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지어지지 않은 건축 도면을 빤히 보는가
  • 안철흥 기자 (ahn@sisapress.com)
  • 승인 2006.12.2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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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일범 건축가·국민대 교수

 
봉일범씨(38)는, 아직, ‘페이퍼 아키텍트’이다. 그가 지은 건축물은 지상에 없다. 몇 번의 국제 공모전에 출품하고 ‘21세기 31빌딩’이나 ‘보르헤스적인 보르헤스 기념관’ 등을 설계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부의 연장선에 놓인 작업이었다. 그의 건축은 아직 도면 밖을 벗어나지 않았다.

봉씨는 지난 5년간 책을 썼다. <건축-지어지지 않은 20세기>(시공문화사). 지난해 전체 10권짜리로 완간된 책은, 제목에서 힌트를 주고 있듯, 지어지지 않은 건축 계획안들 혹은 처음부터 지을 의도가 없었던 건축가의 설계 도면을 다루고 있다. 미스 반 데 로에와 르 코르뷔제 등에서부터 야콥 체르니코프 등 우리에게 생소한 건축가에 이르기까지, 21세기의 첫 5년을 봉씨는 이들 선배 건축가들의 설계 도면 속에서 파묻혀 보냈다.

그는 서울대 건축과 90학번이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99년 (주)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에 취직했다. 그러나 실무를 익히느라 바쁜 와중에도 공부에 대한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가 사표를 내고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그런데 하필 지어지지 않은 도면들을 연구 주제로 택했을까.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건축주에 의해 변형되기 전의) 건축가의 생각이 더 정확하게 응결되어 있다고 봤다.”

그는 2004년 원고를 탈고한 뒤 미국 하버드 대학으로 유학갔다. 그곳 디자인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Master in Architecture)를 받고 귀국한 그는 2006년 3월부터 국민대 건축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여전히 이론가나 학자가 아닌 건축가이다. “책을 쓴 것은 일종의 따라 배우기 과정이었다. 굳이 실무자 코스의 유학 과정을 택한 것 또한 설계 실무와의 균형감을 회복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실무만을 잘하는, 또는 실무와 이론을 모두 잘하는 사람을 건축가라 부를 수는 있어도 이론만을 잘하는 사람을 우리는 결코 건축가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꿈은 실현될 것인가. 로버트 벤추리나 피터 아이젠만, 그리고 삼성미술관 리움과 서울대미술관을 설계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렘 쿨하스 등이 젊은 시절 이론가로 담론을 이끌다가 쉰 살이 넘어서야 건축가로 데뷔해 대가의 반열에 올라선 이들이다. <렘 쿨하스:학생들과의 대화>를 번역한 적이 있는 봉씨가 ‘페이퍼 아키텍트’의 딱지를 떼고, 이들처럼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건축가’로 성공할 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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