너지가 한곳에 모이면 더욱 효과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탄드라가 영향을 미칩니다. 칼라차크라 법회는 또 인류가 서로 싸움을 줄여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자는 정신이 포함되기 때문에 자주 법회를 여는 것입니다. 귀하가 법회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면 수행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수행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승왕께서는 종교 및 정신 세계의 활동 외에도 현실적으로 티베트 망명 정부의 수반으로서 티베트 독립을 둘러싸고 중국과 힘겨운 씨름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재 입장은 무엇입니까?

티베트는 중국이 점령하기 전인 50년까지는 역사적으로 독립 국가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망명 정부지만 정부가 있었고, 사법·입법 제도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소규모 군대와 우편제도, 통화와 세금도 있었습니다. 티베트는 다른 나라들과 독립적인 외교 관계도 유지했는데, 특히 주변국들과는 독립국임을 인정받는 외교 관계를 돈독히 유지해 왔습니다. 현재 제 처지에서 역사는 역사일 뿐입니다. 우리는 티베트의 미래와 앞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교인으로서 현재 제 입장은 중국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중국이 통치하는 티베트의 실정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사람들이 ‘세계의 지붕’이라 부르는 티베트는 지금 아주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일어나는 티베트인들의 고통뿐만 아니라 티베트 문화가 말살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티베트 문화는 인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문화입니다. 왜냐 하면 티베트 문화는 각기 다른 환경에 살고 있는 인류에게 똑같이 유용한 방향성을 가르쳐줄 수 있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불교 문화라고 부릅니다. 불교와 불교 문화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종교라는 성격을 갖고 있지만, 불교 문화는 사회적인 성격을 띠므로 다른 종교에서도 언급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저는 티베트 문화 보존과 현실 적용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티베트내 상황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동안 티베트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많은 협상을 벌여온 것으로 압니다.

79년 이후 등소평 주석이 협상을 제안해 왔는데 ‘독립’을 제외한 모든 티베트 문제는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임시 정부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고 여러 번 접촉했습니다. 우리는 독립을 떠나서라도 현재의 티베트 상황은 도저히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중립적인 방안을 모색해 보았습니다. 87년 미국 국회 방문 때 다섯 가지 평화안을 제시한 뒤 88년 유럽의회 연설에서 세부 사항을 제안했습니다. 티베트가 하나의 정치적 실체임을 인정하고 의회민주주의를 인정해 주는 조건 아래 중국 치하에 있을 수 있으며, 외교권과 군사권은 중국이 행사하고 내정은 티베트 민족 자결주의에 따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반응은 부정적이었고 더 이상 협상은 없었습니다. 그뒤 우리는 중국에 협상의 문을 열어놓고 계속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중국은 티베트 망명 정부를 ‘조국에 대한 배신자’라고 부르며 비타협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은 상당히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히 바뀌리라 전망합니다. 호전적인 태도가 티베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중국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티베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건설적인 사고와 정책을 가져야 합니다. 중국의 정책이 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저는 현재 중국과 의미 있는 협상 방법을 새로 찾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난 평생 티베트 문제를 풀기 위해 비폭력주의로 접근해온 저의 노력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으리라 확신합니다.

87년 이후 최근까지 티베트 내에서 독립을 외치던 비폭력 평화 시위가 중국군의 계엄령을 불러일으키고, 무자비한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지금 티베트는 아주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티베트 민족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망명 티베트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분노하고 슬퍼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중국의 방식대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이기 때문에 티베트 방식으로 고통을 극복합니다. 그것은 중국이 종교의 부정적 측면이라며 무시하고 있는 요소로부터 우리가 자양분을 얻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티베트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중국 군대와 경찰 역시 우리에게는 자비를 베풀 대상입니다.

이 인터뷰를 마치면 <시사저널> 취재진은 티베트로 들어가 객관적인 눈으로 그곳 현실과 민심을 살펴볼 계획입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무사히 한국에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런 만남을 계기로 한국인과 티베트인들 사이에 문화·종교적인 교류가 늘어나기를 희망합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