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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 회고록] ‘병풍’으로 주저앉은 이회창

같은 뿌리가 더 무서워…최후 일격도 IJ

박관용│前 국회의장 정리=김현일 대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12(Fri) 11:07:50 | 13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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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昌) 후보의 패배는 ‘대선 참고서’로 살아 있다. ‘패할 수 없는 선거’ 그러나 ‘패할 수밖에 없던 선거’라는 역설을 지닌 채-.

 

현직 대통령과의 갈등, 그 대통령의 제3후보 지원, 선거 막바지 국가부도 사태(IMF)까지 이른 경제위기와 실정(失政). 여기에 상대 김대중(DJ) 후보의 약점을 최대한 보전(補塡)하게 해 준 DJP연합 등등 昌의 낙선은 예견된 것이다. 시대적 상황, 선거구도 모두가 그에게 불리했기에 그렇다. 그러나 그 악조건 속에서 DJ가 앞선 표는 39만557표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지층이 昌과 거의 겹치는 제3후보 이인제(IJ)의 500만 표를 감안하면 39만은 표차도 아니다. 이러니 많은 이들이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는 덧없는 속설을 떠올리는 게 무리가 아니다. 

 

정치·선거 전문가들이 ‘昌 아들들의 병역’ 시비, 이른바 ‘병풍(兵風)’을 주목하는 것도 그래서다. 상대의 흑색선전, 나중에 허위로 드러난 병풍에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昌이 승리를 낚을 수 있었다는 가상(假想)이다. 초반에 병풍을 진정시켰다면 경선에 패배한 IJ의 탈당·출마라는 최악 상황은 없을 것이고, 그랬다면 DJP 파고쯤은 능히 극복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전문가들이 병풍에 더 집착하는 이유는 昌이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도 같은 병풍으로 좌절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야당 후보로서 대통령 재수(再修)에 나섰던 昌은 ‘대세론’을 업고 타 경쟁자를 압도했으나 아들들의 병역기피 의혹 논란에 다시 휩쓸리면서 추격을 허용했었다(대법원은 2005년 5월 병역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과 이를 보도한 오마이뉴스를 유죄 확정 판결했다. 의정부사관 출신 김대업은 병역문제 전문가로 행세하며 관련 문건을 작성, 언론에 흘렸고 KBS는 이를 9시뉴스에 80여 차례나 집중 방송하는 등으로 昌에게 타격을 가했다. 이후 지지율이 일거에 11%나 빠졌다. 제15대 대선 당시 병풍이 교묘하게 병역을 기피했다는 ‘편법(便法)’ 시비라면 16대는 ‘탈법(脫法)’으로 강도를 높인 게 다르다. 김대업은 수감자 신분이면서 서울지검에서 8개월 동안 수사관 행세를 하고 검찰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야당이 당시 대통령 DJ를 배후라고 주장하는 것도 김대업의 행위가 최고 권력의 비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다).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이회창)’ ‘경제를 살립시다(김대중)’ ‘젊은 한국, 강한 나라(이인제)’. 제15대 대선 주요 후보들의 口號구호는 후보 자신을 포함한 당시의 정치 상황 등 모든 것을 함축한다.


‘병풍’만 잘 대처했어도 역사 달라져

 

昌이 신한국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7월 하순 지지율은 40%대로, 25%를 약간 상회하는 DJ는 비교도 안 됐다. 그러나 병풍이 불면서 15%대로 급락했고 당내 경선에서 昌에게 패했던 IJ는 30%를 훌쩍 넘어섰다. 

 

“당 경선 때 昌 아들의 병역 문제가 잠시 비치기는 했지만 쟁점화 수준이 아니었다. 昌 본인이 아니라는데 꼬치꼬치 캐물을 처지도 못 됐다. 차라리 당내 경선 때 본격적으로 시비가 일어 해명이 돼 면역이 됐다면 본선에서 그런 역풍을 맞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들이 권력형 비리로 구속된 김영삼(YS) 대통령과 대비되는 그의 ‘대쪽’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더 큰 실망감을 주게 만들었다. 후보 확정 40일 만에 지지율이 3분의 1 이하로 떨어지는 이변은 그래서였다.”

 

“병역에 대한 민감한 국민감정을 헤아려야 했다. ‘아니다’는 후보 말만 믿고 팽개칠 게 아니라 치밀하게 대응해야했는데 안이했다. 게다가 병역 문제를 빌미로 IJ가 독자 출마 채비에 나서니까 ‘YS의 IJ 지원설’에 잔뜩 신경을 쓰는 등 이래저래 미진했다. 와중에 DJ의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 사면 주장에 대응키 위해 ‘추석 전 조기 석방’을 요구했는데 YS가 불가함을 발표하자 YS에 대한 의심과 미움만 커졌다. 밖과 싸움을 하기도 벅찬 판에 내분만 키웠다.” 

 

“‘병역기피 의혹’이 커진 데는 昌의 강한 개성도 한몫했다. 대개의 후보들은 참모들의 건의를 받아들인다. 대본에 따라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배우가 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昌은 달랐다. 선거전에선 그림(TV화면)이 중요한데 재래시장에서 순대 먹는 모습을 찍으려고 하니 ‘난 못 먹어’ 하며 거부했다. 서민 친화적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요긴하다고 설득했으나 단호했다. 본인이 않겠다는데 도리가 있나. 행사를 끝내고 200m쯤 떨어진 만찬장에 걸어서 이동하며 연도의 시민들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로 보도진과 약속했는데 후보가 승용차로 이동하겠다고 고집해 무산된 적도 있다. 마침 내리는 비를 맞으면 머리가 젖어 주저앉는다는 게 이유였다. 이러니 병풍 대책이 제대로 세워질 리 없었다.” 昌이 ‘흑색선전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팎으로 조성됐다는 당시 여당 관계자들의 회고다.

 

“누가 봐도 ‘김대중 비자금’은 DJ에겐 치명적 악재다. 병풍으로 타격을 입은 昌 캠프의 강삼재 사무총장은 이를 폭로했다. 네거티브 캠페인이라는 비판을 꺼릴 여유가 없었다. ‘20억+α’ 정도가 아니라 670억 원에 이르는 비자금 내역은 변명의 여지가 없으므로 DJ가 당장 후보직을 사퇴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강삼재 사무총장이 연신 터뜨린 DJ 비자금은 되레 ‘공작정치’로 매도되는 역풍을 맞아야 했다. 昌에게는 이 절호의 호재가 검찰의 수사중지 결정까지 나오니 YS에 대한 악감정이 치솟을 것은 당연했다. YS에 대한 탈당 요구 속 ‘YS 화형식’은 해프닝이더라도 당시 캠프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은 분명하다.” 흑색선전에 네거티브로 응수했다가 ‘손발’이 안 맞는 바람에 크게 손해만 봤다는 말이다.

 

제15대 대선 10년 뒤인 2007년 대선에서 昌과 IJ는 후보로 다시 만났다. 그러나 둘 다 당선과는 거리가 먼 ‘군소후보’에 불과했다. 그나마 무소속으로 뛰어든 昌은 득표율 15.1%에 356만 표를 획득, 이명박-정동영에 이어 3위를 했으나 민주당 간판을 달고 나온 IJ는 16만 표(0.6%)를 얻는 데 그쳤다. 당시 한 TV방송의 ‘칭찬 릴레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昌


“순대 안 먹겠다”는 昌, 특유 고집도 문제  

 

3자 간 싸움에선 1·2위 간 싸움이 격렬하기 마련이다. 3위는 겉도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15대 대선전은 달랐다. 항상 3위인 IJ가 싸움의 한복판에 있었다. 표밭을 같이하는 창과 IJ로서는 상대가 낙마해야 승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DJ는 두 후보의 박 터지는 싸움을 지켜보면 됐다. IJ는 대선전 막바지 TV합동토론회에서도 昌의 아킬레스인 ‘아들 병역’ 문제를 집중 공격했다.

 

“차남 수연의 키를 재면 간단하다. 미국에 있다는데 불러들이면 되지 않는가. 아니면 후보를 사퇴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 의혹이 해소되면 내가 후보를 사퇴하겠다.” IJ는 昌이 응하지 않자 더욱 거세게 몰아세웠다. 한 핏줄의 장남 정연씨가 179cm인 데 반해 차남이 164.5cm라는 게 확신을 더했다는 전언이다. 2차 TV합동토론회에서 IJ의 공세는 가열됐다. “신장은 재면 된다”고 강조했다. 체중미달은 병원 기록이 있다지만 고의 감량(조작)이 가능한 데 반해 신장은 갑자기 손쓸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선거 8일 전 내외신 기자 1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울대 병원에서 귀국한 수연씨의 ‘키 재기’가 실시됐다. 164.5cm. 昌 캠프는 약속대로 후보를 사퇴하라고 IJ를 공박했고, 수세에 몰린 IJ 캠프는 “의혹 본질은 신검기록 조작 여부와 체중 고의 감량”이라는 말로 비켜갔다. DJ 측은 ‘본질론’으로 IJ를 거들었다. DJ로선 어떤 경우라도 IJ의 중도하차 사태는 없어야 했고 IJ는 기대에 부응했다. 

 

‘키 재기’는 昌을 괴롭힌 병풍의 마무리가 아닌 해프닝으로 끝났다. 병풍은 昌의 15대 대선은 물론 이를 더 교묘하게 다듬은 상대의  술책으로 제16대 대선까지 망치게 했다. 나중에 ‘허위’로 밝혀졌지만 ‘버스는 떠난 뒤’였다. DJ의 새천년민주당 등지를 전전한 IJ는 2011년 昌의 자유선진당과 심대평의 국민중심연합이 합당해 출범시킨 통합 자유선진당에 입당하면서 昌과 한배를 탔다. 병풍은 우리 정치의 아이러니를 함축하고 있다.

 

 

선거의 癌…黑色宣傳흑색선전

 

조직·자금·선전-. 선거전의 3대 요소다. 모든 싸움(경쟁)에 해당되겠지만 특히 다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통령선거에서는 절대적이다. 어느 하나라도 부실하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고, 고전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세 요소를 겸전하는 게 쉽지 않다. 따라서 각 후보 진영은 강점을 살리기에 부심한다. 한국의 역대 선거를 보면 대체적으로 여당은 압도적 우위의 조직과 자금을, 야당은 선전·선동을 기본으로 하는 선거 전략·전술을 구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60년대 이전까지는 공무원이 총동원돼 야당 측 운동원을 협박하는 등의 관권선거도 모자라 투표함을 통째로 바꿔치거나 일부러 단전(斷電)을 시킨 뒤 캄캄한 장소에서 개표를 하는 ‘올빼미 개표’까지 횡행하기도 했다. 현금을 건네는 매표나 물건을 주는 ‘고무신 선거’ ‘밀가루 선거’는 70년대까지도 심심치 않았다. 이런 과거 경험 때문에 지금도 ‘개표 부정’ 시비가 벌어지는데 다 흘러간 옛 얘기들이다. 일부 착오는 몰라도 오늘날엔 가능하지도 않다. 이처럼 험악한 시절 야당은 (여론 형성의 중추인 언론에도 여당의 입김이 강했기 때문에) 주로 구호와 유세를 통한 선전전으로 대응했다. 

 

3대 대통령선거 때인 1956년 민주당 신익희 후보의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대선 구호의 고전(古典)으로 꼽힌다. 당시 여당인 자유당은 그 호소력에 놀라 ‘갈아봤자 소용없다, 구관(舊官)이 명관이다’로 대응했으나 등 돌린 민심을 파고든 야당 구호에 속수무책이었다. 신 후보가 유세 중 사망했고, 설령 사망하지 않았더라도 관권·금권이 판친 선거를 뒤집었을까는 미지수지만 선전의 중요성을 확인해 준 것만은 분명하다. 1987년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의 후계로 나선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보통사람의 시대’ 등은 대표적 성공 사례다. 취약점을 절묘하게 커버하며 유권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조직·자금·선전이라는 3대 요소에서 선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증하고 있다. 조직·자금의 열세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만큼 선전의 역할은 엄청나다. 각종 미디어, 특히 SNS의 눈부신 발전은 그 파괴력을 배가시키고 있는데 우리 선거에서 미디어의 역할이 더욱더 강조된 것은 1987년 제15대 대선 때부터로 평가된다. 노태우 정부가 매체에 대한 규제를 대폭 푼 지 10년이 가까워오던 무렵으로, 여당의 미디어 ‘과점(寡占)’이 완화되고 그 효과가 본격 발휘된 것이다. 이는 후보 및 정당의 면면·공약 실상을 정확히 알린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선전을 넘어 선전·선동, 그리고 이를 훌쩍 뛰어넘어 흑색선전이 만연하고 그로 인해 승패가 갈린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선거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심각한 문제다. 

 

마타도어(Matador)의 우리 표현인 흑색선전은 네거티브(Negative) 캠페인과 다르다. 상대방 후보의 단점과 비리를 까발려 유권자들로 하여금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바람직한지 여부를 떠나 ‘사실’이라는 점에서 시비에는 한계가 있다. 자신의 정책 비전을 알려 지지를 구하는 것보다는 당장의 효과가 상당하므로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즐겨 쓰는 방식이기도 하다. 선거가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다중(多衆)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이 아닌 내용을 가공하고 전파해 상대를 쓰러뜨리는 흑색선전은 국민의 바른 선택을 저해한다는 것만으로도 타기(唾棄)할 일이다. 그러나 스페인어 ‘소를 유인해 단칼에 정수리를 찔러 죽이는 투우사’를 의미하는 마타도어의 어원이 말해 주듯 그 치명성 때문에 약세 후보 진영은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선거 기법인 네거티브 캠페인과 짧은 선거운동 기간 중 구별이 쉽지 않은 데다가, 일단 당락이 갈리고 나면 결과를 돌이키지 못한다는 것도 흑색선전의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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