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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 한강으로 서울 시민이 흘러든다

자연학습장·진입로 늘자 이용자 ‘북적’…대부분 산책이나 운동 즐겨

안은주 기자 ㅣ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10.20(Fri) 22: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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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한강사업소 제공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강은 서울 시민이 1년에 한두 번 찾을까 말까 한 장소였다. 한강에 나가도 바람 쐬는 것 외에는 딱히 즐길거리가 많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한강시민공원 편의 시설이 구색을 갖추면서 한강을 찾는 발걸음이 늘었지만, 자가용을 끌고 가야 닿을 수 있는 한강은 여전히 벼르고 벼르다 찾는 나들이 장소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한강이 확 달라졌다. 요즘 한강변에서는 나들이복 차림에 카메라를 든 ‘방문객’보다 산책이나 운동을 즐기는 ‘일상족’이 더 흔하다. 주말이면 좁은 강변은 자전거족과 인라인 스케이터, 마라토너들로 북적댄다. 한강 둔치 운동장은 축구나 농구를 즐기는 사람, 강둑에는 낚시하는 사람, 강 위는 윈드서핑이나 요트 같은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잔디밭과 코스모스, 국화 같은 가을꽃으로 치장한 한강시민공원 둔치는 이른 아침부터 산책 나온 이들로 꽉 찬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에 따르면 1986년 한강시민공원이 첫선을 보일 당시만 해도 이용자가 3백30만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2005년에는 4천8백21만명이 한강을 찾았다. 한강이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만 찾는 ‘이벤트 공간’이 아니라, 접근이 편리한 나들이 공간이자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드나들 수 있는 일상적 공간으로 바뀌면서 이용자 수가 급증한 것이다.

사람들이 한강을 자주 이용하기 시작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강시민공원이 자연 친화적으로 진화했다는 점이다. 나무와 숲이 가꾸어지고, 꽃과 식물이 자라는 자연 학습장이 늘어나면서 한강시민공원에는 볼거리와 놀거리가 늘었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나 이벤트 행사장에 불과했던 한강을 가족 단위 나들이 공간으로 바꾼 것이다. 어린 자녀가 있는 30, 40대들은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서울 밖으로 나들이 가는 대신 한강으로 산책 나온다. 수시로 아이들을 데리고 한강을 찾는 김재용씨(39․서울시 서초구)는 “한강시민공원에는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이 다채롭게 핀다. 4월 유채꽃을 시작으로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밀밭과 억새까지 그야말로 꽃 천국이다. 자연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장소가 곳곳에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한강시민공원을 순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라고 말했다.

꽃과 물고기 크게 늘어

김씨의 말대로 한강시민공원은 아이들에게 자연을 느끼고 배우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 중에서도 여의도․잠실․뚝섬․잠원․이촌 지구는 자연 학습장이 있어 생태 학습장으로 인기가 높다. 뚝섬 지구 텃밭에는 37종의 각종 작물이 자라고 있기 때문에 주말 농장을 찾는 기분까지 낼 수 있다. 철새를 관찰하고 습지 생태를 배울 수 있는 공원도 여럿이다. 여의도 샛강, 강서습지, 고덕수변, 선유도공원 등이 대표적이다. 광진교 근처 광나루 지구에서는 황조롱이가 출현하기도 했고, 근처 산책로는 콘크리트나 아스팔트가 깔려 있지 않아 시골길을 걷는 느낌을 맛볼 수 있다.

   
 
ⓒ서울시 한강사업소 제공
한강이 어쩌다 한 번 들르는 ‘이벤트 공간’에서, 운동하고 휴식을 즐기는 일상적 공간으로 바뀌었다. 자전거나 마라톤,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수질이 좋아지고 한강 생태계가 복원되면서 한강에서 관찰할 수 있는 물고기 종류도 많아졌다. 하천생태복원연구소 황종서 소장은 “과거에 비하면 한강 생태계가 매우 좋아졌다. 한강에 사는 물고기만 보아도 과거보다 상당히 늘었다. 한강이 처음 개발될 때는 수질이 나빠 한강 물고기를 먹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한강에서 잡은 붕어나 잉어를 먹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또 난지 지구에는 도심 속에서 야영을 경험할 수 있는 난지 캠핑장이 있다. 텐트를 비롯한 각종 장비를 빌려주고 취사장․샤워장․야외탁자 등이 갖추어졌다. 가족 단위 야영객을 위한 패밀리 구획도 있고, 최대 10인용 텐트를 설치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캠핑장 바로 옆에는 인라인 스케이트장, 국궁장, 자전거 대여점, 자연 학습장 따위가 있어 아이들이 심심해할 짬이 없다. 캠핑장은 인기가 높아 적어도 한 달 전에 예약해야 이용할 수 있다.

레저 스포츠도 한강 북적이게 거들어

한강에 사람이 몰린 더 큰 까닭은 한강이 더 이상 나들이나 이벤트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이자 일상적 공간으로 바뀐 데 있다. 그 ‘일등 공신’은 한강 진입로의 증가다. 동네에서 한강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토끼굴’이 곳곳에 새로 생기면서 한강 이용객이 부쩍 증가했다. 염창동 진입로가 새로 뚫린 뒤부터 이형석씨(40․서울시 강서구)는 주말 아침마다 가족과 함께 한강을 찾는다. 이씨 가족에게는 한강이 아무 때나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내 집 마당과 다름없다.

이형석씨는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한강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샌드위치나 라면, 김밥 같은 간단한 음식을 사 들고 시야가 확 트인 한강변에 앉아 먹는 아침은 왕의 식탁 못지않은 성찬이다”라고 말했다. 이씨네 가족은 아침 식사 후 잔디밭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시간을 보낸 뒤 사람들이 몰려드는 점심 때 집으로 돌아간다.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 마라톤, 수상스키, 요트 같은 레저 스포츠 역시 한강을 사람들로 북적이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복잡한 도심에서 한강처럼 자전거나 인라인을 맘 놓고 탈 수 있는 공간이 드물어 사람들은 한강으로 모여든다.

한강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김준영씨(34․서울시 동작구)도 자전거 때문에 한강을 자주 이용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사당동에서부터 여의도까지 1년 내내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출근길 도착지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탈의․샤워실까지 있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김준영씨는 “한강이 없었다면 사당동에서 여의도까지 자전거 타고 다닐 생각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한강변은 도심 공간치고는 공기가 맑고 탁 트여 자전거 타기에 정말 좋은 길이다”라고 말했다.

   
 
ⓒ한강 수질이 개선되면서 생태계도 복원되고 있다.
 
 
김준영씨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얻은 것이 많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직업이다 보니 늘 운동량이 부족해 복부 비만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선천적으로 혈압까지 높았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면서 혈압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고, 체중도 10kg이나 빼는 데 성공했다. 출퇴근 때마다 사람들에게 치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니 스트레스도 많이 줄었다. 김준영씨는 “한강을 이용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정말 복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을 한동네로 만드는 자전거 도로

   
 
ⓒ시사저널 한향란
김준영씨(사진)는 한강을 이용해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도심답지 않게 공기가 맑고 한적한 한강은 자전거 타기에 좋다.
 
 
김준영씨만 한강을 이용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동지’들이 부쩍 늘었다. 원래 회원 수가 1만명 정도였던 동호회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자출사)’에는 지난 봄부터 매달 1만여 명씩 회원이 늘고 있다. 웰빙 열풍에 따른 자전거 붐도 원인이지만, 한강과 그 지류를 중심으로 자전거 도로들이 잇따라 완공된 덕도 크다.

곡예하듯 자동차와 씨름하지 않아도 되는 자전거 도로가 한강을 중심으로 속속 늘어나면서 ‘자전거족’이 자연스럽게 불어났다. 자전거족들은 강서와 강동, 강남과 강북, 한강 본류와 지류를 넘나들면서 서울 전체를 운동장처럼 누빈다. 교통 체증을 감수하고 자동차를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는 다른 동네 친구도 한강에서는 만나기가 수월해졌다. 고속도로가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묶었다면, 한강을 중심으로 속속 늘어난 자전거 도로는 서울 시민 대다수를 한 동네 주민으로 만들고 있다.

편의 시설 좀더 다양해져야

정종열씨(36․경기도 일산)는 요트 때문에 한강을 자주 찾기 시작한 경우다. 요트 타기가 취미인 정종열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요트를 타기 위해 서울과 부산을 자주 왕래해야 했다. 그러나 한강 요트가 대중화한 요즘은 굳이 부산까지 자주 내려갈 필요가 없다. 바다용 크루즈를 타고 싶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강시민공원 난지 지구로 달려가 요트를 즐긴다. 정종열씨는 “한강 덕에 요트 즐기기가 더 수월해졌다. 바다까지 가야 요트를 탈 수 있는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하면 서울 시민은 큰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한강에서는 요트 마니아나 베테랑이 아닌 문외한들도 쉽게 요트와 친해질 수 있다. 서울시 요트협회에서 개설한 요트학교에서 기초를 다진 뒤 요트 동호회에 가입하면 되기 때문이다. 동호회마다 구입해놓은 요트가 있어 모든 개인이 요트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 정종열씨는 “요트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저 부자들의 취미 생활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투자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부자가 아니어도 요트를 즐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수상 스키나 윈드서핑 같은 다른 수상 스포츠 역시 한강에서 쉽게 즐길 수 있다. 수상 스포츠 시설은 망원·이촌·반포·뚝섬·난지 지구 등 11개 군데에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한강이 더 많은 사람이 즐기는 공간이 되려면 아직도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 김준영씨는 “자전거 도로와 ‘토끼굴’이 늘면서 한강 접근성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한강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 더 많다. 자전거로 강남과 강북을 오갈 수 있는 다리도 많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한두 곳을 제외하고는 ‘거기서 거기’인 편의 시설도 개선되어야 한다.

정종열씨는 “어느 한강시민공원을 가나 비슷한 종류의 편의 시설만 있다. 공원마다 다른 편의 시설을 만들어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강 유람선 선장 김재일씨(상자 기사 참조) 말대로 콘크리트 구조물과 회색 병풍처럼 늘어선 아파트뿐인 강 주변 경관도 개선 대상이다. 한강수난구조대 고정호 대장 말처럼 한강 수질도 더 개선되어야 한다(상자 기사 참조).

서울시는 최근 잇따라 한강 개조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있다.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더 만들고 접근성을 높여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공간으로 꾸미겠다는 것이다(딸린 기사 참조). 한강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한강 개조 프로젝트는 일부 정치인과 공무원의 탁상 행정에 그칠 위험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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