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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에 의해 ‘만신창이’ 되어가는 낙안읍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앞둔 순천 낙안읍성의 훼손 실태 르포

이은영 서울문화투데이 발행인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01(Wed) 10:14:31 | 13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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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님 낙안(읍성) 한 번 다녀가시면 안 될까요?” 얼마 전, 송상수 낙안읍성마을조합장(전 낙안읍성보존회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의 첫 마디다. 얼핏 들으면 ‘흐드러진 봄꽃 나들이라도 하라’는 말로 들릴 수 있었지만, 이날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가득했다. 직감적으로 ‘낙안읍성에 또 무슨 일이 벌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몇 년간 낙안읍성 개발 문제를 놓고 주민들과 관리사무소의 마찰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낙안읍성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읍성들 가운데 전통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1983년 사적 제302호로 지정됐다. 마을을 둘러싼 성곽의 길이가 1410m이고, 전체 면적은 22만3108㎡에 달한다. 성곽 안에는 조선시대 서민 가옥인 초가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90여 가구에 250여 명의 주민들도 성곽 내 마을에 실제 거주하고 있다. 때문에 한 해 120만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201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도 등재됐다. 

순천만정원 외래종 꽃들 옮겨다 심어 

필자는 다음 날 바로 순천행 KTX에 몸을 실었다. 현지에서 직접 보고 들은 낙안읍성의 상황은 심각했다. 낙안읍성 관리사무소가 자꾸만 무언가를 들여와 전통의 소박한 맛이 사라지고 있다고 주민들은 끌탕을 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요원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관리사무소가 나서서 읍성의 고유한 자연풍광을 파괴하고, 정체성을 훼손하면서 주민들 간의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주민들이 꼽는 문제점은 대략 이랬다. 관리사무소는 최근 성 옆 담벼락에 자전거 보관소를 만들었다. 관리사무소가 정문이 아니라 (남문 쪽) 뒤쪽에 위치해 있어 별로 눈에 띄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번쩍이는 금속건물에 가려 담장의 여장(女墻) 마저 보이지 않았다. 성 입구에는 담장 높이를 훌쩍 넘는 몽골텐트 20개 동이 설치돼 있었다. 마을 장터로 최근 조성된 곳이었다. 주민들의 쉼터이자, 관광객들을 상대로 전통차를 팔았던 기존 장터 두 동은 폐쇄시켰다. 최근 낙안읍성을 다녀왔다는 한 직장인은 “몇 년 전 낙안읍성을 방문했다가 장터 앞 식당에서 훌륭한 식사를 했다. 그 앞 쉼터(장터)에서 전통차로 후식을 하며 낙안읍성의 여유로움을 만끽했던 기억이 있다”며 “현재는 그 식당이 문을 닫았고, 장터마저 휑하니 비어 있어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근에는 정원박람회로 유명한 순천만의 정원 꽃을 낙안읍성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갈등을 빚었다. 도시인들은 일부러 야생화 군락지를 찾아 힐링을 하고 돌아온다. 낙안읍성에 가면 그 안 토종 야생화 군락지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관리사무소가 최근 중장비를 동원해 토종 야생화 밭을 모두 갈아엎었다. 이 자리에 화려한 외래종 꽃들을 심었다. 겉보기에는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읍성마을 분위기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전통혼례식장으로 개방된 가옥 마당에도 울긋불긋 하트 모양의 화단을 꾸몄지만, 초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한 주민은 “관리사무소가 최근 정원 한가운데에 돌탑을 쌓아올려 놓고 분수대처럼 사용했다”며 “주민들이 문화재청에 이의를 제기하자 곧바로 돌탑을 없애버렸다”고 말했다. 바로 인근에 순천만정원이 위치해 있고, 봄이면 전국 어느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외래종 꽃들을 굳이 낙안읍성까지 들여올 필요가 있겠냐는 게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여기에 더해 읍성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던 대나무 숲도 무참히 잘라내 주민들의 원성은 더해가고 있다. 몇 년 전 공사를 위한 길을 내면서 대나무 숲의 가운데를 뭉텅 베어냈는데, 그 자리 옆을 또다시 대량으로 베어내면서 주민들이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가옥의 형태를 고스란히 보여주기 위해 개방된 가옥의 형태 훼손은 더욱 심각하다. 흙바닥인 전통 부엌은 시멘트 콘크리트로 변해 있었다. 그 위에도 역시나 시멘트로 아궁이 흉내만 내놓았다. 가옥 한편에 구비된 장독대의 받침돌은 모두 중국산이었다. 낮은 담장을 따라가다 보면 동네 가운데쯤 오래된 우물이 나온다. 우물과 연결된 물길은 ‘녹조라테’를 방불케 할 정도로 오염돼 있었다. 낙안읍성에서 과연 전통의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낙안읍성 입구를 가리고 있는 몽골텐트. 문화재청이 허가를 내줘, 오히려 읍성의 미관을 가리는 데 일조했다.

울창한 숲을 이루던 대나무가 베어져 숲이 휑하다.

울창한 숲을 이루던 대나무가 베어져 숲이 휑하다.

낙안읍성 관리사무소 측 “문제없다”

필자는 낙안읍성장을 만나 주민들이 현재 안타까워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정영고 낙안읍성장은 주민들의 우려에 대해 “크게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주민들이 제기한 ‘인공정원’ 조성 문제에 대해 그는 “정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하다. 이전에 ‘잡풀’들이 있던 곳에 오히려 화사한 꽃들로 화단을 가꿔놓은 것이 훨씬 보기에 낫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새로 조성된 화단이 좋다고 하는 분들도 있다”고도 했다. 대나무 숲을 훼손한 것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사진작가들이 사진을 찍는데 성곽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편의 제공을 위해 쳐내게 됐다”며 “‘우후죽순’이라고 하지 않나. 대나무는 금방 자라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 같은 관리사무소의 안이한 행정으로 낙안읍성만의 소박한 미를 잃어갈 것을 걱정했다. 비록 그 범위가 현재까지는 성내 전체까지는 확산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계속적으로 이런 행정을 편다면 낙안읍성의 이미지는 갈수록 전통의 모습을 잃게 될 것이라는 점을 주민들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 주민들은 지난해 문화재청장을 만나 낙안읍성을 문화재청에서 직접 관리해달라고 요청했다. 훼손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적 지정도 반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문화재청장은 대책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갔고,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관리사무소는 점점 원형 복원과 관련이 없는 사업들을 벌여왔고, 주민들과의 마찰도 커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한 술 더 떴다. 당초 관리사무소는 마을 장터를 조성하면서 텐트 대신 초가로 건물을 세우겠다고 문화재청에 보고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실사 전까지 현재의 몽골텐트를 그대로 사용하라고 허가해줬다. 원형을 보존하고 계승해나가야 할 행정관청에서 앞장서 문화재를 훼손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낙안읍성을 유네스코에 등재시키려면 문화재청이 제대로 관리해서 원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자꾸 훼손이 일어난다면 유네스코 등재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고유한 전통자산마저 잃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제까지 전통만 고수할 거냐” 시장 한마디에 관리사무소 즉각 실행

전남 순천에 있는 낙안읍성을 둘러싼 지자체 및 정부 부처와 현지 주민들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공무원들이 낙안읍성을 자신의 승진을 위해 잠시 거쳐 가는 곳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이곳 공무원들에게 낙안읍성은 더 나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한 관문에 불과했다. 눈에 반짝 뜨이는 것으로,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보여주기식’ 전시 행정을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화단 조성을 한 예로 들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는 토종 야생화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화단 대신 야생화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연초에 순천시장이 순시를 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는 “낙안읍성도 언제까지 전통만을 고수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 순천만정원을 위해 포식한 여러 꽃들을 이곳에도 갖다 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 말 한마디에 관리사무소가 즉각 실행에 옮긴 ‘과잉 충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불이익을 받았다. 관리사무소는 현재 ‘노인일자리 창출’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자신들의 말을 듣는 주민들에게는 일자리를 주고, 관리사무소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행정집행에 반대하는 주민은 배제시키는 등 보복성 행정 처리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로 인해 주민들 간의 관계도 점차 소원해지고 있다. 

낙안읍성에 과다하게 책정된 예산도 전시행정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정작 전통가옥의 내부 복원이나 주민들의 민원인 하수도 사업 등은 외면한 채 눈에 띄는 사업들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문화재청도 제대로 된 감시감독을 하지 않고 오히려 훼손을 부추기는 일에 동조하고 있어 낙안읍성의 원형은 점점 훼손돼 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오늘날 낙안읍성이 전통 민가의 원형을 잘 지켜 내려온 데는 주민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변에서는 평가한다. 하지만 개인의 이익 앞에서 보존의 가치는 곧 무너져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늘날 서울의 북촌처럼, 그래도 원형을 잘 보존해서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더해야 세계인이 찾는 명소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낙안읍성도 국가에서 사적으로 지정해 원형을 보존하고자 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 개개인의 의지가 더해지지 않는다면 유지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원형을 보존하고 계승해나가야 할 행정관청에서 앞장서 훼손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낙안을 떠나오는 필자의 발길이 무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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