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방’ 사전에 불황은 없다
  • 문정우 대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5.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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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품용 상품권 허용 덕에 1만3천여 곳 성업…권력층, 로비·이권 개입 의혹

 
  강원랜드 학습효과인지 풍선효과인지 알 수 없으나 게임방과 불법 카지노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검찰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불법 카지노 중에서는 문 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으나 일명 게임방이라고 불리는 성인 오락실은 줄기차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불법 카지노에는 주로 부유층이 드나들지만 성인 오락실은 일용직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층이 이용한다. 성인 오락실이 계속 늘어난다면 서민 경제의 근간을 흔들어 사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해악을 끼칠 수 있다.
 

성인 오락실이 최근 급격히 늘어나게 된 데는 몇 가지 요인이 겹쳤다. 지난 8월부터 문화관광부가 경품용 상품권 지정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모두 10개의 상품권을 성인 오락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는 지난 5월에 사행성이 과다하다는 비판을 받는 ‘바다이야기’라는 새로운 게임을 18세 이상 이용 가로 등급을 매겨 주었다. 성인 오락실에서 상품권을 카지노의 칩처럼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데다, 바다이야기라는 신종 게임이 시장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받는 바람에 성인 오락실 시장은 순풍에 돛을 달았다.
 

경품용 상품권 지정제도가 도입된 지난 8월 한 달 동안 서울시내에서 성인 오락실이 1백 곳이나 새로 생겨났다. 지난해 월 평균 신장개업 성인오락실 수가 59곳이었으니 시장이 얼마나 급속도로 달아올랐는지 알 수 있다. 현재 전국의 성인 오락실은 1만3천여 개나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중에 약 5천 개가량은 황금성과 같은 인기 오락기를 1백 대 이상 갖춘 70평 이상의 대형 업소이다. 

상품권 발행사들, 앉아서 떼돈 벌어

열린우리당 노웅래 의원실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경품용 상품권 지정제도가 도입된 올해 8월부터 10월 현재까지 두 달 동안에 상품권은 무려 약 4조3천억원어치나 팔려나갔다. 상품권을 발행한 9개 회사가 서울보증보험에 지급한 보증 금액만 7천6백43억원에 달한다. 이 정도면 상품권 가맹사들이 갖고 있는 물건들이 모두 팔려나가고도 남을 만한 액수이다. 하지만 그같은 대소동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이 상품권들은 거의 대부분 성인 오락실로 흘러들어갔다고 보면 맞다.
   

정부는 그동안 약 12조원이 성인 오락실에서 유통된다고 보았는데 두 달 동안에 발행된 상품권 액수를 보면 시장 규모는 그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강원랜드의 지난해 매출액 규모가 7천억원 정도니까 이 시장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 짐작할 수 있다. 강원랜드가 성인 오락실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들어 갈까봐 벌벌 떠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보통 구두 상품권을 발행하면 가맹사를 통해 돌아오는 회수율은 50%도 채 안 된다고 한다. 그 점을 감안하면 상품권 발행사들은 앉아서 엄청난 떼돈을 벌었음을 알 수 있다. 덩달아 서울보증보험도 별로 힘 안 들이고 큰 돈을 거머쥐게 되었다.
   현재 검찰에서는 상품권 발행을 관리해온 한국게임산업개발원으로부터 자료를 넘겨 받아 경품용 상품권 지정제도 도입 과정에서 부정은 없었는지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측에서는 국회의원들의 로비가 있었다는 식의 얘기를 은근히 흘리고 있으며 국회 쪽에서는 게임산업개발원과 상품권 발행 회사와의 사이에 커넥션이 있지 않았는지 의심하고 있다.  엄청난 이권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일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흑막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련 법에 따르면 성인용 게임기 한 대당 1시간에 9만원 이상 투입할 수 없으며, 당첨 시 지급하는 상품권도 1회 2만원으로 제한한다. 하지만 법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락기 불법개조가 횡행하고, 상금은 수백만원을 넘어가기 일쑤이다. 일부 신장개업한 업소들은 손님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하루에 7백만~1천만원까지 손해를 감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때문에 ‘꾼’들 중에서는 신장개업한 집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15억원 투자해 3개월 만에 손익분기점 도달

일부 성인 오락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요지경이다. 업소는 보통 물주, 조폭, 섭외 등 4~5명이 공동 운영한다. 대형 업소를 차리려면 10억~15억원 정도 들고, 스크린 경마까지 설치하려면 10억원 정도가 더 들어간다. 그런데 15억원 정도를 투자하면 석 달 내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야 한다. 워낙 불법을 많이 저지르기 때문에 무슨 마가 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석 달 정도 영업을 해서 본전을 챙기면 그 뒤 석달 정도 더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 석 달 동안 영업하고 다른 곳으로 튀어버린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게임기를 만들고 유통시키는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 업주에게 게임기가 팔리기까지는 점조직으로 대여섯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누가 게임의 원래 개발자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구조이다. 유통 과정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는 것은 경찰의 단속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조폭이 들이닥쳐 게임기를 빼앗아갈까 두려워서이다. 성인오락실의 배후에는 대부분 조폭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타이완에 가 있는 한국의 기술자들이 일본 게임을 카피해서 더욱 개량한 뒤 한국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으로 추정한다. 세운상가 등에서 이름을 날리던 한국의 게임 카피 기술자들중 상당수는 불법 복제에 관대한 타이완에 스카우트되어 활동하고 있다. 게임기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는 황금성 개발자는 현재 중국에 도피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임 개발은 영화제작이나 똑같다고 보면 된다. 투자자를 모아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하면 대개 20% 정도만 시장에서 먹히고 나머지는 도태되고 말기 때문이다. 영화처럼 지방에서 먼저 풀어보고 서울로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에서 먼저 풀면 비밀이 새고 훼방을 놓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임을 테스트하기 좋은 곳으로는 부산과 광주가 꼽힌다. 게임 제작에는 테헤란 밸리의 벤처 업체들도 많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검찰이나 경찰, 심지어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일부 관계자들도 게임기 제작이나 성인오락실 운영에 지분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설이 파다하다. 마치 그런 얘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온갖 물의를 빚으면서도 성인오락실 시장은 커져만 간다. 국내 게임 산업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정부가 어떤 엄포를 놓거나 무슨 수를 쓰더라도 성인오락실 시장은 3개월만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안정되어 버린다”고 말한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깊어질수록 도박시장은 커진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탈출구라고는 도박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인오락실은 저소득층이 몰려 사는 곳에서 더욱 많이 생겨나는 실정이다. 저소득층이 도박에 찌들게 되면 사회복지 정책이 전혀 먹히지 않게 된다. 정부 보조금을 들고 도박장으로 달려가 버리기 때문이다. 정부와 업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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