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 스포츠 영웅 황영조냐, 이봉주냐
  • 기영노 (스포츠 해설가) ()
  • 승인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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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제패한 황영조가 한 발짝 앞서…
이봉주, 역전 가능


마라톤 선수들이 가장 존경스러워요." 국가 대표 선수들의 요람인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들을 상대로 가장 존경하는 선수를 물어보면 거의가 마라톤 선수를 꼽는다. 뛰는 고통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종합 스포츠 제전에서도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마라톤이다.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선수가 곧 그 대회 최고 영웅이 되는 것이다.




100년이 넘는 근대 올림픽 역사를 통해서 최고 올림픽 영웅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스포츠 전문가들은 에티오피아의 비킬라 아베베 선수를 맨 앞에 놓는다. 아베베는 1960년 로마올림픽 마라톤 코스를 맨발로 질주해 당시 세계 최고기록인 2시간15분16초2로 우승했고,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도 자신이 세운 세계 최고기록을 깨뜨리며 2시간12분11초2로 금메달을 따내 마라톤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2연패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한국 최고의 마라톤 영웅(스포츠 영웅)은 누구일까.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1936년 베를린올림픽), 1947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인 서윤복,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한 함기용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국제 대회 우승이 단 한 차례뿐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영웅 황영조(31)와 이번 보스턴 영웅 이봉주(31) 선수는 국제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다. 당연히 둘 중 한 사람이 한국 스포츠 사상 최고의 선수라 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황영조는 상금이 없는 주요 국제 대회에서 세 차례 우승했다.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숙적 일본의 모리시타 선수를 몬주익 언덕에서 뿌리치고 2시간13분23초로 금메달을 따냈다. 황영조가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제패한 것은 한국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올림픽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1948년 런던올림픽 이후 처음이다.


황영조는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제패하기 전 1991년 영국의 셰필드에서 벌어진 여름 유니버시아드대회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당시 코오롱 소속이던 황영조는 코오롱의 정봉수 코치가 국가대표 코치에서 탈락하자 코치가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혼자 해냈다. 하지만 황영조는 보란 듯이 우승했다. 2시간12분40초.


황영조는 바르셀로나올림픽 쾌거 이후 2년 만에 다시 한번 일을 저질렀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의 하야타 선수를 제치고 2시간11분13초로 금메달을 따냈다. 이로써 황영조는 세계 마라톤 역사상 올림픽·유니버시아드·아시안게임 등 3대 종합 제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거머쥔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이봉주 운명 좌우할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황영조가 상금이 없는 종합 스포츠 제전에 강하다면 이봉주는 상금이 있는 유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이봉주가 국제 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것은 1993년 12월 호놀룰루 국제마라톤대회(2시간13분16초)다. 이후 이봉주는 1994년 조일마라톤 , 1995년 동아마라톤을 잇달아 제패하더니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2시간12분39초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금메달을 획득한 남아프리카공화국 투과니 선수의 기록은 이봉주보다 겨우 3초 앞선 2시간12분36초였다. 이봉주는 올림픽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차이로 금메달을 놓쳐 한을 갖게 되었다. 이봉주는 그 해 12월 후쿠오카 국제마라톤대회에서 투과니를 제치고 우승(2시간10분48초)을 차지해 개인적인 한을 풀었다.


그러나 역시 올림픽의 한은 올림픽에서 풀어야 한다. 이봉주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2시간12분32초로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컨디션을 점검한 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도전했으나 레이스 도중 넘어지는 바람에 24위(2시간17분27초)에 그치고 말아 올림픽에 맺힌 한이 더욱 깊어졌다.


이봉주는 지난 4월17일 A급 국제 대회인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우승(2시간09분43초)했다. 보스턴·뉴욕·도쿄·로테르담 등 지역 마라톤대회는 아무리 상금이 많은 대회라 하더라도 모든 선수가 한꺼번에 기량을 겨루는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보다 영향력이 떨어진다. 이번 보스턴 마라톤대회만 하더라도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런던·로테르담 마라톤대회로 우수 선수들이 분산되었다.


한국체육대학 김복주 교수는 "황영조와 이봉주는 모두 한국 마라톤의 보물이어서 두 선수를 비교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아직까지는 올림픽 우승 업적을 남긴 황영조 쪽으로 무게가 기우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는 8월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벌어질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을 이봉주가 제패한다면 문제가 달라지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이봉주는 8월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벌어질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계의 내로라 하는 마라토너가 모두 출전하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1993년 슈투트가르트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김재룡 선수가 4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이봉주 개인적으로도 1995년 예테보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2시간20분31초라는 기록으로 22위에 그친 적이 있다. 이는 그가 풀 코스를 뛴 것 중 최악의 기록이다. 이봉주 선수는 보스턴 마라톤을 제패한 후 귀국길에 캐나다 에드먼턴에 들러 코스를 답사하고 필승 전략을 구상했다.


에드먼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는 이미 세계 최고 기록 보유자인 미국의 할리드 하누치(2시간05분42초)와 세계육상선수권대회 3연패를 노리는 스페인의 아벨 안톤, 아시아 최고기록 보유자인 일본의 이누부시 다카유키(2시간06분50초),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게자헹 아베라(에티오피아)와 시드니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에릭 와이나이나(케냐)가 출사표를 던져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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